최근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사힐 블룸의 『다섯 가지 부(The 5 Types of Wealth)』는 이러한 질문에 흥미로운 답을 제시한다. 그는 인생의 부를 금전적 부, 사회적 부, 정신적 부, 신체적 부, 시간적 부라는 다섯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표현은 현대적이지만 그 본질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동양과 서양의 위대한 경전들은 수천 년 전부터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해왔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것은 단순한 재물이 아니라 균형 잡힌 삶이며, 참된 풍요는 소유의 양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쳐 왔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고 말했다. 이 말은 돈을 벌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의(義)를 잃어버린 부는 오래가지 못하며, 인간성을 잃어버린 성공은 결국 공허함으로 돌아온다는 경고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과 과학기술을 갖추어 가고 있지만, 동시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심각한 고독, 우울, 인간관계의 단절이라는 문제도 함께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금전적 부를 키우는 동안 다른 종류의 부를 소홀히 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금전적 부는 분명 중요하다. 돈이 없으면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가족을 보호하기도 어렵고, 미래를 준비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돈의 본질은 소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에 있다. 원하는 것을 모두 사는 능력이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을 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진정한 부의 본질이다. 경제적 자유란 통장에 찍힌 숫자가 아니라 삶의 선택권을 의미한다. 노년에 이르러 가장 후회하는 사람들은 대개 돈을 더 벌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시간을 모두 사용해 버린 사람들이다.
사회적 부 역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자산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AI가 아무리 발전하고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사랑과 우정, 신뢰와 연대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인간은 결국 사람 속에서 성장하고 사람 속에서 위로받는다. 하버드대학교가 80년 넘게 진행한 성인 발달 연구는 행복한 삶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관계의 질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성공한 사람과 행복한 사람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공은 혼자서도 가능할 수 있지만 행복은 반드시 사람과 함께해야 가능하다.
불교의 『법구경』은 "좋은 벗을 얻는 것은 삶의 절반이 아니라 삶의 전부이다"라고 가르친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가족과 친구, 동료와 공동체는 단순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서로를 지탱해 주는 정신적 기반이다. 아무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어도 진심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그는 결코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신적 부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정보가 부족한 것이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정보가 넘쳐나는 것이 문제다. 하루에도 수천 개의 뉴스와 영상, 수많은 메시지와 데이터가 인간의 뇌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정보가 많다고 해서 지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를 아는 능력이다. 정신적 부란 내면의 평정심이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다. 그것은 위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힘이고,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다.
『중용』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것이 절도에 맞게 드러나는 상태를 화(和)라 한다"고 말했다. 중과 화는 인간 정신의 균형을 의미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지식의 양이 아니라 정신의 깊이에 있다. 기계가 계산을 대신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통찰과 지혜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신체적 부는 모든 부의 토대다. 건강은 흔히 공기와 같다고 말한다. 있을 때는 그 소중함을 모르지만 잃고 나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건강을 잃으면 돈도 의미를 잃고, 명예도 의미를 잃으며, 인간관계마저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세계적인 기업들이 직원 건강을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경쟁력의 문제로 인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을 만들고, 건강한 정신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만들어낸다.
『황제내경』은 "정기를 보존하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동양 의학은 오래전부터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몸은 인생이라는 긴 항해를 함께하는 배와 같다. 배가 무너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듯이 건강을 잃으면 다른 모든 부도 지켜낼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시간적 부는 어쩌면 가장 위대한 부일지도 모른다. 돈은 잃어도 다시 벌 수 있고, 건강도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으며, 인간관계도 노력하면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시간만큼은 예외다. 세상 어떤 권력자도 어제의 하루를 다시 살 수는 없다. 시간은 모든 부의 원재료이며 모든 삶의 근원이다. 돈도 시간을 투자해야 얻고, 건강도 시간을 투자해야 지킬 수 있으며, 사랑도 시간을 투자해야 깊어진다.
『전도서』는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목적에는 시기가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시간을 소유할 수 없지만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선택할 수 있다. 결국 인생의 품격은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결정된다. AI 시대가 가져올 가장 큰 축복도 어쩌면 시간일 것이다. 인공지능이 반복 노동을 대신하면서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을 돌려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더 많은 소비와 경쟁에 사용된다면 문명은 발전해도 인간은 행복해지지 못할 것이다.
결국 다섯 가지 부의 핵심은 균형이다. 금전적 부를 얻기 위해 건강을 잃어서는 안 되며, 성공을 위해 가족을 잃어서도 안 된다. 관계를 위해 자신을 잃어버려서도 안 되며, 일을 위해 삶의 의미를 포기해서도 안 된다. 인생은 어느 하나를 극대화하는 게임이 아니라 서로 다른 가치들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 가는 예술에 가깝다.
AI 시대는 인류에게 전에 없던 풍요를 가져다줄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게 더 본질적인 질문도 던지고 있다. 얼마나 많이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왜 살아가는가. 얼마나 빨리 성공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위해 성공할 것인가.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지혜를 남길 것인가.
돈만 많은 사람은 부자가 아니다. 건강한 몸과 평안한 마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깊은 관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정신적 성숙이 함께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부자가 된다.
공자가 말한 인(仁), 노자가 말한 족(足), 부처가 말한 중도(中道), 성경이 말한 사랑은 결국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진실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소유를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AI가 인간보다 더 빠르게 계산하고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는 시대가 오더라도,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를 결정하는 일만큼은 끝내 인간 자신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은 돈이 아니라 균형 속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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