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4박 5일간의 방한을 마치고 출국했다. 한국이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전략에서 단순 메모리 공급처를 넘어 AI 인프라와 피지컬 AI를 시험하는 전략 거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업계에 따르면 황 CEO는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를 통해 출국했다. 황 CEO는 출국길에서 한국 방문에 대해 "정말 좋았다"며 "다시 한국에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입국한 그는 닷새 동안 한국에 머물며 삼성전자, SK, 현대자동차, LG, 두산,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들과 만났다.
황 CEO가 한국에서 이 정도로 장기 체류한 것은 이전에 없던 일이다. 방한 기간 중에는 기업과의 비즈니스 미팅은 물론 대중 행보에도 공을 들였다. 삼겹살 회동과 치맥 회동, 야구장 방문 등 공개 일정을 소화하며 국내 소비자와 일반 대중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지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함께한 이른바 '깐부 회동'의 파급이 워낙 컸던 만큼 한국 내 스킨십을 더 확대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사업 논의의 축도 넓어졌다. SK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협력을 차세대 메모리와 AI 팩토리 인프라로 확대하기로 했다.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에 들어가는 핵심 메모리 공급사다. 양사는 앞으로 AI 슈퍼컴퓨터와 중앙처리장치(CPU), AI PC, 로보틱스 플랫폼에 들어갈 메모리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기로 했다.
삼성전자와는 자율주행 칩과 인공지능 가속기 생산 협력을 진행 중이며 HBM4E와 HBM5 등 차세대 HBM 기술 개발을 둘러싼 장기 협력 가능성도 거론됐다. 엔비디아가 SK하이닉스와의 HBM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삼성전자와 파운드리·차세대 메모리 협력의 여지를 열어둔 셈이다.
LG그룹과는 로보틱스와 데이터센터 협력이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엔비디아의 로보틱스 플랫폼과 LG전자의 로봇, LG CNS의 산업 현장 플랫폼, LG이노텍의 센싱 부품 역량을 연결하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과의 만남에서는 자율주행과 로보틱스, 스마트 제조가 논의됐다. 두산과는 협동로봇, 에너지, 데이터센터 인프라 협력 가능성이 거론됐다.
재계에서는 엔비디아가 대만에 글로벌 본사를 두고, 한국을 생산 생태계의 중심축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메모리, 파운드리, 제조업, 로봇, 플랫폼 기업을 묶어 AI 인프라와 피지컬 AI를 시험하는 거점으로 삼으려는 구상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들이 본격적인 AI 시험대에 올랐다는 반응이다. 엔비디아의 AI 생태계에 편입되는 것은 기회이지만 동시에 종속 리스크도 있기 때문이다. HBM 공급 확대와 AI 인프라 수주에만 머물 경우 한국은 엔비디아 플랫폼을 뒷받침하는 파트너에 그칠 수 있다. 반대로 제조 AI와 로보틱스, 데이터센터 운영 역량까지 함께 키운다면 한국은 AI 시대의 실증 거점이자 전략적 동반자로 올라설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AI 메모리 공급망과 제조·로보틱스 기반을 동시에 갖춘 드문 나라로 엔비디아가 AI를 산업 현장으로 확장하는 데 매우 매력적인 파트너"라며 "한국이 글로벌 AI 테스트베드로 격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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