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의 타임캡슐] 노인과 바다 …빈집과 절벽

  • 부산에 먼저 도착한 소멸 한국

 
황승연
[황승연 교수]

  
소멸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다 (2)


한국 사회에서 언젠가부터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있다. 산부인과 간판이 내려지고, 신생아실은 텅 비었다. 초등학교는 문을 닫고, 중고등학교는 합병하고, 대학은 신입생을 채우지 못한다. 군부대가 사라지고, 3교대 하던 군인들은 2교대를 한다. 과거에는 '인구 감소'를 말하면 먼 미래의 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대한민국은 지금 단순한 저출산 국가가 아니라 사회 자체의 재생산 기능이 무너지는 ‘소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결혼이 먼저 무너졌다
 
출산 감소 이전에 결혼 감소가 먼저 있었다. 한국 사회는 유럽과 달리 혼외 출산 비율이 극히 낮다. 대부분의 출산은 결혼 안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결혼 감소는 바로 출산 붕괴로 이어진다. 그런데 청년들이 왜 결혼을 포기하는가? 집값, 과도한 교육비, 고용 불안, 계층 이동 불가능, 세금 부담, 미래 자산 형성 불가능 등이 원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제 문제가 아니라 ‘삶의 전망 붕괴’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보다 심각한 것은 ‘아이를 낳아도 미래가 없다고 느끼는 사회’다.
 
결혼 감소뿐 아니라 초혼 연령도 상승했다. 서른 중반에 결혼하는 여성들을 보는 것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여성 취업 인구의 증가는 결혼 감소와 결혼 연령 상승으로 이어졌다. 해결책으로 청년들에게 현금을 지급하거나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으로는 출산율을 높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돈으로 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2006년 이후 지금까지 저출산 대응 예산 누계가 300조원을 넘었다. 그러나 출산율은 1.12에서 0.72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이 먼저 겪었다.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인 인구가 21%를 넘어서면 초고령사회라 말한다. 일본은 2007년에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한국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분석에 따르면 2025년 말 기준 65세 이상 인구가 약 108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21%를 차지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36년에는 30.9%, 2050년에는 4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한 생산 가능 인구 감소뿐 아니라 지역 소멸과 연금 재정 압박이 동시에 진행되어 아무런 대책도 통하지 않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본에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될 때 실제로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지방이 무너지고, 빈집이 급증하고, 상점가가 폐쇄되고, 학교가 통폐합되고, 지방 병원이 폐업한다. 일본에는 '한계집락(限界集落)'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65세 이상 고령자가 절반을 넘어 공동체 유지가 불가능한 마을을 뜻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 청년들 사이에는 초식남, 사토리 세대, 비혼 증가, 미래 포기 현상 등이 나타났다. ‘사토리 세대’란 물질적 욕망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희망과 의욕이 없어서 돈도 명예도 출세도 유흥에도 관심을 끊은, 마치 득도한 것처럼 보이는 청년들을 뜻한다. ‘성장 사회의 인간형’이 아니라 ‘축소 사회의 인간형’이 등장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 청년들이 표현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보다 더 위험하고 더 빠르게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출산이 무너지다
 
한국 출산율은 일본보다 훨씬 낮다. 일본은 약 1.2~1.3 수준의 기대 출산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한국은 0.8이 채 되지 않는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일부 지역은 0.5 이하이다. 일본이 ‘감소 사회’라면 한국은 ‘소멸 사회’에 가깝다. 수도권 집중도 일본보다 심하다. 일본은 도쿄 집중이 심하지만 오사카·나고야·후쿠오카 등 거점이 유지되고 있다. 한국은 서울 집중이 압도적이다. 수도권에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지방 청년 유출도 극심하여 지방 소멸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
 
인구 감소가 가져올 실제 결과는 우선 노동력 부족이다. 제조업 인력이 줄어들고 군 병력은 감소하고, 지방 공무원과 돌봄 인력도 부족해진다. 생산인구 부족으로 세수가 줄면 세금을 낼 능력이 되는 계층에 대한 세금 폭증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상속세, 증여세, 부동산 관련 세금을 더 올리자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젊은 세대 감소는 부양해야 하는 노인 비율의 증가로 나타난다. 연금 부담이 증가하고 건강보험 부담도 증가하며, 증세 압력도 증가한다. 부동산은 장기적으로 청년이 떠난 지방 부동산의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일본처럼 ‘집이 남아도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젊은 세대가 줄면 창업 감소, 소비 감소, 모험 감소로 나타나고 사회 전체가 ‘현상 유지 사회’로 변한다.
 
노인과 바다
 
전국 광역시 중에서 부산이 고령화가 심각하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약 24.5~25.3%로 가장 높다.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부산을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고령화 비율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출생아 수 감소, 청년층 수도권 유출, 취업시장 구조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부산은 초고령 대도시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선행 사례가 되고 있다.
 
부산의 원도심으로 불리는 중구·동구·서구·영도구가 있다. 고령화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다. 고령의 거주자들이 사망하거나 요양시설로 입소하면서 주택이 비는 경우가 많다. 청년과 3040 인구는 교육, 일자리, 더 나은 주거 환경을 찾아 외곽 신도시로 대거 이주한다. 원도심 일대는 6·25전쟁 때 피난민들이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에 정착하면서 산복도로를 중심으로 형성된 주거 밀집 지역이다. 이 4개 구에 부산 전체 빈집 가운데 약 3분의 2가 집중되어 있으며 빈집 비율이 11.5%에서 15.4%에 달한다. 예전에는 부산의 중심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방치된 폐가를 철거해 주차장이나 텃밭, 주민 쉼터 등 공공시설로 조성하려는 사업들이 있지만 막대한 철거 비용, 소유자 연락 두절, 복잡하게 얽힌 법적인 문제 등으로 진전이 없다.
 
부산보다 더 심각한 지자체 지역은 전라남북도, 경상북도, 강원도 등이다. 지방자치 단체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예산권이 없기 때문이다. 도지사나 시장이 지역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예산을 짤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중앙정부의 예산을 더 많이 확보하는 일인데 지역 간 형평을 이유로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기업은 노동력을 찾아 수도권으로 모여든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가격이 지방의 5배에서 10배에 이른다. 지방이 소멸하면 서울도 무너지고 결국 나라가 거덜 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지방 살리기에 투자되어야 할 돈은 긴급재난지원금, 상생국민지원금, 민생회복지원금 등 현금 살포로 뿌려지고 인플레이션의 원인이 되어 서민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노인이 많아진다는 것은 현재의 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구조 자체가 큰 압박을 받게 된다는 의미다. 한국은 2025년 현재 노인 1명을 생산가능인구 3.4명이 부담하는 구조이다. 2023년의 4명에서 불과 2년 만에 이렇게 줄어든 것이다. 2035년에는 약 2.1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 속도가 무섭다. 2050년에는 노동인구 1.3명이 노인 1명을 부담해야 한다. 연금 수급자 비율이 급증하고 가입자 수는 급감한다. 2041년에 연금은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소멸 사회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문명 문제다
 
인구 감소는 단순히 아이 숫자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가 미래를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한다. 기업은 장기 투자를 멈추고, 지역 공동체는 해체된다. 사회는 경제보다 먼저 심리적으로 붕괴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이 길목에 서 있다. ‘아이가 사라진 사회’ ‘미래 세대 없는 국가’ ‘재생산 기능 붕괴’ ‘청년의 탈출’ ‘기업 승계 붕괴’ ‘중소기업 소멸’ ‘산업 공동화’로 이어진다. 경제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문명이 사라질 위기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0.72에서 2024년 0.75, 2025년에 0.80으로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OECD 국가 중 출산율이 1 이하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1.15, 독일은 1.39, 영국은 1.44, 프랑스는 1.66, 미국은 1.6이다. 한국의 출산율이 미국의 절반에 불과하다. 현재 인구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출산율 2.1명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아직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반도체 착시가 만들어낸 지금의 일시적 호황을 미래 파국을 막기 위한 골든타임으로 써야 하는데, 눈앞의 분배에 매몰되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자해적 우를 범하고 있다. 정치지도자뿐 아니라 근로자와 주부들까지 공짜라는 환상에 취해 자멸을 향해 맹목적으로 돌진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사태에 대한 인식도 부족하고 대책이 없다. 대한민국은 이렇게 소멸 사회라는 낭떠러지로 가는 길목에 이미 들어섰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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