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희 칼럼]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비중 상향, 약일까 독일까

서정희
[서정희 논설고문]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주식투자 목표 비중을 상향한 것을 두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당장은 우려가 더 큰 것 같다. 다만 이런 우려를 토대로 한국 증시의 체질을 더 개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면에서는 기대를 갖게 한다.

최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국내 주식투자 목표 비중을 기존 14.9%에서 20.8%로 올려 잡았다. 이 목표치보다 폭넓은 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전략적 자산배분 허용 범위도 한시적으로 ±5%포인트에서 ±10%포인트로 넓혔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이 담을 수 있는 국내 주식 비중이 최대 30% 수준으로 늘어난다.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실제 보유 비중은 현재 27%대에 달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급등하면서 과거와 달라진 현상이 하나 있다. 자산 배분을 한 후 특정 자산의 가격이 올라 전체 포트폴리오 중 타깃 비율을 초과했을 때 국민연금 등 연기금들은 해당 자산 규모를 줄이는 게 보통이었다. 대신 가격이 떨어져 비율이 하락하면 늘리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연기금들이 이런 포트폴리오 조정을 하지 않아 정부 눈치를 본다는 얘기가 많았다. 그사이 외국인 투자자들은 원칙대로 포지션 조정을 하느라 한국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각하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외국인 투자자처럼 최대한 기존 포지션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 주식을 파는 쪽이다. 장기 계획에 입각해 정해 놓은 포트폴리오 룰보다 실제 주식 비중을 높게 유지하면 언젠가는 사달이 난다는 판단이다. 구조적으로 연금 지급 금액이 연금보험료 납부 및 이자배당소득보다 커져서 우리나라 주식을 팔아야 할 때가 올 텐데 이때 누가 받아줄 것이냐는 문제의식에 기반한다.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건강하게 주가가 상승하려면 연기금의 포트폴리오 리밸런싱도 소화해가며 시간을 두고 오르는 것이 맞다. 이런 내재적인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고 폭발적으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은 향후 조정의 폭을 더욱 키워 오랜만에 주식시장의 훈풍을 즐기며 투자에 나선 많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더 큰 손실과 함께 주식시장에 대한 실망감을 안겨 주식시장을 또 상당 기간 이탈시킬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 선택지는 이런 우려와 반대로 과거와 다르게 국내 주식 비중을 적극적으로 늘리는 쪽이다. 우리 주식시장이 주주가치 개선과 실적 개선으로 질적으로 변화하며 상승하는 지금 같은 시점에 연기금이 굳이 찬물을 끼얹을 필요가 없지 않으냐는 판단에 기초한다.

어느 쪽 의견이 타당할까.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리다고 말하기 어려운 문제다. 딜레마로 보는 게 타당하다.

첫 번째 선택지, 자산배분 원칙 고수 및 잠재적 충격 우려를 염두에 둔 리스크 관리론은 우리 사회의 인구구조적 한계를 생각하면 당연한 선택이다. 금융공학적으로나 거시경제학적으로 매우 강력한 타당성을 가진다. 이를 무시하고 한도를 늘려가는 것은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의 본질을 훼손하기 십상이다. 연기금의 자산배분 규칙은 시장의 감정을 배제하고 '비쌀 때 팔고 쌀 때 사는' 기계적 위험 통제 장치이다. 정치적 외압이나 여론에 밀려 이 룰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이는 연기금의 가장 큰 무기인 '체계적 리스크 관리 능력'을 스스로 포기하는 꼴이 된다.

미래의 거대한 '매도 절벽(Liquidity Crunch)'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민연금은 구조적으로 향후 수십 년 내에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급여 지출이 더 많아지는 시기가 도래한다. 이때부터는 보유 자산을 대거 매각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현재 리밸런싱을 미루어 국내 주식 비중을 과도하게 높여 놓는다면 향후 연금 고갈기에 이 막대한 물량을 매도할 때 시장에서 이를 받아줄 주체가 없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외국인은 이미 떠나고 있고 개인투자자가 이를 다 받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결과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자산 가격 폭락의 충격을 떠넘기는 셈이 된다.

개인투자자의 부메랑 효과도 문제다. 완만한 상승(계단식 상승)이 아닌 폭발적인 급등은 필연적으로 가파른 골짜기를 만든다. 연기금의 매도 소화 과정 없이 급등한 증시는 기초체력보다 유동성과 심리에 의해 과열될 가능성이 높고, 이 버블이 꺼질 때 겪게 될 개인투자자들의 박탈감과 시장 이탈은 상상하기 어려운 결과를 초래한다.

두 번째 선택지, 주주가치 개선기 연기금 역할론(체질 개선론)도 설득력을 가진다.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상승기'이므로 연기금이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특히 정부가 추진해 온 밸류업 프로그램이나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 노력이 실질적인 열매를 맺는 시점이라면 더욱 그렇다.

먼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기회다. 한국 증시가 만년 저평가를 받았던 이유는 실적 대비 낮은 주주 환원과 낙후된 거버넌스 때문이었다. 만약 최근의 급등이 펀더멘털 개선과 주주 환원 확대(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에 기반한 '구조적 리레이팅(Re-rating)'이라면 과거의 단순한 '박스권 고점'으로 인식해 기계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연기금 수익률 제고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는 결국 국민 전체의 자산 증식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가장 이상적인 타협점은 '국내 주식 비중을 무조건 늘리는 것(룰 위반)이 아니라 한국 증시의 기초체력 상승에 맞추어 장기 자산배분 목표 자체를 정당한 프로세스를 거쳐 미세 조정하는 것'이다. 이 길이 현시점에서 미래 세대 몫을 당겨 쓴다는 오해와 비판을 불식시키는 최선 경로이기도 하다. 이 경로를 탄탄하게 닦는 일에는 국내 연기금만이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부터 한국 증시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예컨대 MSCI 선진국지수에 한국이 편입되면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및 채권의 보유 비중이 늘어날 것이고, 국내 연기금도 그 실링을 높일 명분이 명확해진다. 따라서 이를 위한 증시 선진화, 외환제도 선진화 등 종합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국제경제학과 및 동 대학원 ▷미국 미주리대 경제학 박사 ▷매경TV·매경출판 대표, 매일경제신문 워싱턴 특파원, 논설위원 등 ▷서울대 경제학부 객원교수  ▷한국데이터홈쇼핑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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