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이제 전국 지방정부는 선거 과정에서 쏟아낸 수많은 약속을 현실의 정책으로 검증받아야 할 시간과 마주했다. 향후 4년 지역의 미래를 좌우할 공약 가운데 문화·관광 분야는 특히 냉정한 재점검이 필요하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개발 중심의 복제형 관광 공약을 걷어내고, 광역과 기초지방자치단체 간 명확한 역할 분담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새 지방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관광은 더 이상 부수적인 정책 영역이 아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지역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선거 때만 되면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관광 공약이 되풀이된다. 광역은 광역대로, 기초는 기초대로 저마다 랜드마크와 관광시설을 내세우며 경쟁에 나선다. 지역의 특색은 사라지고 사업 규모만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광역지자체가 맡아야 할 역할은 분명하다. 개발이 아니라 연결과 조율이다. 외래 관광객에게 행정구역 경계는 큰 의미가 없다. 관광객은 하나의 시·군이 아니라 하나의 권역을 경험한다. 그런데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독자 브랜드 구축에만 몰두한 나머지 인접 지역과의 연계 전략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광역지자체는 개별 관광지 조성 경쟁에서 벗어나 권역 간 관광벨트를 구축하고 교통 인프라를 연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관광객의 이동 동선을 넓히고 체류 기간을 늘리는 것이야말로 지역 관광 경쟁력의 출발점이다. 인공지능(AI) 기반 관광 서비스와 디지털 플랫폼 구축 역시 광역 차원의 역할이다. 재정 여건이 제각각인 기초지자체들이 저마다 앱을 만들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은 중복 투자와 예산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광역이 공통 인프라와 데이터 기반을 구축하고 기초가 그 위에 지역 콘텐츠를 입히는 구조가 상식에 부합한다.
기초지자체는 정반대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거대한 개발사업이 아니라 지역만의 고유한 매력을 발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산이 있으면 케이블카를 놓고, 강과 바다가 있으면 출렁다리를 세우겠다는 식의 공약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 경쟁적으로 추진되는 대형 시설물은 개장 초기에는 관심을 끌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유지관리 부담만 남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전국 어디를 가도 비슷한 출렁다리와 전망대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관광객이 굳이 먼 길을 찾아가 지갑을 열 이유가 무엇인가. 관광객이 찾는 것은 시설물이 아니라 경험이다. 그 지역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이야기와 문화, 음식과 사람이다.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 지역이 확보해야 할 것은 단순 방문객이 아니라 체류하며 소비하는 생활인구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전통, 문화와 생태, 주민의 삶이 녹아 있는 로컬 콘텐츠에서 나온다. 기초지자체는 개발 공약 경쟁에서 벗어나 지역의 숨은 자산을 발굴하고 차별화된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데 행정력을 집중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관광진흥법 개정 등 규제 완화 기조 속에서, 지방정부가 맞이할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선심성 지역 축제의 과감한 통폐합 △예산 수십억원, 수백억원이 투입되는 전시성 사업의 구조조정 등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선거는 끝났다. 이제는 냉혹한 행정의 시간이다. 표를 얻기 위해 내놓은 공약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은 책임 정치가 아니다. 광역은 연결과 조율을, 기초는 콘텐츠와 현장을 맡는 역할 분담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시설 경쟁과 중복 투자를 멈추고 지역만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지방 관광의 미래는 더 큰 건물을 짓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지역의 강점을 연결하고, 그 지역만의 이야기를 살리는 데 있다. 새 지방정부가 기본과 원칙, 그리고 상식에 기반한 관광 정책으로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다져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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