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상장 회사의 자회사·계열사 추가 상장(중복상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밀어붙이면서 국내 기업들이 미래 성장을 위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소액주주 친화적 세부 규정 등으로 지배주주의 주주권이 침해받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4일 증권가 등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조만간 중복상장 금지 가이드라인 초안과 세부 규정을 발표한다. 의견 수렴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의결 등을 거쳐 오는 7월 시행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 3월 정부가 발표한 '모자회사 중복상장 원칙 금지 예외 허용'을 구체화하려는 행보다.
SK그룹, HD현대그룹, LS그룹 등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준비 중이던 기업 집단은 비상 사태다. 추진하던 IPO를 모두 멈추고 정부 발표만 조심스레 기다리는 중이다. IPO 연기·무산을 걱정하는 재무적 투자자(FI)의 자금 회수 압박도 한층 거세지고 있다.
중복상장 금지는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와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이재명 정부의 핵심 정책 과제다. 물적분할 등 기업 쪼개기 후 추가 상장으로 모회사 주주들의 주주권이 훼손되는 걸 막겠다는 것이다. 과거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 계열사가 잇달아 상장하면서 모회사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정부가 이를 예방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에 나섰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특정 회사의 사업 부문을 떼어내 재상장하는 중복상장은 소액 투자자 보호를 위해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것이 옳다"며 "과거 허용했던 것이 잘못된 정책이고 자본시장법 개정 등을 통해 한층 엄중히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IPO 시장 침체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 정부의 발표 이후 올해 상반기 중 코스피에 새로 상장한 기업은 케이뱅크 한 곳에 불과했다. 지난해 상반기 4곳과 비교해 크게 줄었다. LS에식스솔루션즈는 올 상반기 IPO를 추진할 계획이었으나 중복상장 논란이 불거지면서 관련 계획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기업이 중복상장 금지 규제를 피하고자 코스피 등 증권시장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염려한다.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중복상장 금지가 시행되면 모회사 자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대신 해외 상장을 추진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면 국가적 입장에서 손실이고, 해외에서 제대로 된 기업 가치평가(밸류에이션)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기업 성장을 위한 신규 자금 확보에도 빨간불이 들어올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과거에는 기업이 신사업 육성을 위해 지분을 담보로 FI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후 IPO 때 이를 돌려주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중복상장이 금지되면 이런 성장 전략을 더는 활용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주력 사업에서 나오는 수익이나 이율 부담이 큰 회사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확보해야 하는데, 주력 사업과 신사업 모두 공멸할 위험 부담이 있어 기업이 신사업 진출을 꺼리게 될 공산이 크다.
모회사가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FI에게 직접 투자를 유치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신사업에 대한 정확한 가치 평가가 어렵고, 지분 희석에 따른 소액 투자자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계 인사는 "(중복상장 금지로) 계열사 IPO가 막히고 재무 부담 때문에 회사채 발행도 어려운 기업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유상증자"라며 "유증을 악재로 여기는 국내 투자 인식을 고려하면 모회사 기업가치가 제도 시행 전보다 오히려 하락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업계에선 자금 회수 불확실성에 따른 글로벌 FI의 코리안 패싱(한국 건너뛰기) 확대도 거론된다. 상장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해외 지역 기업에 대규모 자금이 유입되면서 한국 기업들이 성장 단계에서 불이익을 볼 것이란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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