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 작가]
오늘도 나는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건설 현장으로 향한다. 매일 일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고단한 일용직 노동자이지만 요즘 뉴스를 보면 내 몸의 피로보다 더 깊은 씁쓸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선거철마다 그러하듯 우리 사회 전체가 '내일'을 잊은 채 눈앞의 달콤한 재화를 나누어 먹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이러한 '내일 망각증'은 비단 정치권만의 일이 아니다. 당장의 결과와 이익만을 쫓느라 미래의 안전을 지워버리는 조급함 역시 똑같은 뿌리에서 자라난다. 이런 와중에 또 하나의 대형 사고가 터졌다. 서소문 고가차도 해체작업 중 관리자 3명이 구조물 붕괴로 사망한 사고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건설 현장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전에 신경 쓴다고들 했다. 그러나 또다시 이런 중대사고가 일어났다. 이것은 우리에게 안전이라는 말이 몸에 체화되지 못하고 자신의 언어가 되지 못한 채 그저 몸 밖에서 윙윙거리는 구호로만 남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먹사니즘의 자리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는 '먹사니즘'이라는 말이 유령처럼 떠돈다. 먹고사는 것이 곧 최상의 이념이 된 사회다. 일당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말은 결코 낯설지 않다. 하루 일당이 들어와야 다음 날 작업화 끈을 다시 묶을 수 있으니까. 그러나 먹고사는 것만이 전부가 된 사회가 어디로 가는지, 150여 년 전 일본의 한 작은 마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1870년(메이지 3년) 보신전쟁(戊辰戦争)에서 패배한 니가타현의 나가오카번(長岡藩)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7만4000석이었던 영지는 패전 후 2만4000석으로 줄었고, 성은 불탔으며, 사무라이와 그 가족들은 끼니를 굶었다. 그러던 차에 분가(分家)인 미네야마번(三根山藩)에서 구휼미로 쌀 100가마(米百俵)를 보내왔다. 굶주린 번사들은 환호했다. 한 줌이라도 좋으니 어서 나누자고 했다.
그러나 당시 대참사(大参事)였던 고바야시 도라사부로(小林虎三郎)는 이를 거부했다. 그는 이렇게 설파했다. "백 가마의 쌀도 먹어버리면 그뿐이지만 교육에 쓰면 만 가마, 백만 가마가 된다." 그러고는 그 쌀을 팔아 국한학교(国漢学校)를 세웠다. 격분한 사무라이들이 칼을 빼들고 그의 집으로 몰려왔다. 그러나 고바야시는 굽히지 않았다. 그 학교의 정신을 이은 나가오카에서 훗날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의 인재가 배출되었다.
2001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총리는 취임 소신표명연설에서 이 일화를 인용하며 "지금의 고통을 참고 내일을 위해 투자하자"고 했다. 그 후 '米百俵의 정신'은 일본 사회의 화두가 되었고, 나가오카시는 매년 6월 15일을 '米百俵の日'로 기념하고 있다.
2026년 봄, 분배의 풍경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풍경은 정확히 그 반대다. 6월 3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금성 공약이 쏟아진다. 정부의 고유가 피해지원금은 소득 하위 70%에게 1인당 10만원에서 25만원이 풀린다. 그 위로 광역·기초 지자체장 후보들의 '묻고 더블로'식 경쟁이 얹힌다. 어느 도지사 후보는 전 도민에게 1인당 200만원을, 어느 군수 후보는 4년간 100만원을 약속했다. 통영과 김해 같은 곳에서는 여야 후보가 30만원 대 33만원, 10만원 대 20만원으로 액수를 두고 호각을 다툰다. 경남 고성군에서는 정부와 도와 군의 삼중 지급으로 군민 한 사람이 최대 100만원을 손에 쥐게 되어 있다. 한 지방지 사설은 이를 두고 '현금 살포 공약, 미래 세대와 공존의 다리 끊는다'고 표현했다.
개별 공약은 저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갖는다. 그러나 이 모두를 종합해 보면 가슴이 서늘해진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엘 모키어의 말을 빌리면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축적 가능한 자원을 소진성 소비로 전환하는 선택'이다. 더 무거운 사실은 이 돈이 지자체의 여유 자금이 아니라 빚으로 조달되는 부채라는 점이다. 정치인이 인심 쓰듯 발행하는 수십만 원의 현금은 결국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하는 청구서다.
모키어가 보여준 역사적 사실은 단호하다. "오늘 다 나누는 사회는 내일 나눌 것이 없어진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같은 시기 다른 사회들이 잉여를 궁정 사치와 전쟁과 구휼로 소진할 때 영국은 그것을 공장과 기계와 도제교육으로 돌렸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일당으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 돈은 결코 작지 않다. 수도권 일반 가구가 받는 10만원이라 해도 4인 가족이면 40만원이다. 며칠치 일당이고 한 달 생활에 보탬이 되는 돈이다. 그러나 그 돈 안 받아도 나는 먹고살 수 있다. 정작 그 돈이 필요한 것은 지금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고 앞으로 사회에 나올 청년들이다. 우리는 그들 몫의 쌀을 지금 우리가 나눠 먹자고 하고 있다.
왜 우리는 '나누자'에 호응하는가
분배 요구에 즉각 호응하는 성향 자체가 하나의 아비투스(habitus)다. 그것은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오랜 사회·경제사가 우리 몸에 새겨놓은 체화된 시간 감각이다.
한국 사회는 식민지와 전쟁과 압축 근대화를 거치며 '내일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경험을 누적해왔다. 미래가 불확실할 때 '지금 받을 수 있는 것은 지금 받아야 한다'는 행동양식은 합리적 적응이었다. 농민의 보릿고개 기억, 노동자의 체불 임금 경험, 서민의 부동산 박탈 경험이 모두 현재화된 시간감각을 강화해왔다. 우리 어머니 세대가 자식들 입에 먼저 밥을 떠넣어 주던 그 손길의 다급함이 바로 이 시간 감각이다.
반면 나가오카의 사무라이들은 '번(藩)'이라는 200년 이상 지속된 시간공동체의 성원이었다. 고바야시의 '백 가마→만 가마' 논리가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이 '세대를 잇는 시간'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노포(老鋪) 기업의 평균 수명이 길고 가업 승계가 자연스러운 것도 같은 아비투스의 표현이다.
메를로-퐁티가 말한 '살아 있는 몸(le corps vécu)'은 과거를 퇴적하고 미래를 투기(投企)하는 시간적 존재다. 그런데 한국 노동자의 몸은 '오늘 일하지 않으면 오늘 굶는다'는 일당제의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왔다. 건설 현장의 일당, 자영업자의 오늘 매출, 정치권의 이번 선거 — 이 모든 것이 '하루 단위의 시간 지평'으로 수렴된다. 시간의 신체적 지평이 좁을수록 미래에 대한 투자는 손실로 체감된다.
서소문 고가에서 본 같은 구조
지난 5월 2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졌다. 1966년에 지어진 이 60년 된 구조물은 2019년 이미 안전등급 D등급을 받았다. 그날 새벽 절단 작업 중 2.9㎝의 단차가 생겼고 작업을 중단한 채 안전을 점검하던 관리자들 위로 거더(girder)가 끊어지며 상판이 떨어졌다. 사망자 3명은 모두 단순 노동자가 아니라 시공사 현장소장, 감리단장, 구조기술사였다. 한국 건설안전 체계의 최상위 점검 라인이 무너진 것이다. 이 사고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조급한 시간 감각'이 정확히 그대로 비친다.
첫째, 압축 근대화의 유산이다. 1966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한복판에서 이 고가도로를 세운 사람들은 60년 뒤 후손들이 이것을 어떻게 안전하게 해체해야 할지 그 비용과 시간을 계산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일단 짓고 보자는 식의 성장은 본질적으로 미래 세대에게 비용을 미루는 방식이었다.
둘째, 현장을 지배하는 조급증이다. 사고 당시 공정률은 87%를 넘었고 6월 준공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종착이 코앞인 상황에서 새벽에 단차가 발생했을 때 현장에는 '여기서 더 멈추면 공기(工期)가 늦어진다'는 무의식적인 압박과 신체적 계산이 작동했을 것이다.
셋째, 안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날 사망한 세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고 '점검'이라는 미래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들어간 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신중함조차 노후 구조물의 예측 불가능성과 당장 서둘러야 한다는 현장의 관행 앞에서는 무력하게 꺾이고 말았다. 시스템이 허락한 시간의 여유가 너무나 좁았기 때문이다.
건설현장의 안전의식 전환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도 정확히 여기에 있다. '오늘 안전조치를 위해 멈추는 30분'을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오늘 일당 30분의 손실'로 받아들이는 신체적 계산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한국 건설업의 산재 사고율이 일본의 3.6배에 달하는 것은 개인의 무지 탓이 아니다. 당장의 결과만 쫓는 사회의 조급한 시간 감각이 만들어낸 구조적 사고다. 일본 현장의 견습 도제 문화, 신체화된 안전 루틴, 위험예지의 집단 의례는 모두 '오늘의 시간을 미래의 안전자본으로 전환하는 신체적 제도'다. 한국 현장에 결여된 것은 안전 지식이 아니라 그 지식을 신체에 축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제도적 인내다. 현장에서의 먹사니즘이 산업재해를 낳듯이 사회에서의 먹사니즘은 미래의 불안정을 낳는다. 안전과 안정. 두 단어는 한 뿌리에서 자란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자. 분배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당한 분배 요구는 존재한다. 한국 노동자의 임금 몫은 충분하지 않고, 자영업자의 절벽은 깊으며, 비정규직의 처지는 위태롭다. 고바야시 도라사부로가 위대했던 것은 쌀을 거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쌀을 받았다. 다만 그 쌀의 용도를 바꾸었다. "받은 쌀을 즉시 소비할 것인가, 자본으로 전환할 것인가." 한국 정치에 결여된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질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배를 거부하는 일이 아니라 분배의 형식을 바꾸는 일이다. 10만원의 고유가 지원금을 청년의 직업훈련과 주거사다리로 전환할 수 있는가. 성과급 일부를 R&D와 안전 인프라로 돌릴 수 있는가. 1966년에 지은 콘크리트가 2026년에 무너졌듯이, 2026년에 우리가 하는 선택은 2086년의 누군가에게 청구서로 돌아갈 것이다.
청년의 내일
안타깝게도 지금의 대한민국은 위아래를 막론하고 당장의 생존과 소비에만 파묻혀 있다. 단기 실적과 표를 좇는 이들이 자기 자녀세대에게 물려줄 성벽을 쌓는 사이 국가의 미래라는 공공의 곳간은 빠르게 비어가고 있다.
우리가 오늘 '쌀 백 가마'를 다 먹어 치우면 내일 태어날 아이들은 그 청구서를 감당하는 노예로 살아야 한다. 지독한 초저출생의 본질이 여기에 있다. 청년들이 아기를 낳지 않기로 한 것은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회에 내 자식을 태어나게 해 고통받게 하지 않겠다는 가장 슬프고도 강력한 '거부권 행사'다. 국가도 미래도 없이 '나만 잘 먹고 잘 살다 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는 나라에 어떻게 미래를 맡기겠는가.
'돌아볼 어제가 있는 삶'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어제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내일을 위해 오늘을 양보할 수 있다. 米百俵의 결단은 1870년 나가오카만의 일이 아니다. 2026년 봄, 일당 받는 자의 자리에서 새벽 현장으로 향하며 나는 다시 그 굶주린 사무라이들과 칼을 빼든 그들 앞에 굽히지 않은 한 사람을 생각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고유가 지원금 10만원의 셈을 하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선거 공보물에 적힌 200만원, 100만원이라는 숫자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성과급 배분율 협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도 어느 현장에서는 누군가가 새벽 공기를 가르며 묵묵히 일을 시작할 것이다.
그 모든 자리에서 우리는 한번쯤 멈춰 서서 물어야 한다. 이 쌀을 우리가 먹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세울 것인가.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