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활동증명을 둘러싼 논란이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예술인들은 심사 기준의 불명확성과 장기간 심사 지연,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 기준을 손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2010년 11월 6일, 1인 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활동한 이진원씨가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이듬해인 2011년 1월 29일에는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안양시 만안구 석수동의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인디 음악계와 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린 두 예술가였지만, 부당한 계약구조 일정치 못한 수입으로 인해 생활고를 면치 못했다. 이들의 죽음을 계기로 2012년 11월 18일부터 시행된 법이 바로 '예술인복지법', 이 법을 근거로 이튿날인 2012년 11월 19일 설립된 것이 예술인복지재단이다.
예술활동증명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예술인들에게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과 복지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각종 창작지원사업과 임대주택, 고용보험, 대출 프로그램을 신청하기 위한 필수 자격이라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정작 현장 예술인들은 제도에 대한 안내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시각예술가 신윤정씨는 예술활동증명을 네 차례 신청했지만 모두 반려됐다. 그는 “정성심의 기준을 알 수 없어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난감했다”며 “주변 작가들의 경험담으로 추측해보려 해도 기준이 계속 달랐다”고 말했다.
정씨 역시 우여곡절 끝에 심사를 통과했지만, 정씨는 아직 복지재단으로부터 자신의 합격 이유를 명확히 전달받지 못한 상태다. 그는 다음 심사에서 탈락할 경우 같은 과정을 거칠 자신이 없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심사기간 역시 문제였다. 정씨와 신씨를 비롯한 예술가들은 최소 3개월에서 최대 6개월 간 재심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무대연출을 담당해온 한모(31)씨는 "물류센터에서 극장으로 가는 길에 '불인정' 통보를 받았다"며 "4개월을 기다린 것치고는 허무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현실과 괴리된 심사기준 역시 도마에 올랐다.
평면회화 작가 A씨는 옥션 형태의 미술전시회인 '아트페어'가 예술활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을 꼬집었다.
"갤러리와 장기적 관계를 구축하고 개인전을 여는 가장 빠른 방법은 '아트페어'에 돈을 내고 참가하는 것"이 A씨의 설명이다. 국내 예술계에서 신진작가 등용문으로 꼽히는 한 아트페어에 수년간 연속 참가했던 이력을 제출해 '연속성'을 입증하고자 했지만, '기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A씨는 "영부인도 다녀간 키아프/프리즈 같은 초대형 아트페어조차 '개인전'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재할 수 없단 건 말이 안 된다"고 꼬집었다.
설치작가 이승현씨는 “문턱을 무작정 낮춰달라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지, 어떤 기준으로 탈락하는지 명확히 알려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의 과정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예술활동증명 제도의 초기 설계 TF에 참여했던 연극배우 오세곤씨는 “위원으로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지, 오프라인 토론과 논쟁 과정이 있었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예술인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도 비슷했다. 응답자의 63.6%는 현행 심사 기준이 부적절하다고 보았고, 53%는 불인정 사유에 대한 피드백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김가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기획조정팀장은 토론회에서 “예술을 업으로 삼고 있는지, 결과물을 자료로 확인 가능한지, 작품이 대중에게 소비·유통됐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3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못하는 지원자들이 많아진 만큼 불인정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심사 지연에 대해서는 “신청 건수가 급증했지만 이를 처리할 인력이 부족하다”며 “현재 약 10명 내외의 인력이 심사를 담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6년 3월 기준 예술활동증명 심사에 투입되는 인력은 정규직 5명, 계약직 5명이다. 예술활동증명 신청자 43,419명의 서류를 10명 남짓한 인원이 심사하느라 기준이 확립되지 않고 시간이 지체된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반응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부터 시행된 ‘청년예술인 예술활동적립계좌’ 사업이다. 청년 예술인이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정부가 동일 금액을 지원하는 방식의 사업으로, 다수의 신청자가 몰렸다.
그러나 신청 접수는 2026년 2월 4일 기준으로 반나절도 되지 않아 ‘선착순’을 이유로 조기 마감됐다. 심의위원 수가 부족해 심사가 오래 걸린다고 설명하면서, 정작 지원사업 신청은 하루 만에 마감되는 구조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전체 예산은 약 7조8555억 원 규모로, 지난해 대비 11.2% 증가했다. 이 중 예술인복지재단의 몫은 2000억 원 남짓이다. 그러나 정작 그 돈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쓰이는지는 여전히 아무도 알지 못한다.
현장 예술인들은 단순한 예산 확대보다 실제 창작 환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실무자들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앞서 인터뷰에 응한 정 씨는 "현재의 기준이 과연 '창작'에만 전념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며, 예술가의 창작활동 자체를 폭넓게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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