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63세의 스매시, 탁구대 위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 - 니 시아리안이 증명한 열정의 무게

스포츠의 세계에서 '나이'는 흔히 극복해야 할 장벽이자, 결국에는 굴복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한계로 여겨진다. 0.01초의 반응 속도와 폭발적인 근력이 승패를 좌우하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60대를 넘긴 선수가 국제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으로 불릴 만하다. 물론 여기서 한 가지 전제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니 시아리안은 1980년대 세계 최강이던 중국 국가대표팀 출신으로, 수십 년간 최고 수준의 훈련 환경 속에서 경력을 쌓아온 이른바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그러므로 그녀의 사례를 단순히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가능하다"는 식의 평이한 교훈으로 환원하는 것은 오히려 그녀의 삶이 지닌 진짜 무게를 희석시키는 일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수한 이력이 더욱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최정상급 선수들조차 대부분 30대 초중반이면 은퇴 수순을 밟는 탁구계의 현실에서, 63세의 나이로 세계선수권 무대에 서서 세계 랭킹 20위권의 선수와 풀세트 혈전을 펼친다는 사실은 엘리트 경력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그녀 안에 있음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영국 런던의 아레나 웸블리에서 열린 세계탁구연맹(ITTF) 세계탁구선수권 단체전 32강전은 그 '무언가'가 눈앞의 현실로 입증되는 무대였다. 룩셈부르크 여자 탁구대표팀을 이끄는 니 시아리안은 올해 63세의 나이와 세계 랭킹 497위라는 숫자가 무색할 만큼, 탁구대 위에서 여전한 기량과 날카로운 감각을 과시하며 전 세계 탁구 팬들과 언론의 이목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니 시아리안 탁구선수63세 사진국제탁구연맹
니 시아리안 탁구선수(63세) [사진=국제탁구연맹]



런던 웸블리에서 쓰인 이변
 
이날 룩셈부르크가 맞붙은 상대는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은 남자 에이스 우구 칼데라누가 세계 톱랭커로 군림하고 있으며, 여자 에이스 다카하시 브루나(세계 23위)와 그 동생 다카하시 줄리아(세계 111위)를 앞세운 만만치 않은 팀이다. 국가 단위의 탁구 브랜드 파워보다 개별 선수의 세계 랭킹을 기준으로 따지면, 룩셈부르크는 명백히 전력상 열세였다. 팀 내 최고 랭킹 선수인 사라 드 뉘트가 세계 110위이고, 니 시아리안은 497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객관적 전력 차이를 감안했을 때 룩셈부르크의 3-2 역전승은 충분히 '이변'이라 부를 수 있으며, 그 이변의 중심에는 니 시아리안의 투혼이 있었다.
 
 
룩셈부르크가 1경기를 내준 뒤 맞이한 2경기에서, 니 시아리안은 탁구대 앞에 나섰다. 상대는 세계 랭킹 111위의 줄리아 다카하시였다. 자신보다 랭킹이 수백 계단 높고 한참 젊은 선수를 상대로 63세의 노장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두 선수는 풀세트까지 가는 피 말리는 접전을 펼쳤고, 결국 니 시아리안이 게임스코어 3-2(9-11 12-10 11-6 9-11 11-8)로 승리하며 팀의 승부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나이에 따른 체력적 열세를 노련한 경기 운영과 흔들리지 않는 집중력으로 극복해 낸 명승부였다.
 
 
스포츠에서 노련함이 패기를 압도하는 순간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언제나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3경기를 따내며 역전에 성공한 룩셈부르크는 4경기에서 팀의 승리를 확정 짓기 위해 다시 니 시아리안을 내세웠다. 상대는 브라질 여자 탁구의 에이스이자 세계 랭킹 23위 브루나 다카하시였다.
 
니 시아리안은 게임스코어 2-3(5-11 9-11 11-8 12-10 10-12)의 대접전 끝에 아쉽게 패배했다. 이 패배를 단순히 "동료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서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빈약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경기 흐름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녀는 세계 23위를 상대로 3, 4세트를 연속으로 따내며 2-2 동점을 만들었고, 마지막 세트도 듀스까지 끌고 갔다.
 
세계 최상위권 선수를 상대로 497위가 내내 대등한 승부를 펼쳤다는 사실 자체가, 마지막 5경기에 나선 동료 사라 드 뉘트에게는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근거가 되었을 것이다. 드 뉘트는 결국 줄리아 다카하시를 3-0(11-9 11-7 11-4)으로 완파하며 룩셈부르크의 16강 진출을 완성했다. 니 시아리안의 4경기는 패배였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팀 전체의 심리적 토대를 떠받친 버팀목이었다.
 
탁구전문매체 '탁구아프리카'는 "63세 니 시아리안의 놀라운 경기"라며 이 활약을 조명했고, "런던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큰 승리를 거뒀다"고 보도했다. 세계탁구 전문 매체들이 그녀의 이름을 헤드라인에 올렸다는 사실은, 이번 활약이 단순한 고령 참가 그 이상의 경기력으로 평가받고 있음을 방증한다.
 
 
1980년대 중국에서 2020년대 룩셈부르크까지: 6번의 올림픽이 증명하는 역사
 
 
니 시아리안의 탁구 인생을 되짚어보는 것은 곧 현대 탁구의 살아있는 역사를 훑어보는 것과 같다. 그녀는 1980년대에 이미 세계 최강으로 군림하던 중국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이후 1990년대부터는 룩셈부르크 국기를 달고 새로운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그녀가 엘리트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점을 인정한 후에도 여전히 경이로운 부분이 남는다. 룩셈부르크 대표로 처음 출전했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그녀가 올림픽 무대를 밟은 횟수는 무려 6번에 달한다. 탁구 장비의 기술이 발전하고 경기 규정이 수차례 바뀌는 동안, 동세대의 중국 대표팀 동료들이 하나둘 지도자나 해설자로 자리를 옮기는 동안, 그녀는 여전히 선수로 경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이는 엘리트 경력이라는 출발점이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최정상급 선수들이 은퇴 압박을 가장 강하게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십 년을 현역으로 버텨낸 것은 더욱 특별한 선택이자 헌신이다.
 
도쿄에서의 승부
 
한국 탁구 팬들에게 니 시아리안의 이름이 깊게 각인된 계기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였다. 당시 여자 단식 2회전에서 그녀는 17세의 신유빈과 마주했다. 무려 41살의 나이 차를 넘은 이 대결에서 니 시아리안은 특유의 노련한 변칙 플레이로 신유빈을 집요하게 괴롭히며 게임스코어 3-4의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 장면은 '그녀가 오래 현역으로 남아 있는 동력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경기가 끝난 후 그녀는 SNS에 "17세의 젊은 선수, 강해지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 한 문장은 그녀가 탁구를 단순한 승부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자신이 패배한 직후에도 상대의 성장을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탁구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이기고 지는 결과의 부침 속에서도 수십 년간 라켓을 내려놓지 않을 수 있다. 스포츠맨십은 그녀의 인품을 보여주는 장면인 동시에, 그녀의 경력 자체를 가능하게 한 내적 동력의 증거다.
 
 
니 시아리안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의지만 있으면 나이는 문제없다"는 단순한 격언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그녀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읽는 것이다. 그녀의 경력은 세계 최고 수준의 훈련 환경, 탁월한 신체 조건, 그리고 수십 년간 쌓인 경험이라는 복합적인 조건 위에 세워진 것이다. 그 조건들을 무시하고 "당신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반화다.
 
 
그러나 바로 이 특수성 때문에, 그녀의 사례는 오히려 더 날카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돌려보낸다.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던 선수들 대부분은 이미 오래전에 은퇴했다. 같은 출발선에 섰던 수많은 이들이 충분히 '그만할 이유'를 찾아 라켓을 내려놓을 때, 그녀는 왜 계속 탁구대 앞에 섰는가? 그 대답은 성과나 랭킹에서 찾을 수 없다. 세계 랭킹 497위는 그녀가 탁구를 통해 얻는 것이 순위표 위의 숫자가 아님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녀에게 탁구는 자아를 실현하는 삶의 방식이며, 멈추지 않는 도전의 무대다.
 
 
63세의 선수가 뿜어내는 날카로운 스매시에는 젊은 선수들의 폭발적인 움직임과는 결이 다른, 수십 년의 패배와 승리가 겹겹이 다져진 내공이 담겨 있다. 세계 랭킹 23위와 111위의 젊은 에이스들을 상대로 풀세트 혈전을 펼치고, 41살 어린 후배에게 따뜻한 덕담을 건네는 여유. 이것은 기적이 아니라 수십 년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경지다.
 
 
우리 모두가 니 시아리안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녀의 이야기는 이 질문을 조용히 건넨다. '그만할 이유'를 찾고 있다면, 그 이유가 정말 현실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쌓아 올린 통념의 벽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런던의 아레나에서 그녀가 흘린 땀방울이 의미하는 것은 그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몰두하는 데 있어 '늦었다'는 판단을 내릴 권리는, 타인이나 사회적 통념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는 것. 탁구대 위에서 그녀의 시계는, 오늘도 그 누구의 것과도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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