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자의 소설이야기 | 인간·문화·자연] 예선영 작가의 '한성대화재 소헌왕후'

  • 세종의 공백 속 화재 진화 지휘와 한글 창조의 모티브

예선영은 기록의 현장에서 문학의 현장으로 건너온 작가다. 그는 기자로서 오랜 시간 사건을 좇고 사실을 확인하며 역사의 표면을 기록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또 다른 진실을 발견한다. 기록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으며, 더 많은 인간이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그의 문학은 바로 이 공백에서 출발한다.

실록의 문장 사이, 통계의 숫자 아래, 역사서의 여백 속에 존재했으나 남지 못한 사람들.

『한성대화재 소헌왕후』는 그들을 다시 불러내는 작업이다. 기자로서의 냉정한 시선과 작가로서의 상상력이 결합된 그의 문장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기록되지 못한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동시에 그는 오늘의 디지털 문명 속에서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확장되고 또 소외되는지를 함께 사유하며, 과거의 문자 혁명과 현재의 기술 혁명을 하나의 연속된 흐름으로 읽어낸다.

역사는 때로 숫자만 남기고 인간을 지운다. 1426년 세종 8년, 한성의 중심부에서 시작된 불길은 사흘 밤낮을 태우며 도시 전체를 삼켰다. 약 2천여 호의 가옥이 소실되고 수백 명의 생명이 사라진 이 사건은 조선 초기 최대의 도시 재난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기록은 차갑다. “수천 호 소실, 수백 명 사망.” 그뿐이다. 이름은 없다. 얼굴도 없다. 숫자만 남는다. 그 숫자 속에 있었던 사람들의 삶과 고통은 역사에서 지워진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당시 대다수 백성은 글을 몰랐고, 자신의 존재를 기록할 수단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화재의 또 다른 결정적 배경은 ‘권력의 공백’이었다. 당시 세종과 왕세자였던 문종은 강원도 횡성 일대로 사냥을 나가 한성을 비운 상태였다. 국가 최고 통치권자가 도성에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대재난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라 통치 공백 속 위기였다. 왕과 세자가 부재한 도성, 지휘 체계가 일시적으로 흔들린 그 틈에서 불길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고, 대응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난은 언제나 물리적 조건과 정치적 조건이 겹칠 때 더 큰 파괴력을 갖는다. 한성대화재는 바로 그러한 복합적 위기의 전형이었다.

이러한 공백 속에서 권력은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조선의 제도에서 왕후는 정치 전면에 나서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제도의 경계가 무너진다. 현실을 지휘할 수 있는 자에게 권한이 집중된다. 그 중심에 소헌왕후가 있었다. 임신 중이던 그는 피신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주체로 등장한다. 대신들이 허둥대는 사이, 왕후는 묻는다. “지금 불을 끌 것인가, 아니면 나라를 지킬 것인가.” 그리고 결단한다. “백성의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으나, 종묘와 사직이 무너지면 나라는 설 곳이 없다.” 이 선택은 냉혹하다. 그러나 동시에 국가 운영자의 언어다.

그러나 그녀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화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름 없는 죽음들의 행렬이었다. 불길 속에서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그러나 그 누구도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 존재들. 예선영은 이 장면을 냉정하면서도 깊은 연민으로 복원한다.

“타오르는 기와 아래에서 울음은 끊겼고, 그 울음의 주인을 기억하는 이는 없었다.” 또 다른 대목에서는 이렇게 쓴다. “살아도 이름이 없고, 죽어도 이름이 남지 않는다면, 그 삶은 어디에 머무는가.” 이 문장들은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불길이 잦아든 뒤, 왕후는 홀로 남는다. “저들의 이름을, 나는 한 번도 불러보지 못했다.” 이 고백은 권력의 한계를 드러낸다. 보호할 수 없는 생명, 기록할 수 없는 존재 앞에서 권력은 무력해진다. 

이때 비로소 왕후는 “문자 없는 사회”의 비극을 직면한다. 이 경험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면에 남아 축적된다. 소설은 화재 이후 1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뛴다. 궁궐의 서고와 집현전, 그리고 세종의 사유 속에서 무엇이 쌓여갔는지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 축적의 한 축에 소헌왕후의 침묵이 놓인다. 직접 말하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질문. “어찌하여 백성은 자기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는가.”

작가는 이 질문을 대화로 복원한다. “전하, 글이 없는 백성은 바람과 같사옵니다. 지나가도 흔적이 없고, 사라져도 기억되지 않사옵니다.” 또 다른 장면에서는 왕후가 이렇게 말한다. “이름을 남기지 못한 죽음은 두 번 죽는 것과 같사옵니다.” 이 문장들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시대의 진실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언어다. 허구를 통해 더 깊은 사실에 도달하는 문학의 힘이다.

훈민정음은 그렇게 다시 읽힌다. 더 이상 왕의 업적으로만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기록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응답이며, 이름 없는 인간을 역사 속으로 불러들이는 문명적 결단이다.

1426년 화재와 1446년 반포 사이의 18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질문이 축적되고 고통이 사유로 변환되며, 결단으로 응축되는 시간이다.

문자는 권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의 도구다. 한글은 백성이 스스로를 기록할 수 있는 최초의 도구였다. 자신의 이름을 쓰고,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신의 삶을 남길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였다. 이 지점에서 한글은 지식의 체계가 아니라 존재의 장치가 된다. 예선영의 해석은 대담하지만 설득력을 갖는다. 그는 실록과 사료의 사실 위에 문학적 상상력을 더해 하나의 일관된 서사를 구축한다.

한성대화재는 불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조건을 묻는 사건이다. 그리고 『한성대화재 소헌왕후』는 그 질문에 대한 문학적 응답이다. 불은 도시를 태웠지만, 그 불은 질문을 남겼다. 그 질문은 문자로 이어졌고, 문자는 인간을 다시 존재하게 했다.

문자가 없는 사회는 인간을 기록하지 못한다. 기록되지 않는 인간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한글은 글자가 아니라, 인간을 다시 태어나게 한 문명이다. 우리는 지금도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우리는 누구를 기록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를 여전히 기록하지 않고 있는가.

■소헌왕후 누구인가
소헌왕후는 조선 제4대 국왕 세종의 정비로, 본관은 청송 심씨이며 이름은 심온의 딸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단순한 내명부의 최고 지위에 머무르지 않고, 세종과 함께 조선 전성기의 기반을 형성한 핵심 인물이었다. 온화하고 절제된 성품 속에서도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단호한 판단력을 보였으며, 특히 한성대화재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 보여준 결단과 책임 의식은 정치적 리더십의 한 전형으로 평가된다. 또한 세종의 학문과 정책을 이해하고 뒷받침한 동반자로서, 한글 창제라는 문명사적 업적의 배경에도 중요한 정신적 토대를 제공한 인물로 해석된다. 여덟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아 조선 왕실의 계승을 안정시키는 한편, 백성을 향한 깊은 연민과 도덕적 책임 의식을 지닌 왕비로 역사에 남아 있다.
 
사진에이드프라미스
[사진=에이드프라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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