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송 한국은행 총재의 취임은 그 자체로 한국 경제정책 진영의 자산이다. 국제결제은행에서 세계 중앙은행 논의를 이끌었고, 거시금융 분야에서 이론과 정책 실무를 두루 쌓은 보기 드문 글로벌 석학형 총재다. 시장과 학계의 기대가 큰 이유다.
그러나 최고의 경제학자에게도 지금 한국은행이 마주한 현실은 결코 만만치 않다.
신 총재는 취임 일성으로 “신중하고 유연한 통화정책 운영을 통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했다. 정확한 진단이다. 문제는 지금 한국 경제가 통화정책에 가장 까다로운 조합을 동시에 던지고 있다는 데 있다. 중동 전쟁 이후 국제유가 상승으로 물가의 상방 압력은 커졌고, 동시에 성장의 하방 압력도 짙어졌다. 물가를 의식하면 긴축을, 경기를 고려하면 완화를 고민해야 하는 중앙은행으로서는 가장 불편한 국면이다.
물가 불안은 아직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지도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국내 물가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물가가 목표치 2% 안쪽이라는 이유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기대인플레이션을 선제적으로 잡기 위해 금리 인상 카드를 열어둘 수밖에 없지만, 그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다. 빚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연체 지표도 악화 흐름이다.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5월 이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고, 신규 연체도 증가했다. 가계와 기업 모두 상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다. 대출은 늘어나는데 상환능력은 약해지고, 자산가격은 오르는데 신용의 질은 나빠지는 구조다. 시장금리는 이미 이를 선반영하고 있다.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 역시 고정형 4.4~7.0%, 변동형 3.6~6.0%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
신 총재가 말한 ‘신중함’은 미덕이라기보다 선택지가 좁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는 취임사에서 금융안정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강조했다. 은행과 비은행, 국내와 해외의 경계가 흐려져 기존 틀만으로는 금융시스템 위험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진단이다. 카드론, 부외거래, 비전통 금융상품 등 규제의 경계를 비껴가는 자금 흐름은 이미 시장 전반에 확산돼 있다. 지금 금융시장의 핵심 리스크는 폭발이 아니라 누적이고, 붕괴가 아니라 왜곡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방향 제시와 정책 성공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지금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정교한 진단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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