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 3년이 지났지만 불이 꺼진 채 방치된 강남 도곡동의 한 하이엔드 빌라가 분양 실패로 공실 상태에 놓이면서 초고가 전략과 금융 구조 한계가 맞물려 강남 핵심 입지조차 비어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9일 아주경제가 찾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오데뜨오드 도곡’ 현장에는 건물 외벽 곳곳에 ‘출입금지’, ‘유치권 점유 행사중’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빼곡이 걸려 있었다. 노란색과 빨간색 현수막이 건물을 둘러싸며 외부인의 접근은 사실상 차단된 상태였다.
이 단지는 강남대로 벤츠 전시장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소형 하이엔드 도시형 생활주거 공간으로, 양재역과 강남역 사이 핵심 입지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 6층~지상 20층, 1개동 86세대 규모로 특수목적기업(SPC) 도곡닥터스가 시행하고 DL이앤씨가 시공을 맡았다.
이 단지는 2023년 7월 준공 이후 분양이 이뤄지지 않으며 장기간 공실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2024년 9월부터 공매가 진행됐지만 유찰이 반복되며 매각 역시 난항을 겪고 있다. 시행사와 대주단 간 갈등이 격화되면서 지난해 8월에는 물리적 충돌을 동반한 무단 점유 사건까지 발생했다.
분양가 역시 시장 수요를 넘어서며 부담으로 작용했다. 2020년 분양 당시 3.3㎡당 7299만 원으로 책정돼, 인근 ‘래미안 원베일리’보다 약 38% 높은 수준이었다.
현장 인근 중개업소들은 사실상 거래가 멈춘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인근에 한 공인중개소는 “해당 건물은 유치권 행사 상태라 일반 거래가 불가능하다”며 “현재는 전체 건물을 매수할 투자자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공인중개소 역시 “1200억원 수준의 통매매만 논의되고 있을 뿐 전·월세 매물은 전혀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분양가 상승과 수요 위축, 금융 구조 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하이엔드 시장 전반의 불안 신호가 현실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선택된 사업 구조가 오히려 금융 리스크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혁준 나이스신용평가 금융SF평가본부장은 “분양 보증을 받지 않는 사업 구조는 사업성에 상당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분양 보증 유무는 금융권 대주단이 해당 사업의 안정성을 판단하고 대출을 실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 보증을 포기한 것이 시장 하락기에 ‘금융적 고립’을 초래했다는 의미다. 공적 보증이라는 안전망이 없는 상태에서는 본PF 전환 등 자금 조달 단계에서 큰 약점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결국 화려한 브랜드나 고분양가 전략보다 사업을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하는 ‘보증 체계’의 부재가 하이엔드 시장을 무너뜨린 요인 중 하나라는 평가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시장 호황기에 무리한 경영을 택한 하이엔드 사업장의 좌초는 인쇄물 수요 감소로 인쇄업이 축소되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시장 재편 과정”이라며 “사회적 여파가 큰 우량 사업장에 지원을 집중하되 자생력 없는 부실 사업장은 과감히 도태시키는 것이 시장 경제에 부합하는 연착륙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가용 유동성 변화, 아파트 대비 커뮤니티 및 관리 서비스의 실질적 가치, 금리 상단에 따른 적정 분양가 타당성 등에 대한 냉정한 데이터 기반의 시장 분석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시대의 흐름과 수요자의 요구를 망각한 공급자 위주 마인드가 부른 결과”라며 “입지와 가격 경쟁력이라는 본질 대신 화려한 인테리어로 자산가를 유혹할 수 있다는 오판이 시장 외면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고분양가 단지들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로 분양가와 시장 가격 간의 격차 축소, 수분양자 대출 규제 등을 꼽으며 “사업성이 검증된 단지에 대해서는 전략적인 PF 규제 완화를 통해 최소한의 주택 공급이 이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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