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품에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이었지만 감독과 배우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느꼈던 감각은 모두 다를지도 모릅니다. '최송희의 B-컷'은 스크린에 담긴 'A-컷' 너머 생생한 현장이 담긴 이면의 기록을 주목합니다. 감독, 배우들의 인터뷰를 교차해 완성된 프레임보다 더 뜨거웠던 'B-컷'의 순간을 재구성합니다. <편집자 주>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왼쪽), 배우 김혜윤 [사진=쇼박스]
※본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살목지'는 저수지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이를 다시 촬영하기 위해 현장으로 향한 팀이 검고 깊은 물속의 무언가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그린다. 단순한 괴담이나 자극적인 장치에 기대기보다, 물가에 선 사람들이 서서히 잠식돼 가는 감각과 설명되지 않는 기척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작품이다. 화면 안에서는 저수지라는 공간이 인물들을 집어삼키고, 화면 밖에서는 그 공포를 어떤 결로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감독과 배우의 대화가 촘촘히 오갔다.
이상민 감독과 김혜윤은 공포 장르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위에서 출발했지만, 현장에서 붙든 감각은 조금 달랐다. 감독이 소리와 장치, 공간의 결을 먼저 세운다면, 배우는 그 안에서 끝내 버티지 못하고 흔들리는 인물의 감정을 쌓아 올렸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감각은 '살목지'의 공포를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었다. 먼저 두 사람이 현장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 눈에 띈다.
"김혜윤 씨는 성격 자체도 성실하고 모범적이세요. 제가 이 정도 규모의 영화가 처음이니까 정말 많은 의지가 됐죠. 좋은 의견을 많이 주셨고 어려운 앙상블 신도 잘 정리해주셔서 고마웠어요. 표현력 자체도 굉장히 좋으시고요. '정도'를 딱 아시는 분 같았어요. 호흡이 정말 잘 맞았던 거 같아요."(이상민 감독)
"현장에서 이 감독님은 머릿속에 확고하게 그려낸 시나리오의 이미지가 있으시지만, 연기에 있어서는 자유롭게 의견을 내고 시도해보게끔 열어주셨어요. 많은 대화를 통해서 장면을 만들어 가는 걸 좋아하시는 스타일이셨어요."(김혜윤)
그런 호흡은 장르적 취향이 닿아 있었기에 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두 사람 모두 공포 장르를 좋아했고, 현장에서는 장비와 연출 방식에 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오갔다. 이상민 감독은 자신이 평소 공포 유튜브를 즐겨 본다고 했고, 그 관심이 영화 안의 장치로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저는 평소 공포 유튜브를 굉장히 좋아해요. 유튜버들이 고스트 박스 같은 걸 사용하는 걸 보면서 '언젠가 내 영화에도 꼭 써봐야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고스트 박스를 보면서 보통 치치직 소리만 나는데 어느 스팟에서 소리가 줄줄 나오고 있다면 정말 무서울 것 같더라고요. 실제 유튜브로 보았을 때도 무서웠던 요소들이어서 영화에 잘 녹여내보려고 했어요."(이상민 감독)
"저도 공포를 굉장히 좋아하다보니 그 장비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감독님도 고스트 박스를 잘 알고 계셔서 장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어떻게 이용할지 상의해보기도 했죠. 하하."(김혜윤)
영화 '살목지' 스틸컷 [사진=쇼박스]
김혜윤이 맡은 수인은 이 영화의 중심을 잡는 인물이다. 살목지로 향하는 팀 안에서 리더십을 가져야 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무너질 수 있는 감정의 균열을 안고 있다. 김혜윤은 수인을 설계할 때 물에 대한 공포와 죄책감을 가장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감독님과 수인 캐릭터를 만들어 갈 때 물에 대한 공포, 즉 트라우마와 죄책감을 키워드로 삼았어요. 거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굉장히 큰 친구라서 모든 면에서 지쳐 보이는 걸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고 봤죠. 조금 찌들어있고, 지쳐있고, 다른 사람들과 있어도 다른 생각에 빠져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캐릭터를 설계했어요."(김혜윤)
"로드뷰 촬영에 대한 걸 조사하며 필요한 역할들에서부터 캐릭터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로드뷰 컨트롤러, 사령탑, 플레이스 뷰, 다양한 역할들을 두고 역할 배분을 했죠. 수인을 중심으로 만들어간 건 물귀신은 제 발로 (물 속으로) 끌어들여야하니까 그 캐릭터의 서사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고요. 모두 로드뷰 때문에 살목지를 가지만 내심 각자 다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중 중심을 잡는 리더 같은 느낌의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보았어요. 이성적 판단력이 있어야하는데 살목지에 집착하는 이유가 뭘까? 그래서 수인에게 '죄책감'이라는 키워드를 준 거고요."(이상민 감독)
흥미로운 건 수인의 과거가 영화 안에서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몇몇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그 사연을 짐작할 뿐이다. 김혜윤은 오히려 그 방식이 수인과 공간의 공포를 살리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고 봤다.
"관객들이 영화 속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만 집중하길 바랐어요. 전사에 대한 걸 풀어보고 싶었는데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걸 생각해보다가 아무리 해도 흐름이 다른 쪽으로 빠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뉘앙스로만 알려주게 되었던 거 같아요. 수인이 물속에서 죽을 뻔한 경험이 있고, 그런 트라우마로 인해 물을 무서워하고 로드뷰 촬영에서 살목지에 배정되었는데 꺼려지지만 억지로 간다는 설정인 거거든요. 공간 자체가 주는 공포, 물이 주는 불편함을 담았던 거죠."(김혜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수인의 전사에 대해 말해주셨어요. 영화 속 내용이었지만 영화에는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 감정들을 압축 시켜서 관객들에게 보여드리려고 했던 거죠."(김혜윤 분)
영화 '살목지' 스틸컷 [사진=쇼박스]
김혜윤이 특히 강하게 기억하는 장면은 물수제비 신이다. 경준과 성빈이 시간을 때우듯 물수제비를 던지는 순간은 잠시 호흡을 늦추는 듯 보이지만, 영화는 그 익숙한 리듬을 단숨에 낯선 공포로 바꿔놓는다.
"공포 마니아로서 이 영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면은 물수제비 신이에요. 극장에서 가장 놀란 장면이기도 하죠. (촬영할 때) 반대쪽에서 날아오는 건 CG니까 육안으로 못 봤는데, 큰 화면으로 보니 깜짝 놀라기도 하고 정말 무섭더라고요."(김혜윤)
"사운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언제 고요해져야하지? 공포영화를 볼 때 가장 좋은 순간은 다같이 소리를 죽이는 순간이잖아요. 고요를 잘 살리고 싶었어요. 돌이 날아오는 소리, 타격 있는 느낌이나,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는 날카롭게 꽂히기를 바랐고요. 찰랑이는 소리가 얼마나 세게 느껴지길 바라는지, 기사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요. 물인지 모를 때는 소리를 죽이고, 카메라가 물 속인걸 알려주고 나면 크게 느껴지게끔 연출했죠."(이상민 감독)
결국 '살목지'의 공포는 하나의 방식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상민 감독은 공간과 소리, 장치의 배열로 관객을 조여왔고, 김혜윤은 그 안에서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잠식된 수인의 내면을 끌고 갔다. 같은 저수지를 두고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접근한 감각들이 한 지점에서 맞물리며, 이 영화만의 서늘한 결을 만들어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