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교량”, “모든 발전소”, “하룻밤이면 나라 전체를 없앨 수 있다”는 식의 언어는 단순한 압박을 넘어 국가 기능 전체를 겨냥한 위협에 가깝다. 민간 인프라 타격이 전쟁범죄 논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질문에도 개의치 않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발언은 협상용 수사를 넘어 실제 행동 가능성을 의도적으로 부각한 메시지로 읽힌다.
트럼프는 여러 차례 시한을 정하고 연장해 왔고 “최종시한”이라는 표현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래서 전말 발언은 아시아 금융시장에 큰 영향은 없었다. 강경 발언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협상 상대가 체면을 살릴 최소한의 틈을 보이면 다시 시간을 주는 방식은 그의 익숙한 협상 문법이기도 하다.
이란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란에게는 현재 핵무기보다 호르무즈 해협이 협상카드인 동시에 무기이다. 이란은 중재국들이 마련한 45일 휴전안을 공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일시적 휴전이 아니라 영구적 종전과 제재 해제를 원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하는 것은 호르무즈 개방을 포함한 즉각적 양보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국가에게는 단순히 종전을 하냐 안하냐 보다는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에 관심이 쏠려있다. 이 해협은 단순한 외교 카드가 아니라 전 세계 에너지 흐름의 물리적 병목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번 기자회견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합의”의 일부로 “석유의 자유로운 이동”을 직접 언급했다. 즉 미국이 원하는 것은 이란의 원론적 태도 변화가 아니라, 호르무즈에서 실제 선박이 다시 다니게 만드는 가시적 결과다. 이 점에서 이번 시한은 외교적 체면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와 물류라는 실물의 문제에 더 가깝다. 그래서 더 위험하고, 또 그래서 더 쉽게 물러서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트럼프가 말을 또다시 바꿔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에게도 별로 없다. 동맹국들에게 “호르무즈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이 직접 해협을 챙기라”는 식의 메시지를 던지면서도, 정작 본인은 호르무즈 개방을 가장 중요한 협상 조건으로 걸고 있다. 말로는 호르무즈 개방을 사용국가에 넘겼지만 이를 더는 미룰 수는 없다고 판단한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에너지 자립국이라는 점과 별개로 국제유가 급등과 자국 내 휘발유 가격 상승이 트럼프에게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낮지만, 국제유가 급등이 미국 소비자 물가와 휘발유 호르무즈 해협의 현실적 해법은 ‘전면 개방’보다는 ‘통제된 부분 개방’일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체면을 세우려면 최소한 항행이 재개됐다는 신호가 필요하고, 이란은 호르무즈 지렛대를 한꺼번에 포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양측이 당장 만날 수 있는 지점은 완전한 정상화가 아니라, 제한적이고 단계적인 통과 재개다. 일부 선박, 일부 시간대, 일부 조건 하에서 운항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란으로서는 해협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전면 충돌을 피할 수 있고, 트럼프로서는 “석유의 자유로운 이동”을 일부라도 복원했다는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중재국들이 마련한 45일 휴전안 역시 그 자체가 최종 해법이라기보다, 이런 제한적 통제 완화의 틀을 만드는 과도기 장치에 가까워 보인다. 문제는 이란이 일시 휴전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래서 부분 개방조차 손쉽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럼에도 전면 개방과 전면 파괴 사이의 중간지대가 있다면, 그것은 선택적이고 단계적인 운항 재개 외에는 찾기 어렵다.
이는 한국에는 크게 도움이 안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가 완전히 봉쇄되지 않더라도, 통과가 선별적이고 불규칙해지면 한국처럼 중동 의존도가 높은 수입국은 물량 자체보다 물류의 예측 가능성을 잃는다. 이는 가격 상승보다 더 곤란한 문제다. 기업은 도입 계약, 선박 배치, 재고 운영, 정유·발전 일정 등을 모두 다시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휘발유 가격 문제도 이제는 본격 구간에 들어섰다. 자료에 따르면 6일 현지시간 기준 브렌트유 6월물은 배럴당 109.77달러, WTI 5월물은 112.41달러로 각각 올랐다. 또 국제유가 변동은 통상 2∼3주의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된다. 이미 국내 기름값은 2차 석유 최고가격제 영향과 국제유가 상승이 겹치며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의 2,000원 돌파 관측도 나오고 있다.
정부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특사단을 중동에 보내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강 실장은 전략경제협력 특사 자격으로 카자흐스탄, 오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원유와 나프타 확보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산업통상부 장관과 에너지 기업 관계자들도 동행한다.
정부는 이미 UAE로부터 2,400만 배럴의 원유를 우선 공급받기로 합의했고, 일부 물량은 국내에 도착하고 있다. 다만 중동 사태가 완전히 해소되기 전까지는 대체 공급선 확보 노력이 불가피하다. 물가 압력이 본격화되기 전에 이를 차단하는 데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기대 인플레이션 심리를 억제할 수 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르포] 중력 6배에 짓눌려 기절 직전…전투기 조종사 비행환경 적응훈련(영상)](https://image.ajunews.com/content/image/2024/02/29/20240229181518601151_258_16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