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창립 42주년] 30년간 괴롭힌 가짜 뉴스 "정권 수혜받은 기업"…현실은 '역차별'

  • 시가 보다 1500억원 더 비싸게 내고 통신 사업 진출

1984년 3월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설립 당시 모습 사진SK텔레콤
1984년 3월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설립 당시 모습. [사진=SK텔레콤]


SK텔레콤을 30년째 괴롭히는 가짜 뉴스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 사돈 기업이 특혜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1997년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SK그룹이 여타 대기업과 비교해 특별한 특혜가 없었다는 점이 밝혀졌지만 여전히 유튜브 등을 통해 가짜 뉴스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실은? 오히려 노태우 전 대통령과의 관계로 인해 더 비싼 값을 치르면서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하고 특혜 시비로 양보해야 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29일 IT업계에 따르면 선경(현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준비는 1984년 한국이동통신서비스 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고(故) 최종현 선대회장은 1980년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 후 다음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정보통신을 선정했다. 미주경영기획실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신설하고 1989년 미국에 유크로닉스를 설립했다. 이어 1990년 CSC와 선경정보시스템을, 1991년 선경텔레콤(이듬해 대한텔레콤으로 사명 변경)을 차례로 만들었다. 휴대전화 개념이 생소하던 시기에 약 10년간 기술과 역량을 축적한 과정이었다.
 
1992년 4월 체신부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허가신청을 공고했다. 대한텔레콤을 비롯해 포철, 코오롱 등 6개 컨소시엄이 경쟁에 참여했다. 1992년 7월 1차 심사에서 대한텔레콤은 총점 8127점으로 1위를 기록했다. 2위 코오롱(7783점), 3위 포철(7711점)과 점수 차가 뚜렷했다. 8월 20일 2차 심사에서도 대한텔레콤이 최고 점수로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정됐다.
 
그러나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과 언론에서 반발이 이어졌다. 사업자 선정 일주일 만인 1992년 8월 27일 대한텔레콤은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공문이 확인됐다. 정해창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에게 발송된 ‘이동전화사업에 관한 권고’ 문서다. 공문은 “귀사 대주주인 유공이 대통령과의 특수관계임을 이유로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이 크게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며 “사업권을 자진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회고록에서는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와대나 내가 개입한 일은 절대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송언종 체신부 장관에게 “엄정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고도 기록했다. 당시 체신부 심사평가단장 박성득은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심사했다”고 증언했다. 이동통신사업추진전담반장 석호익도 실체 없는 의혹이 여론을 키웠으며 사업권 반납 외에 해결 방법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사업권 반납 후 선경은 컨소시엄 참여 기업들이 입은 손실도 상당 부분 감내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 출범 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재선정이 추진됐으나 선정 권한이 전경련으로 넘어갔다. 당시 최종현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경은 참여를 포기했다. 이는 두 번째 포기였다.
 
선경은 대신 1994년 1월 한국통신이 보유한 한국이동통신 주식 민영화 공개입찰에 참여했다. 사업권 배정이 아닌 가격 경쟁 입찰이었다. 1월 24~25일 진행된 입찰에서 선경은 한국이동통신 주식 23%(127만5000주)를 주당 33만5000원에 인수했다. 총 4271억원 규모였다. 입찰 직전 시가는 8만원대였으며 다른 입찰자 평균가는 주당 18만7400원이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선경은 예상 가격보다 약 1500억원을 추가로 부담했다.
 
최종현 회장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시가로 사야 한다기에 부담이 커 유찰시킬까 했으나 또 주식 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작전을 쓴다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눈 딱 감고 사들였다”고 말했다.
 
1994년 7월 한국이동통신 경영권을 확보한 뒤 선경은 1996년 세계 최초 CDMA 디지털 이동전화 상용화에 성공했고 1997년 사명을 SK텔레콤으로 변경했다.
 
기록이 보여주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1992년 사업권 획득은 정치적 압력으로 무산됐고, 1994년 인수는 시장 가격에 비해 약 4배를 지불한 공개 경쟁 입찰이었다. ‘대통령 사돈’이라는 프레임은 오히려 사업 진출에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 당시 공문, 회고록, 입찰 자료, 관계자 증언이 나타내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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