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덮친 '원가 쇼크']비용은 오르는데 가격 못 올린다…제조업 '마진 붕괴' 경고음

  • 중동發 유가 급등·1500원대 환율…기업 원가부담 확대

  • 투자 위축·고용 둔화 우려…실물경제 전이 가능성↑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사진연합뉴스
전남 여수시 석유화학단지[사진=연합뉴스]
 

국제 유가 상승과 고환율·고금리 부담이 겹치면서 제조업 현장이 ‘원가 상승–가격 통제’라는 이중 압박에 놓이고 있다. 원재료와 물류비, 금융비용이 동시에 오르고 있지만 소비 회복세가 제한적인 데다 정부의 물가 관리 기조까지 더해지면서 기업들이 비용 증가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월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원재료와 중간재 가격이 동반 상승하는 반면 최종재 가격 상승은 제한되며 비용 증가분이 기업 내부에 머무는 흐름이 확인된다. 지난달 국내공급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5% 상승했으며 이를 구성하는 원재료(0.7%)와 중간재(0.6%)가 함께 올랐다. 반면 기업이 출하하는 제품의 마지막 단계 가격인 최종재는 0.2% 상승에 그쳤다.

이는 원재료에서 시작된 생산 비용 상승이 중간재를 거쳐 생산 단계 전반으로 확산됐지만 출하 단계에서 가격을 충분히 올리지 못하면서 ‘마진 압박’이 구조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기업들은 비용은 오르지만 가격은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며 수익성 악화 압력이 커지고 있다.

이 같은 구조가 형성된 배경에는 수요와 정책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내수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한 가운데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까지 겹치면서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선뜻 인상하기 어려운 환경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도 가격 인상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중동 사태 이후 석유제품에 대한 최고가격 지정제를 시행하고 돼지고기·계란·고등어 등 주요 먹거리와 생활 필수품을 포함한 23개 품목을 ‘민생물가 특별관리 품목’으로 지정해 가격 관리에 나섰다. 가공식품과 축산물 등 생활 밀접 품목을 중심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조사를 강화하면서 업계로서는 가격 인상 여지가 더욱 좁아진 상황이다.

실제로 일부 품목에서는 가격 인하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라면과 식용유에 이어 과자·아이스크림 등 주요 식품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거나 인상 계획을 보류하는 움직임을 보이며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조정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다만 정부의 물가 관리 정책을 둘러싼 평가는 엇갈린다. 담합 등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고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가격 결정 과정에 대한 개입이 확대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제 유가와 환율 상승이 맞물리며 기업들의 비용 부담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중동 사태 이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고 원·달러 환율 역시 1500원대를 넘나들며 수입 원자재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외 변수는 제조업 원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과 국제 유가가 각각 10% 상승하면 국내 기업의 전체 원가는 2.82%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은 원가 상승률이 4.42%에 달해 서비스업(1.47%)보다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연구원도 유가 상승이 생산비를 끌어올리는 구조를 지적했다. 국제 유가가 10% 상승할 때 제조업 전체 생산비는 0.71%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석유제품(6.3%)과 화학제품(1.59%)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업종일수록 비용 상승 압력이 크게 나타났다.

원가 상승과 가격 통제 사이에서 기업 부담이 커지는 구조가 지속되면 투자 위축과 고용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충분한 마진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이 설비투자 축소나 신규 사업 지연, 인건비 절감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원가 부담을 흡수할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경영 압박이 먼저 가시화될 수 있다.

홍성욱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동 사태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은 업종별·기업별로 상이할 수 있다”며 “포괄적인 대응책과 함께 업종별·기업별 상황에 맞춘 피해 경로별 맞춤형 지원 체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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