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노동시장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졌던 전문직 일부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직업 구조가 재편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등장 이후 보고서 작성, 번역, 데이터 분석 등 지식 기반 업무를 중심으로 자동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노동시장 전반의 구조를 흔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최근 경제지 포춘과의 인터뷰에서 AI가 노동시장에 미칠 영향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번째는 AI 발전이 기존 화이트칼라 직종에 직접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AI가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인간의 업무를 더욱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생성형 AI는 문서 작성과 데이터 정리, 번역과 같은 반복적인 지식 노동에서 강점을 보인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경험과 시간이 필요했던 업무를 AI가 단시간 내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일부 전문직의 업무 구조도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직군이 변호사와 회계사다. 국내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회계사 역시 1차와 2차 시험을 모두 통과해야 하며 이후 실무 수습 과정을 거쳐야 한다. 오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한 대표적인 전문직 진입 과정이다.
하지만 AI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전문직의 업무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회계업계에서는 이미 AI 도입이 빠르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 은 2023년 10월 생성형 AI 전담 조직인 ‘Gen AI팀’을 출범시켜 업무 효율화에 나섰다. 이들은 자체 개발한 거대언어모델(LLM) ‘링고’를 활용해 회계와 법률 관련 번역 업무 등에 AI를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복 문서 작업을 AI가 처리하면서 업무 속도를 높이고 인력 부담을 줄이려는 시도다.
전문직을 준비하는 청년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변화는 적지 않은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3년째 로스쿨 진학을 준비 중인 정모씨(29)는 “전문직은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AI가 법률 업무까지 일부 대체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미래에 대한 불안이 생긴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송무 변호사나 기업의 사내 변호사처럼 법률 업무는 다양해 아직까지는 AI로 인한 타격이 크지 않은 것 같다”며 “일부 업무는 변화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수요는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법률업계에서는 아직까지 AI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법률 판단에는 복잡한 해석과 책임 문제가 따르기 때문이다. 다만 판례 검색이나 문서 정리 등 일부 업무에서는 이미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AI로 대체하기 어려운 직종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분야가 현장 경험과 신체 활동이 필요한 이른바 ‘블루칼라’ 직종이다. 건설, 설비, 전기, 도배와 같은 기술직은 숙련된 경험과 현장 판단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작업 환경이 매번 달라지는 데다 예상치 못한 변수도 많아 현재 기술 수준의 AI가 이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현장 노동은 단순 반복 업무와는 성격이 다르다. 같은 공사 현장이라도 건물 구조와 환경, 작업 상황이 매번 달라진다. 장비 운용뿐 아니라 동료 작업자와의 협업, 돌발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AI가 강점을 보이는 정형화된 업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영역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AI 시대가 오히려 블루칼라 직종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자동화 기술이 발전할수록 사람의 경험과 숙련도가 필요한 현장 직종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건설·설비 업계에서는 숙련 기술 인력 부족 문제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고령화와 청년층의 기피 현상이 겹치면서 현장 인력 수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분야에서는 숙련 기술자의 임금이 상승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노동시장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꾸는 계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사무직이나 전문직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직업으로 평가 받으며 청년층의 선호도가 높았다. 반면 현장 기술직은 상대적으로 기피 직종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AI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반복 사무 업무는 자동화의 영향을 받는 반면, 숙련 기술과 현장 경험이 필요한 직종은 오히려 대체가 어려운 분야로 재평가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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