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 논설주간]
봄이 되니 날씨가 따뜻한 날이면 중국 대륙에서 건너온 미세먼지로 시야가 뿌옇다. 지난달 19일, 그날도 최고기온이 영상 8도까지 올라간 오산 공군기지 부근엔 미세먼지가 잔뜩 꼈다. 9홀짜리 체력단련용 공군골프장에도 미세먼지와 안개가 껴 날아가는 공이 잘 안 보였다. 그런 날씨에 활주로에서 전투기들이 잇달아 이륙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공군 학사장교로 1978년부터 2년간 전투 비행장에서 근무하는 동안 조종사들에게 얻어들은 지식에 따르면 이날 이륙한 전투기들은 미군 조종사들이 모는 전투기들이었다. 우리 조종사들보다 키가 크고 체력이 좋은 미군 조종사들은 이륙하자마자 거의 수직으로 상승해서 비행고도를 잡는다. 착륙할 때도 거의 활주로 끝에 와서 수직으로 하강하면서 급회전해서 랜딩한다. 한·미 합동훈련 때면 우리 공군 비행대대에는 “미군의 비행을 흉내 내지 말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리기도 했다.
알고 보니 지난달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오산 공군기지에서 이륙한 미 F-16 전투기들이 서해상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과 중국방공식별구역(CADIZ) 사이 공역까지 날아가 미리 통보를 받지 못한 중국 측이 J(Jian· 殲)-16 전투기 10여 대를 대응 출격시키는 상황이 벌어졌다고 한다. 한 종편TV 뉴스는 이때 출격한 미 전투기들이 미사일 발사가 가능한 실탄 장착 상황이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 미디어들의 엇갈리는 보도로 팩트가 흐려졌지만 안규백 국방장관이 미 전투기들의 비행으로 서해상에서 미·중 충돌 상황이 조성된 데 대해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전에 통보해주지 않은 데 대해 항의해서 사과를 받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브런슨 사령관은 나중에 “우리는 대비 태세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고 밝히는 혼선이 빚어졌다.
문제는 이 사건을 보도하는 중국 인터넷 매체들의 보도 태도다. 중국의 많은 인터넷 매체들은 서해 상공의 미·중 공군기 대치 사건을 블룸버그통신 보도와 AI Deep Seek가 생성한 근거 불명의 자료를 인용해서 전하면서 “중-미 전투기 황해 대치의 내막 : J-16이 F-16을 압도하다. 미군 전투기들의 목표는 뜻밖에도 한국이라는 설이 있다”고 흥미 위주로 보도했다. “J-16이 F-16을 압도했다”는 근거로는 KADIZ를 넘어 중국 영공으로 접근하던 F-16 전투기들이 J-16이 출격하자 즉각 퇴각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미군 전투기들의 출격 목적은 “이재명 대통령이 연초에 베이징(北京)을 방문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가까워지고 있는 한·중 관계의 이간을 겨냥한 것”이라는 황당한 해설도 곁들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2월 28일 이스라엘과 함께 테헤란을 공습해서 하메네이를 비롯한 이란 지도부를 ‘제거’해 버렸다. 2월 18~19일 서해 공해상 미·중 전투기 대치 상황이 벌어진 열흘 뒤의 일이다. 물론 두 사건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다고 밝혀진 것이 없다. 그러나 테헤란 공습 이후 벌어지고 있는 미· 이스라엘과 이란 전쟁 상황을 감안한다면 오산기지에서 출격한 미 F-16 전투기의 서해 상공 비행에 대해 대응 출격 명령을 내린 중국 북부전구 선양(瀋陽) 사령부 중국군 지휘관들은 미국의 테헤란 공습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지난해 12월 5일 미 백악관이 발표한 NSS(National Security Strategy·국가안보 전략)와 올해 들어 지난 1월 23일 미 전쟁부(Department of War·전 국방부)가 발표한 NDS(National Defence Strategy·국가 방어전략)를 잘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NSS에서 미 백악관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방위부담을 늘려 “적들을 저지해서 제1도련선을 보호해줄 능력을 갖출 것(to deter adversaries and protect the First Island Chain)”을 명확히 요청했다. 미 전쟁부의 NDS도 “우리는 (중국 군사력의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제1도련선을 따라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할 것이며, 이 지역의 동맹국들도 우리의 집단방어에 더 큰 노력을 더 해줄 것(key regional allies and partners to do more for our collective defense)”을 분명히 요구했다.
미 백악관과 전쟁부가 NSS와 NDS에서 한국과 일본에 방어해달라고 요청한 제1도련선은 일본열도와 그 남쪽으로 이어진 오키나와 섬들과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를 연결하는 선이다. 이 선은 1951년 미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가 당시 소련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저지하기 위해 동중국해에 그은 선이다. 1980년대에 중국 해군 사령관 류화칭(劉華淸)이 ‘근해 적극 방위전략’의 핵심 전략으로 제1도련선 연안 방어전략을 발표했다.
일본은 이미 제1도련선을 따라 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이며, 대만에서 110㎞밖에 떨어지지 않은 요나구니(與那國)섬에 미사일 기지 건설을 진행 중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1도련선을 방어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북한의 대남 공격은 한국군이 알아서 저지하고 미국이 제1도련선으로 접근하는 중국을 저지하는데 일본과 함께 도와달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산기지에서 미 전투기 F-16 10여 대가 서해 상공 중국 영공 근처까지 비행해서 미·중 전투기 대치 상황이 빚어진 데 대해 안규백 국방장관이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한 것이 사실이라면, 또 그런 사실이 트럼프와 헤그세스 전쟁부 장관에게 알려진다면 이들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미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테헤란 공습과 이란 지도자 하메네이 피격 사망 일주일 뒤인 3월 5일 베이징에서는 1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개막했다. 미 뉴욕타임스는 전인대 개막 사실과 관련해 “중국이 1991년 이후 35년 만에 가장 낮은 경제성장률인 4.5~5%를 성장 목표로 제시했다”는 사실과 국방 예산을 7% 확대한 사실, 그리고 미국과 서방의 산업 군사 기술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제15차 5개년 계획을 제시한 사실을 전했다. 그러면서 “몇 주 뒷면 시진핑은 트럼프를 베이징에서 만날 예정이지만 트럼프는 중국의 전략적 파트너인 아야툴라 알리 하메네이를 폭사시키고,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함으로써 미국을 최대의 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시진핑에게 미국의 우위를 확인시켜 주었다”고 전했다. NYT는 트럼프가 보여준 “잔인한 폭력의 사용(Specter of Brute American Force)을 시진핑을 향해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중국의 분석가들이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한 미국의 '잔인한 폭력' 사용은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정치국원 겸 외교부장의 입을 얼어붙게 했다. 8일 인민대회당 외교부장 외국 기자 회견에 나온 왕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군사적 타격에 대해 중국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이란 문제의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현재의 국제정세에 대해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결론은 전쟁을 중단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중동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본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첫째는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라는 것이고, 무력은 남용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내정불간섭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고, 뜨거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동 국가들의 진정한 친구이자 전략적 동반자인 중국은 중동 국가들이 함께 안전을 도모해야 하며, 질서를 회복하고, 인민들의 안녕을 찾게 해서 세계 평화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왕이는 미국이라는 국명을 거명해서 비난하거나 트럼프에 대한 비난과 경고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물에 물 탄 듯 외교 원칙만 나열했다. 왕이는 트럼프의 이란 공습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조만간 이루어질 트럼프와 시진핑의 베이징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중국과 미국은 모두 대국이니만큼 피차 상대방을 바꿔놓을 수는 없고, 서로 상대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기쁘고 안심이 되는 것은 양국 지도자들이 모두 신체가 건강하다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2026년 미·중 관계 전망에 대해서는 “건강하고 안정되게 발전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온건하게 전망했다.
시진핑 국가주석 겸 중국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이 7일 오후 인민대표대회를 계기로 인민해방군과 무장경찰 부대 소속 인민대표들과 만나 토론을 하면서 한 지시도 주목받았다. 시진핑은 “반(反)부패 활동과 당의 군대에 대한 절대적인 영도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견지할 것이며 국방과 군대의 현대화는 마음과 힘을 다해 추진하되 행온치원(行穩致遠·멀리 보고 안정된 걸음으로)하라”고 주문했다. ‘행온치원’은 이란과 베네수엘라에서 사용된 미군의 힘을 보고 선택한 용어인 듯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상태가 된 우리로서는 미국과 중국이 주고받는 말의 어조 변화에 주목하고 심사숙고해서 말하고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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