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 논설주간]
2009년 12월 18일 오전 6시, 서울 중구 신라호텔. 호텔에는 이틀 전 밤에 도쿄(東京)에서 날아온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부주석이 묵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17일 아침 시진핑 부주석과 조찬을 겸한 회담을 하고는 곧바로 코펜하겐으로 출국했다. 당시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참석을 위해서였다.
당시 시진핑은 2007년 10월에 개최된 제17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9명 가운데 1명으로 선출됐고, 다음 해 2008년 3월에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됐다. 중국 정부 체계에서 부주석은 각 조직에 대체로 4~5명인 것이 관례였지만 국가부주석은 1명뿐이었다. 국가부주석으로 선출된 시진핑에게 맡겨진 첫 번째 외교 행사는 평양과 도쿄, 서울을 차례로 순방하는 것이었다. 평양은 2008년 6월 18일에 방문하고, 도쿄는 2009년 12월 14일부터 3박 4일, 서울은 12월 17일부터 2박 3일로 날짜가 잡혔다.
시진핑 부주석의 일본 방문은 2009년 12월 14일부터 17일까지 3박 4일로 잡혀 있었지만 시 부주석은 하루 전 16일 밤 서울로 이동해야 했다. 당시 싱가포르의 중국어 신문 연합조보(聯合早報)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COP15에서 기조연설을 해야 하니 시 부주석이 하루 당겨 16일 서울에 도착하도록 일정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시 부주석은 16일 밤 도쿄를 떠나 서울에 도착했고, 17일 아침 이명박 대통령과 조찬을 했다. 시 부주석은 17일 정운찬 총리, 김형오 국회의장과 만나고 오찬은 경제4단체장과 했다. 오찬에는 정몽구 현대기아그룹 회장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이 함께했다. 다음 날인 18일 아침에는 숙소인 신라호텔에서 한중우호협회 회장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명예회장이 조직한 조찬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박삼구 회장의 긴급 연락을 받고 조찬모임에 참석한 필자는 뜻하지 않게 참석자 가운데 시 부주석과 제일 먼저 악수를 하는 행운(?)을 얻었다. 박 회장은 “오늘 참석자 가운데 가장 먼저 중국에 가서 활동하기 시작한 조선일보 박승준 기자가 시진핑 부주석과 가장 먼저 악수하시라”면서 필자를 시 부주석 앞으로 등을 떠밀었다. 필자는 1992년 8월 수교 후 베이징(北京)으로 파견된 한국 언론사의 첫 번째 그룹 베이징 특파원으로 일하다가 2009년 2월 귀국한 상태였다.
악수를 해보니 시진핑 부주석 손은 크고 두껍고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넉넉한 체중에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 있는 시 부주석과 악수를 한 뒤 필자는 ‘시진핑이란 사람은 따뜻한 성격에 남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아는 포용력을 가진 인물’이라고 선입견을 정리했다. 그 뒤로 16년 넘게 흐르는 동안 필자는 시진핑에 대한 선입견을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진핑이 2008년 정치국 상무위원이 된 뒤 2012년 당 총서기로 선출되고, 2022년 헌법을 고쳐 국가주석 3연임 임기를 시작한 뒤에도 필자는 시진핑에 대한 선입견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 24일 시진핑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장유샤(張又俠) 당 정치국원 겸 중앙군사위 부주석과 류전리(劉振立) 중앙군사위원 겸 중국군 연합참모부 참모장을 제거한다는 중국 국방부 발표를 보는 순간 17년 전 악수를 하면서 갖게 된 시진핑에 대한 선입견을 고쳐야 했다. 시진핑은 결코 넉넉한 체중과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흘리는 외모가 전부인 따뜻한 인물이 아니라 냉혹하고 무자비(無慈悲)한 승부사 기질을 감춘 마키아벨리스트적 인물이라는 점을 놓친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미 CIA의 중국 전문가로 미 국가안보위원회(NSC)에서 중국 담당 국장을 지낸 조너선 친(Czin)과 역시 CIA에서 35년간 중국 전문가로 일한 존 컬버(Culver)도 2월 2일자 포린 어페어즈에 ‘파괴자 시(Xi the Destroyer)’라는 기고를 해서 놀라움을 표했다.
“지난 1월 24일 중국군 최고위 장군 장유샤에 대한 숙청은 중국 정치에서 셰익스피어의 드라마와 같은 순간이었다. 그동안 10년 가까이 중국군에 대한 드라마가 이루어져 왔지만 중앙군사위원회(CMC)에서 장유샤를 제거한 시진핑의 결정은 새로운 차원의 음모를 보여주었다. 시와 장은 수십 년간 함께 지냈으며 두 사람의 아버지는 험악한 국공(國共)내전 과정을 함께 겪은 동지였다. 장은 그동안 시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였다. 2022년 시는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68세면 물러나야 하는 7상8하 원칙을 깨뜨리고 장이 군사위 최고 직위에 남아 있도록 배려했다. …”
더구나 올해 76세로 시진핑보다 세 살 위인 장은 앞으로 18개월 후인 내년 10월 열릴 예정인 제21차 당대회에서 조용히 명예로운 제대를 하게 시진핑이 배려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12월 22일에는 장유샤가 명단을 호명하고 사회를 보는 가운데 새로운 상장(上將)들 진급식까지 함께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1월 24일 오후 3시 국방부 대변인이 TV에 나와 “중앙군사위 부주석 장유샤와 참모장 류전리를 기율과 법을 엄중히 위반한 혐의로 조사에 넘기기로 결정했다”는 놀라운 발표를 했다. 다음 날 해방군보에는 장유샤의 죄상이 공개됐다.
“당 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는 부패를 다스리는 데는 금지구역이 없으며 용인할 수 있는 여지가 없음을 재차 표명한다. 우리 당의 반부패 투쟁은 반석과 같은 의지로 진행될 것이며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세로 반부패 투쟁을 벌여나갈 것이다. 장유샤와 류전리를 조사하게 된 것은 우리 당과 군의 반부패 투쟁이 거둔 중대한 성과이다. … 장유샤와 류전리는 당과 군의 고급 간부로서 당 중앙과 군사위원회의 신임을 저버리고 군사위 주석 책임제를 엄중히 파괴했다. …”
필자는 2022년 10월 22일 당대회가 열리는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의 전임자 후진타오(胡錦濤)가 회의 도중 돌연 퇴장한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에 퇴임을 1년 앞둔 장유샤 군사위 부주석을 부패 혐의로 숙청하는 발표를 보는 순간 3년여 전 후진타오 전임 총서기가 당대회 현장에서 시진핑에게 무언가 말을 하려다 경호원에게 팔을 붙잡혀 끌려 나가는 광경이 단순한 웃음거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후진타오의 이미지를 망가뜨리려는 시진핑의 결정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시진핑은 이미 무력화된 후진타오와 장유샤를 완전히 제압해버리는 마키아벨리스트적 정치 행동을 보여준 것이라고 보아야 했다.
시진핑이 후진타오에 이어 장유샤에 대해서도 마키아벨리스트적 정치 행동을 보여준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내년 10월 당대회 때 당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 4연임을 가로막을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기자 출신으로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직후 미국으로 망명해 프린스턴대학에서 정치학 박사를 획득한 우궈광(吳國光)은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가 발행하는 차이나 리더십 모니터 2026년 겨울호에 기고한 ‘독재자의 딜레마(The Dictator’s Dilemma)’에서 “시진핑이 내년 말 제21차 당대회에서 4연임에 도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비현실적인 판단”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4연임을 저지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들을 제거하다가 4연임 체제를 구성하는 데 인물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넉넉한 체중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물이라는 외모를 갖고 있으나 내면은 마키아벨리스트적인 측면이 있다면 우리 외교당국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보다 더 긴장감을 갖고 대해야 할 것이다. 지난 1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역사의 정확한 한쪽에 견고히 서서 정확한 전략 선택을 하라(应当坚定站在历史正确一边 作出正确战略选择)”고 한 말을 단순히 “옳은 일 하라는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고 치부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스트형 지도자가 한 말을 귀 흘려들어서는 나라의 운명이 위태로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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