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 칼럼] '바늘구멍론'과 남북관계… 미중정상회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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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호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요즘 남북관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비유 중 하나는 ‘바늘구멍’이다.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여러차례 사용했던 비유기도 하다. 이재명 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평화공존이 요체이다.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철학적 뿌리를 두고 남북기본합의서(1991년) 채택 이래 역대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을 계승하며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 및 공동성장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그 험난한 출발점에 ‘바늘구멍’이란 수사가 자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순방 후 튀르키예로 향하는 기내(11.24)에서 "남북관계가 매우 위험한 상태"라며, "끊임없이 노력해서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달 외신 인터뷰(12.3)에서도 "현재 남북한은 바늘구멍조차도 없는 상태"에 빗대어 설명한 데 이어 2주 후 열린 외교부·통일부 업무보고(12.19)에서도 "현재 남북 간에는 바늘구멍 하나도 소통할 여지가 없다"며, 주무부처인 통일부에 선제적, 주도적인 적대 완화 노력을 당부했다. 사실 이미 잘 알려진 바늘구멍 비유는 부자의 천국행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의 비유를 담은 신약성경 구절에 기인하고 있다. 1세기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큰 동물로 인식되며 유대교 율법상 부정한 짐승이었던 '낙타'와 가장 작은 구멍을 뜻하는 '바늘귀'를 대비하여 불가능한 상황에 일컫는 관용구로 널리 자리잡았다. 기독교 신자로 알려진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익숙한 구절일 것이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저에 자리잡은 ‘바늘구멍론’은 꽉 막힌 남북관계의 어렵고 비관적인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결코 관망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책은 결실을 보고 있을까? 지난해 6월 상호 확성기 방송 중지 이후, 최근 불거진 무인기 사태 관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유감 표명(2.18)에 대해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같은 날, 수용적 입장을 표명한 바 있으나, 그간 우리 정부가 취해왔던 △이산가족 생사확인(2025.10.3) △군사분계선 기준논의(2025.11.17) △연락채널 복구(2025.12.2.) 제안 및 △9.19군사합의 일부 복원(2.18) 조치 등에 대해 참고할만한 수준의 북측의 호응은 없는 상태이다. 지난 19일부터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가 진행 중이지만, 현재까지는 북쪽이 주장하는 적대적 두 국가론의 입지에는 변화가 없다. 국내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일관된 대북 조처들을 두고 저자세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지만. 이는 이미 현 정부에서 예상했던 반응이기도 하다. 지난해 12월 외신 인터뷰에서 이 대통령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일방적으로 유화적 조치를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과 국정원의 대북방송 중단, 오해될 수 있는 군사적 행동의 최소화 등 선제적인 대북 제스처를 보내는 것은 바늘구멍 내기의 일환으로, 비판조의 여론까지도 묵묵히 감내하면서 결국 북미회담의 제반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협력을 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아마도 바늘구멍 비유의 단기적인 해석은 낙타가 들어갈 만큼 기존의 바늘귀를 ‘크게 넓히자’보다는 꽉 막힌 남북간의 장벽에 작은 숨구멍 하나라도 내어보자는 취지에 가까울 것이다. 후자의 경우라면, 현재의 남북관계는 흡사 밀폐된 공간에 가깝기에 두어 개의 바늘구멍만 낼 수 있어도 최소한의 대류가 형성되어 호흡이 가능해진다. 지난해 6월 이후 남북간에 이렇다 할 군사적 충돌이 없는 상태의 유지 또한 현 정부 평화공존 정책의 간과할 수 없는 성과일지 모른다. 지난하다 싶을 정도로 결코 ‘적대할 용의 없음’의 시그널이 민관 차원에서 반복적으로 발신될 때, 북한의 대남 적대 정책의 명분을 약화시키고 우발적 충돌의 확전을 예방할 수 있다. 다만 남북관계의 최종목표가 바늘구멍 몇 개에 그칠 수는 없다. 그 틈새 너머로 보이는 낙타를 움직여야 하는 숙제가 있다. 정리하면, 작은 바늘구멍들의 합이 남북협력을 위한 과정적·환경적 토대라면 ‘낙타’는 상호 불신과 적대(군비증대)로 볼 수 있다. 결국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한다는 것은 ‘한반도 평화공존’이라는 가치실현이 가능한 제도화 단계가 아닐까? 지난해 8월 이 대통령이 북핵·미사일 동결과 축소, 비핵화로 이어지는 북핵3단계 로드맵과 9월 유엔총회에서 제시한 END이니셔티브(교류(E), 관계정상화(N), 비핵화(D))가 범접하기 어려운 거대한 ‘낙타’에게 촛대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

이제 시선은 3월 말 예정된 미중정상회담을 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중 정상에게 한반도 문제가 사활적 이익(Vital Interests)이 걸린 직접 의제는 아니더라도 양자 회담을 계기로 전략적으로 관여해야 할 이슈로 메이크업할 필요가 있다. 미국 내에서는 국가안보전략(NSS) 상에서 비핵화 기조가 누락되는 등 유연한 현실주의적 접근의 기류가 감지되는 한편, 북한은 제재 해제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어 양측이 협상 필요성의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다만 최근 앱스타인 스캔들 여파와 미 대법원의 관세 제동에 이은 11월 예정된 중간선거의 부정론 확산은 트럼프 행정부의 조기 레임덕 리스크를 키워 한반도 문제를 정책 우선순위에서 멀찍이 떼어놓을 우려도 있다.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추문 등을 폭로한 마이클 코언 청문회가 회담 결렬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것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다가올 미중정상회담 이후부터 미국 중간선거 전까지를 대화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이 열릴 기간으로 설정한 후 실기할 경우, 다음 계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미중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대화의 여건을 조성하려는 우리 측과, 한미 연합훈련 규모 조정에 관한 조속한 합의가 긴요하다. 동시에 ‘DMZ법’을 둘러싼 유엔사와의 이견 노출이나, 사전 협의 없는 주한미군 전투기의 서해상 대치 등 최근의 불편한 기류를 세밀하게 관리해 나가야 한다. 미중정상회담이 북미대화에 필요한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기회임은 분명하지만 결국 북한 노동당 9차 대회 이후의 전략적 결단과 미국의 전향적인 대북정책 변화라는 전제가 충족되어야만, '하노이 노딜'을 넘어선 실질적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해 풀어야 할 복합방정식의 무게다.

'뚫기 힘든 바늘구멍을 통과하려 애쓰기보다, 바늘구멍 자체를 키워야 한다.' 10년 전 2016년 3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버니 샌더스 열풍을 분석하며 SNS에 남긴 글이다. 구조적 불평등을 국가 시스템 정비로 해결하겠다던 그 의지는 이제 외교 현장에도 유효하다. 다가올 G2 간의 빅 이벤트가 북미회담의 견인차가 되어, 평화공존을 향한 ‘바늘구멍’을 넓히고 우리 정부의 정책적 외연을 구조적으로 확장하는 결정적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한기호 필자 주요 이력
 
▷아주대 아주통일연구소 교수(연구실장) ▷연세대 통일학 박사 ▷통일부 과장(서기관) ▷(사)북한연구학회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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