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곡괭이 장사'의 AI 버블 타기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기술 신시대의 서막인가, 거대한 신기루인가?

전 세계 증시는 지금 엔비디아와 오픈AI가 쏘아 올린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올라타 있다. 이는 단순한 자산 가격의 상승을 넘어 인류의 생산 방식과 투자 패러다임을 뿌리째 흔드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하지만 축제의 화려한 조명 뒤편에서는 '수익 없는 투자'에 대한 공포가 소리 없이 번지고 있다. '금은 누가 캐든 곡괭이 장사는 돈을 번다'는 논리로 무장한 AI의 인프라인 하드웨어 공급자들의 독주는 과연 영원할 수 있을까? 역사가 증명하듯이 모든 버블은 그 끝에서 단 한 명의 승자만을 남기고 99명을 집어삼킨다.

버블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선 지점이 벼랑 끝인지 아니면 더 높은 도약을 위한 발판인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역사로 본 버블의 세 가지 얼굴 속에서 AI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버블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메타버스형 거품(The 'Nothing' Bubble)이다. 실질적인 유용성이 낮아 막대한 자본만 낭비하고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경우이다. 화려한 그래픽과 구호는 있었지만 사용자가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한 메타버스가 대표적이다. 둘째, 철도형 거품(The 'Infrastructure' Bubble)이다. 기술 자체는 혁명적이며 세상을 바꾸지만 투자 회수 속도가 부채가 쌓이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대규모 금융 위기를 동반한다. 19세기 철도 광풍은 수많은 파산을 낳았지만 거품이 꺼진 뒤에도 남겨진 철길은 물류 혁명을 완성했다.

셋째, 항공사형 거품(The 'Commoditization' Bubble)이다. 기술은 유용하고 세상을 바꾸지만 기업 간 파괴적인 경쟁으로 인해 정작 서비스 제공자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다. 혜택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고 투자자는 재앙을 맞이하는 경우다. 지금의 AI는 이 중 '철도형'과 '항공사형'의 기묘한 혼합체다. AI는 메타버스와 달리 이미 코딩, 번역, 분석 등 실무에서 유용성을 증명했다. 하지만 답변 하나를 생성하는 데 드는 막대한 전력과 칩 비용인 2000달러 가치에 비해 사용료 20달러는 턱없이 낮다. 즉 인류에게는 축복이지만 투자자에게는 '수익성 없는 혁신'이라는 항공사형 재앙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동시에 거품이 꺼진 후에도 남겨질 데이터 센터라는 '철도형 인프라'를 구축 중인 상태다.

장마철 채소 시장이 주는 경고, 병목이 풀리는 순간의 역설

버블의 메커니즘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우리 식탁의 채소 가격이다. 장마가 길어져 농부들이 채소를 원활하게 생산하지 못하면 시장에는 채소 품귀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면 마트에는 채소를 사려는 사람들이 긴 줄을 서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솟구친다. 지금의 엔비디아 칩과 AI 반도체가 바로 이 '장마철 채소'와 같다. 미·중 갈등이라는 정치적 장마와  AI 수요가 만나 수급 불균형을 만들었고,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된 것이다.

하지만 장마가 그치고 채소 생육이 정상화되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생산량이 늘어나 마트에 채소가 가득 차는 순간 줄을 섰던 사람들은 사라지고 팔리지 않는 채소는 가판대 위에서 시들어 간다. AI 반도체 역시 마찬가지다. 경쟁사들이 추격하고 공급망의 병목이 해결되어 제품이 흔해 지는 순간, '곡괭이 장사'의 독점적 지위는 무너진다.

엔비디아 젠슨황 CEO가 2026 GTC에서 '루빈(Rubin)'이라는 차세대 칩을 발표하며 기술적 한계를 밀어붙이는 이유는 장마가 끝나기 전에 더 비싼 채소를 팔아야 한다는 절박함과 1등이 아니면 죽는다는 '승자독식'의 공포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K자형 경제의 시소 게임과 한국의 외발자전거

현재 미국과 한국 경제는 위태로운 시소 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쪽에는 AI라는 과열된 엔진이 있고, 다른 쪽에는 고물가와 고금리에 신음하는 실물 경제의 수축이 있다. AI 호황이 만드는 숫자들이 나머지 경제 부문의 불황 가능성을 억지로 가리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한국은 이 시소 위에서 '반도체'라는 외발자전거를 타고 있다. 한국은 시총의 40%, 주가 상승의 60% 이상을 반도체가 독식하는 구조이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2025년 8월 이후 한국 반도체 호황은 우리가 압도적인 신기술이나 신제품을 내놓은 결과라기보다는 미·중 반도체 전쟁이 만든 수급의 틈바구니에서 얻은 '어부지리' 성격이 짙다. 지수 5000이라는 환상에 젖어 밀물에 들어온 개미들은 돈벼락을 맞았지만 밀물이 있으면 반드시 썰물이 있다. 실력은 영원하지만 운(運)은 한 번이다. 물이 빠지면 누가 수영복을 안 입고 수영했는지 만천하에 드러날 것이다.

한국은 지금 동학 개미들의 대탈출과 '알부민 주사'의 환각을 경계해야 한다. 한국의 수출과 무역 흑자가 최대인데도 환율이 절하되는 현상은 심각한 신호라고 봐야 한다. .정치가 시대정신을 거스르면 민심이 떠나고, 국가가 성장을 놓치면 돈이 떠난다. 무역으로 번 돈보다 한국을 떠나 미국 주식으로 향하는 동학개미들의 돈이 더 많기 때문이다.

지금 외국인이 들어와 주가를 올리는 것은 마치 체력이 바닥난 환자에게 '알부민 주사'를 놓는 것과 같다. 일시적으로 컨디션이 회복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기초체력이 개선되지 않으면 주사 효과가 떨어지는 순간 환자는 다시 쓰러진다. 일본 집권당의 선거 승리가 중·일 갈등 덕분이었고 한국의 반도체 호황이 미·중 갈등 덕분이었다면 이는 우리 실력이 아닌 지정학적 운(運)에 기댄 것이다. 운에 취해 혁신을 멈추는 순간, 우리는 추격자들에게 안방을 내어주게 될 것이다.

취하지 말고 새 운동장을 설계하라
AI 업체들이 수익도 못 내면서 '영끌 투자'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1등이 모든 것을 먹는 AI 생태계에서 밀리면 바로 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광기 어린 투자 경쟁은 '대체 불가한 절대 강자'가 나오는 순간 종료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서 광산이 문을 닫으면 입구에서 곡괭이를 팔던 상인도 함께 망하게 되어 있다.
한국 반도체는 지금의 호황에 취해서는 안 된다. 옛 운동장을 열심히 달리다 얼떨결에 주운 돈가방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가 직접 '새 운동장'을 만들고 가장 먼저 달려 나가는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국가 간 피 터지는 경쟁이 벌어진 반도체 전쟁에서 남들만큼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잘나갈 때 혁신하지 않으면 반드시 혁신한 자에게 당하게 되어 있다. 25년 만에 찾아온 이 거대한 반도체 가격 대폭등의 파도를 즐기되 취하진 말아야 하고, 그 뒤에 도사린 썰물의 공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업황의 역습은 항상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겸임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