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설날, 한 장의 지도 앞에서 되새기는 우리의 헤리티지

날은 한 해의 시작이자, 가족이 다시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삶의 뿌리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떡국 한 그릇을 나누며 나이를 더하고, 세배를 통해 어른의 덕담을 듣는 풍경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잇는 행위’다. 오늘 설날, 가족의 역사와 함께 나라의 역사까지 되새겨본다면 명절의 의미는 한층 깊어진다. 

마침 서울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1층 ‘역사의 길’에는 조선 후기 지리학자 김정호가 완성한 《대동여지도》 22첩 전도가 펼쳐져 있다. 책처럼 접혀 있던 지도가 거대한 벽면 위에 온전히 드러난 모습은 압도적이다. 모두 이어 붙이면 세로 약 6.7미터, 가로 약 3.8미터에 이르는 규모다. 교과서에서 이름만 접했던 그 지도를, 오늘 우리는 실제 크기에 가깝게 마주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의 가장 큰 특징은 정밀함과 체계성이다. 국토를 남북으로 22개 층으로 나누고, 각 층을 접었다 펼 수 있게 만든 ‘분첩절첩식’ 구조는 휴대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산줄기와 물줄기를 일관된 체계로 연결해 국토의 맥을 읽을 수 있게 했고, 도로에는 10리(약 4㎞)마다 점을 찍어 실제 거리를 가늠하도록 했다. 행정 중심지, 군사시설, 창고, 교통 요지 등을 기호로 표시하고 이를 설명하는 ‘지도표’를 따로 마련한 점은 오늘날 지도 범례의 선구적 형태라 할 만하다. 

김정호는 《지도유설》에서 분명히 말했다. “지도는 나라를 다스리는 큰 틀이다.” 국방상의 요충지를 파악하고, 세금과 물자의 흐름을 관리하며, 여행과 교류를 원활히 하려면 정확한 지리가 필수라는 통찰이다. 이는 단순한 학문적 호기심이 아니라, 국가 운영의 인프라에 대한 인식이었다. 지도는 곧 통치의 기초이자 민생의 토대였다. 

흔히 알려진 ‘백두산을 여덟 번 올랐다’는 전설적 일화는 과장이 섞여 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나 그것이 김정호의 업적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규장각과 관청에 축적된 기존 지도와 지리지, 선행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치밀하게 비교·종합해 조선 지도 제작 전통을 집대성했다. 1402년의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정상기의 <동국대지도>, 신경준의 《동국여지도》 등으로 이어진 축적의 흐름 위에서 대동여지도가 완성됐다. 개인의 천재성만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잇는 학문적 유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특히 대동여지도가 목판 인쇄본으로 제작됐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필사본이 아닌 목판본은 복제가 가능했고, 더 많은 이들이 사용할 수 있었다. 지식을 독점하는 대신 공유하려는 의지였다. 당대 쇄국적 분위기 속에서도 지리 정보를 체계화해 널리 보급하려 한 시도는, 오늘날 공공 데이터 개방의 정신과도 통한다. 

이번 전시가 ‘역사의 길’이라는 상징적 공간에 상설로 걸린 것도 주목할 만하다. 관람객은 으뜸홀을 지나 자연스럽게 대동여지도와 마주한다. 2·3층 복도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지도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각적 축이 된다. 유홍준 관장이 “세계적으로도 최고로 꼽힐 만한 지도”라고 평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위업을 넘어, 우리 고지도 전통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문화유산이다. 

설날은 새 출발의 날이다. 그러나 진정한 출발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데서 시작한다. 가족의 계보를 기억하듯, 나라의 지적 계보를 이해하는 일도 중요하다. 대동여지도는 단순히 옛 지도가 아니라, “우리는 이 땅을 어떻게 이해해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화면 위에서 길을 찾는다. 그러나 한 세기 전만 해도, 그보다 훨씬 이전에는, 산줄기와 물길을 읽어내는 일이 생존과 직결됐다. 정확한 지도는 백성을 살리고, 나라를 지키는 도구였다. 기술은 달라졌지만, 정확성과 책임이라는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헤리티지의 본질이다. 

오늘 설날, 차례를 마치고 세배를 한 뒤 박물관을 찾는 발걸음이 이어진다면, 그 자체가 우리 사회의 성숙을 보여준다. 설날 휴관 후 18일 부터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아이들은 교과서 속 이름이 아닌, 실물로 펼쳐진 국토를 보며 상상력을 키울 것이고, 어른들은 우리가 딛고 선 땅의 무게를 다시 느낄 것이다. 

가족을 잇는 기억, 지역을 잇는 길, 세대를 잇는 유산이 모일 때 공동체는 단단해진다. 대동여지도 앞에서 우리는 한 학자의 집념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축적된 지혜와 공공 정신을 마주한다. 설날 아침의 따뜻한 온기 위에, 이 한 장의 지도가 전하는 책임과 자긍심을 함께 얹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새해를 여는 가장 깊은 인사일지 모른다.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상설전시 포스터
국립중앙박물관 대동여지도 상설전시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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