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인사이트 | 기본 원칙 상식] 데이터는 자원인가, 권리인가 —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

데이터를 둘러싼 미·중의 시각 차이는 단순한 정책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전략의 차이이며, 산업 구조의 차이이며, 궁극적으로는 미래 권력의 차이다. 20세기가 석유를 둘러싼 지정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데이터를 둘러싼 지정경학의 시대다. 인공지능(AI)의 성능은 알고리즘보다 데이터의 질과 규모에 의해 좌우된다. 결국 데이터는 산업의 원료이자, 플랫폼의 연료이며,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있다.

중국은 데이터를 ‘생산 요소’로 선언했다. 토지·노동·자본·기술과 나란히 놓았다. 기업은 데이터를 무형자산으로 재무제표에 계상할 수 있고, 일부는 이를 대출 담보로 활용한다. 국가 데이터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거래소를 감독하며, 제도권 금융과 연결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지방정부의 재정 압박, 부채 관리의 필요성, 국가 주도의 산업 전략이 자리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중국은 데이터를 ‘국가 자산’으로 간주한다. 전략적 자원으로 취급한다.

미국은 다르다. 미국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해 왔다. 광고, 전자상거래, 클라우드, 소셜 네트워크, 검색엔진은 모두 데이터 위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회계 기준상 데이터는 여전히 자산으로 명확히 인식되지 않는다. 미국 자본시장은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누구보다 잘 활용하면서도, 공식 재무제표에서는 이를 충분히 드러내지 않는다. 개인 정보는 법과 규제로 보호하려 하면서도, 기업 재무 구조에서는 보이지 않는 자산으로 남아 있다.

이 차이는 빅테크 기업의 스탠스에서도 드러난다. 중국의 빅테크는 국가 전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데이터는 공공적 관리의 대상이 된다. 미국의 빅테크는 민간 혁신을 중심으로 움직이되, 개인정보 보호와 반독점 규제라는 정치적 견제를 받는다. 중국은 ‘관리된 확장’을 택했고, 미국은 ‘시장 중심 확장’을 택했다. 하나는 국가가 중심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이 중심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중국처럼 국가 주도로 밀어붙일 수 있는 체제도 아니고, 미국처럼 압도적 플랫폼을 보유한 시장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디지털 이용 환경, 그리고 높은 시민 참여도를 갖고 있다. 이 강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데이터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세워야 한다.

첫째, 데이터의 법적 지위를 분명히 해야 한다. 데이터는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산업 자산이다. 동시에 개인의 권리와 직결된 정보다. 따라서 데이터는 자원과 권리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은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자원으로만 보면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커지고, 권리로만 보면 산업 활용이 위축된다. 한국은 두 축을 균형 있게 제도화해야 한다.

둘째, 데이터 자산의 회계 기준을 단계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무형자산으로서의 데이터 가치 평가 체계를 연구하고, 공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기업의 자산 규모를 키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데이터가 기업 가치의 핵심이라면, 투자자 역시 그 규모와 위험을 알아야 한다. 투명성은 자본시장의 기본이다.

셋째, 공공 데이터의 전략적 활용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 정부는 방대한 행정·보건·교육·교통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개인정보 보호 원칙 아래 안전하게 결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면, AI 산업의 토대가 단단해진다. 데이터의 공유와 보호는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다. 기준을 명확히 하면 양립 가능하다.

넷째, 데이터 주권과 국제 협력을 병행해야 한다. 데이터는 국경을 넘지만, 규제는 국가 단위로 작동한다. 한국은 미국과 유럽의 규범을 참고하되, 자국 산업에 맞는 실용적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지나친 폐쇄는 혁신을 막고, 무분별한 개방은 주권을 약화시킨다. 원칙과 상식에 기반한 개방이 필요하다.

다섯째, AI 산업과의 연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AI는 데이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학습 데이터의 품질과 다양성이 경쟁력을 좌우한다. 한국의 AI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려면 데이터 접근성과 활용 가능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동시에 윤리적 기준과 책임 구조도 함께 정립해야 한다. 신뢰 없는 AI는 오래가지 못한다.

미·중의 사례는 극단을 보여준다. 중국은 전략적 의지를 앞세웠고, 미국은 시장 역동성을 앞세웠다. 한국은 그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단순 모방은 답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균형이다. 기술 혁신을 장려하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고, 기업의 데이터 자산을 인정하되, 투명성을 확보하는 길이다.

데이터는 21세기의 원유라는 표현은 이제 식상하다. 그러나 원유도 처음에는 가치가 명확히 측정되지 않았다. 측정이 이루어지고, 거래가 제도화되고, 관리 체계가 마련되면서 비로소 전략 자원이 되었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가치를 인정하고, 기준을 세우고, 책임을 부여해야 산업이 성장한다.

한국의 빅테크와 AI 산업은 아직 성장 단계다. 기회는 열려 있다. 그러나 기준이 모호하면 산업은 흔들린다. 명확한 법적 정의, 합리적 회계 기준, 공공 데이터의 전략적 활용, 국제 협력의 균형, 그리고 윤리적 통제. 이 다섯 가지 축이 갖춰질 때 한국은 데이터 시대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기술은 중립적이다. 그러나 정책은 방향을 만든다. 미·중의 대비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데이터는 자원인가, 권리인가. 그 답은 둘 다라는 상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상식 위에서 제도를 세우는 것이 한국이 나아갈 바른 길이다.

 
AI협력 관련 발언하는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이 10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AI협력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6210
AI협력 관련 발언하는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이 10일 청와대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AI협력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2026.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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