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산업은 잠재적 성장 가치가 매우 큰 만큼 다원시스 사태를 시스템 진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비등한다. 적정 마진을 보장하지 않는 현행 최저가 입찰제는 제작 비용을 제한해 'K-철도' 품질을 떨어뜨리고, 수출 전선에서도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철도차량 조달시장은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따라 최저가 입찰제를 채택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기술평가를 통과한 업체 중 최저가를 써낸 곳이 선정되는 '기술·가격 분리입찰' 방식이다. 철도 설계·제작·운영·사후관리 능력이 부족한 업체가 수주에 성공하다 보니 통상 20~30년 정도인 철도 운영 주기에 납품 및 정비 지연, 부품 수급 차질, 유지·보수 비용 증가 등 광범위한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한 철도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인건비, 환율, 물가 등 변수로 제작비는 갈수록 오르고 고속차량 증가로 철도안전법 전반도 강화되는데 최저가 입찰제는 이런 비용 증가 부담을 단가에 반영하지 못하다 보니 가격을 맞추기 위한 일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현행 제도는 기업의 모럴 해저드를 야기하는 지뢰 조항이 곳곳에 포진한 만큼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납품 지연 기간 대비 터무니 없이 낮게 설계된 지체 배상금이다. 현행 철도 납품이 지연되면 기업은 수주금액의 0.05%를 일할 계산해 배상금을 무는데 최대 600일을 초과할 수 없다.
철도 입찰의 경우 사업권 낙찰과 동시에 사업비의 최대 70%가 선지급된다. 수주 후 최종 납기까지 길게는 10~20년 이상 소요돼 일정 공급 물량만 확보하면 선급금만으로 기업의 수명 연장이 가능하다. 가령 납기일을 10년 이상 지체해도 배상금은 600일까지만 부과되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제도를 악용할 수 있다.
납기 지연을 반복적으로 일삼는 업체가 계속 공공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것도 맹점이다. 국가계약법상 입찰 참가 제한은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정부가 개별 기업을 일일이 고발해야 한다. 정부 고발로 사업권이 박탈돼도 현실적인 문제가 따른다. 마진율이 워낙 낮다 보니 대형 입찰이라도 사실상 단수 경쟁 체제인데, 이런 환경에서 특정 업체를 배제하면 또 다른 곳으로 발주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과도하고 반복적인 납품 지연 기업을 규제할 명확한 근거가 없고, 입찰 참여를 막을 제도적 기반도 미비하다"며 "최저가 입찰제라는 관행이 기업 부조리를 부추기는 셈"이라고 귀띔했다.
실제 다원시스는 2018년과 2019년에 수주한 ITX-마음 미납률이 각각 27%, 94%에 달했는데도 2024년 3차 계약에서 기술평가 만점을 받아 사업권을 따냈다. 이에 관련해 정정래 코레일 사장 직무대행은 "현대로템과 우진산전도 해당 입찰에 참여했지만 현대로템은 예가(미리 정해 놓은 가격)를 초과했고, 우진산전은 실적 점수 미달로 선택지가 없었다"고 해명했다.
입찰 구조의 본질적인 개선 없이는 '제2의 다원시스'가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어 산업 경쟁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게 업계 지적이다. 'K-수출' 효자로 성장한 방위산업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철도와 방산은 민간 수요가 거의 없는 공공 조달 중심의 정책 시장으로 시장 가격이 아닌 행정 가격이 기업 이윤과 직결된다. 방산의 경우 첨단 무기 개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최저가 입찰제에서 벗어나 기술평가 중심제로 전환하면서 수출 산업으로 거듭났다.
철도 제작 업체 관계자는 "최저가 입찰제는 수주 시 적자가 확정되는 구조라 상장사 입장에서는 배임 행위에 가깝다"며 "국민들의 높은 안전 기준 등까지 고려해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철도의 경우 안전사고 피해 규모가 크고 운영 주기도 30~40년으로 매우 길어 한번 도입하면 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등에서 방위산업과 유사성이 높다"며 "철도 조달시장이 납품 실적, 설계 및 생산 능력, 재무 건전성 등 위주로 재편되면 기술 경쟁력 향상과 국내 중소 부품 생태계 조성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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