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사이트]흔들리는 통화 질서, 빛나는 실물자산

  • -금·은 급등이 말해주는 세계 금융의 속내와 한국의 선택

국제 금융시장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주식 지수의 등락보다 더 또렷한 장면은 금과 은이 연일 고점을 경신하는 모습이다. 이는 단순한 투자 열풍이 아니라, 세계 자본이 어디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시장은 늘 과장되지만, 방향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지금 귀금속 가격의 급등은 ‘위험 회피’라는 집단 심리의 결과이며, 그 배경에는 통화 신뢰에 대한 미묘한 균열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둔화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다. 금리를 내리면 경기 부담은 줄어들지만, 완화 속도가 지나치면 화폐 가치가 흔들린다. 이 애매한 구간에서 투자자들은 종이자산보다 실물자산을 선택한다. 금은 이자를 주지 않지만 신뢰를 잃지 않는다. 은은 산업 수요까지 겹치며 가격 탄력이 더 커진다. 지금의 랠리는 투기라기보다 ‘보험료’에 가깝다. 시장이 불확실성에 대비해 지불하는 프리미엄이다.

지정학적 긴장 역시 이 흐름을 가속한다. 보호무역의 그림자, 정치적 갈등, 공급망 불안은 글로벌 자본을 한층 보수적으로 만든다. 달러화는 여전히 기축통화지만, 동시에 미국의 재정과 통화정책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이른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심리가 확산할 때 금은 대안 통화처럼 취급된다. 이는 달러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달러에 대한 맹신이 줄어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파장은 한국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환율은 가장 먼저 반응한다. 위험 회피 심리가 강화되면 달러 수요가 늘고 원화는 약세 압력을 받는다. 원화 약세는 수출 기업의 채산성을 개선할 수 있지만, 수입 물가 상승을 통해 가계 부담을 키운다. 에너지와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서 환율 급등은 곧 물가 자극 요인이다. 환율의 방향보다 더 위험한 것은 속도다. 완만한 조정은 적응이 가능하지만, 급등은 충격으로 이어진다.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자금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신흥시장 비중을 줄인다. 외국인 자금 흐름에 민감한 한국 증시는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래 성장 기대가 큰 종목일수록 금리 변화에 더 취약하다. 반면 안정적인 현금흐름과 낮은 부채비율을 가진 기업은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높다. 시장은 결국 수익이 아니라 생존력을 평가한다.

기업의 대응 방향은 분명하다. 첫째, 환위험 관리 체계를 촘촘히 구축해야 한다. 둘째, 유동성 확보가 최우선이다. 불확실성 국면에서 현금은 비용이 아니라 방패다. 셋째, 부채 만기 구조를 점검해 단기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넷째, 내부 통제와 리스크 관리 수준을 높여 신뢰를 유지해야 한다. 작은 사고 하나가 기업 가치 전체를 흔드는 시대다.

가계 역시 준비가 필요하다. 변동금리 대출 비중을 줄이고 상환 계획을 명확히 해야 한다. 투자에서는 수익률 경쟁보다 자산 배분의 균형이 중요하다. 금과 은 가격이 급등했다고 무리하게 추격 매수에 나서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부를 수 있다. 시장은 언제나 과열 뒤 조정을 겪는다. 장기적 안정은 분산과 절제에서 나온다.

정책 당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두 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은 시장 신뢰의 핵심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가장 강력한 안정 장치는 투명한 정책 신호다.

결국 금과 은의 급등은 공포의 표현이자 경고다. 세계는 지금 ‘수익 확대’보다 ‘손실 회피’를 선택하고 있다. 이는 위기의 전조일 수도 있지만, 준비된 이들에게는 기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변동성은 위험이 아니라 환경이다. 그 환경에서 살아남는 힘은 화려한 수익이 아니라 기본, 원칙, 상식에 있다. 금융시장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로 움직인다. 신뢰가 흔들릴수록 빛나는 것은 금속이 아니라 원칙이다.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쪽이 다음 상승기의 주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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