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김승연 회장이 보여준 K-방산 기업가정신

사진챗 GPT 생성
[사진=챗 GPT 생성]
 
아주경제가 지난달 개최한 ‘2025 국방방산포럼’은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다음과 같은 질문의 자리였다. K-방산은 지금 어디까지 와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수출 계약 규모나 개별 무기 성능을 넘어, 한국 방산이 어떤 산업 단계에 진입했는지를 점검하는 자리였다. 필자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성과보다 방향으로 향했다. ‘K-방산을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이다. 정부와 연구기관, 현장의 기술자와 실무자, 군과 외교 라인의 노력이 쌓인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가정신의 관점에서 보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빼놓고 K-방산의 성과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는 방산을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장기적으로 책임져야 할 산업으로 바라본 몇 안 되는 기업가였다.
 
· 방산을 ‘사업’이 아닌 ‘산업’으로 본 시야
 
김승연 회장은 방산을 단기 실적의 영역에 두지 않았다. 그는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방산을 “기업 이익을 넘어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을 함께 책임지는 분야”라고 규정해 왔다. 눈앞의 수익보다 기술과 인재를 축적할 구조가 먼저라는 인식이었다. 말이 아니라 선택이 이를 증명한다.
 
최근 한화의 행보를 보면 분명하다. 방산을 축으로 우주, 항공엔진, 무인체계, 위성으로 이어지는 투자와 조직 재편은 단일 무기 체계를 늘리는 방식과 거리가 멀다. 이는 방산을 개별 제품이 아니라 전장 환경 전체를 아우르는 시스템 산업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다. 수주 경쟁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설계의 문제다.
 
이 시야는 미국 록히드마틴을 세계 최대 방산기업으로 키운 노먼 어거스틴 전 회장의 인식과 닮아 있다. 그는 방산을 “기업의 비즈니스가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일부”로 보았다. 김 회장 역시 무기 한 종의 판매보다 체계와 플랫폼, 그리고 신뢰의 축적을 먼저 보았다. 손자병법의 말처럼, 승부는 싸움 이전에 이미 갈린다.
 
· 수십 년의 축적, 그리고 최근의 가속
 
김승연 회장이 방산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삼은 것은 하루아침의 결정이 아니다. 수십 년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선택의 결과다. 최근 1~2년 사이 그 방향성은 더욱 또렷해졌다. 2023년 이후 한화는 기존 화포·유도무기 중심의 사업 구조를 넘어, 항공엔진·우주·무인체계·위성으로 이어지는 구조적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항공엔진과 추진체 기술에 대한 중장기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단기 수주와 직접 연결되지 않는 영역임에도 연구개발 비중을 높였다. 기술 자립을 전제로 조직을 재편했다. 당장의 매출보다 미래 전장의 핵심 역량을 택한 결정이다.
 
한화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위성·감시정찰·지휘통제(C4I) 분야도 같은 흐름에 있다. 개별 장비가 아니라 정보를 수집·분석·전달하는 체계를 하나의 산업으로 묶겠다는 판단이다. 방산을 ‘무기 판매’에서 ‘운용 체계 제공’으로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무인체계 역시 특정 수주를 위한 준비라기보다, 미래 전장에서 인간의 역할을 구조적으로 대체·보완하려는 설계에 가깝다.
 
· ‘구조적 기업가정신’이 만든 방산 경쟁력
 
필자는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중앙대 박사논문)’ 등 관련 연구를 하면서 ‘구조적 기업가정신’을 강조해왔다. 개인의 결단이 아니라 전략, 인재, 조직, 시간이 함께 맞물려 작동하는 기업가정신을 뜻한다. 김승연 회장의 방산 전략은 개인적 결단이 아니라, 이 구조를 수십 년에 걸쳐 현실로 만든 사례다.
 
한화는 인수나 생산 확대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연구개발, 글로벌 협력, 현지화, 장기 투자 구조를 동시에 설계했다. 방산은 오늘 투자해 내일 성과가 나는 산업이 아니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수십 년간 손실을 감수하며 기술을 축적한 끝에 경쟁력을 만든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김 회장은 가까운 이익보다 먼 경쟁력을 택했다.
 
· K-방산의 경쟁력은 신뢰에서 나온다
 
이번 아주경제 방산포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단어는 ‘신뢰’였다. K-방산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성능만이 아니다. 계약 이후의 책임, 공급망의 안정성, 정치·외교적 신뢰가 함께 작동한다. 김승연 회장이 방산에서 가장 중시해온 지점도 바로 여기다.
 
무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프랑스 다쏘가 전투기를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국가 간 신뢰의 패키지로 판매해온 전략과 유사하다. 고대 로마의 격언처럼, 신뢰는 모든 계약의 기초다. 방산에서 신뢰는 선택이 아니라 전제다.
 
· 리더십은 방향을 정하는 일
 
방산에서 리더십은 말로 증명되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하고, 어디에 투자하며, 무엇을 끝까지 가져가느냐로 드러난다. 김승연 회장은 앞에 나서기보다 방향을 먼저 정했고, 조직이 그 방향으로 움직이게 했다.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방산을 국가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판단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보잉을 세계 항공산업의 상징으로 만든 윌리엄 앨런은 리더의 역할을 항로 설정에 비유했다. 조종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일이다. 김 회장 역시 방산이라는 가장 위험한 산업에서 가장 오래 갈 항로를 택했다. 방산은 속도의 산업이 아니다. 방향의 산업이다.
 
아주경제 방산포럼이 확인한 것도 결국 이 지점이다. K-방산의 경쟁력은 개별 무기의 성능이 아니라 산업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기업가정신이란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가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능력이다. 빠른 성과를 포기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자원을 묻을 수 있는 결단이다.
 
김승연 회장의 K-방산 기업가정신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가장 위험한 영역에서 가장 오래 가는 선택을 해왔다. 고전의 말처럼, 큰 일은 서두르지 않는다. K-방산의 오늘은 그런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언제나 기업가의 시야가 있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