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세다대학이 구자열 LS그룹 의장에게 명예법학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다나카 아이지 총장은 “LS를 25개국 100여 개 법인을 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고, 무역협회장으로서 한일 경제협력의 다리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와세다가 명예박사를 수여한 인물들을 보면 기준이 분명해진다. 네루, 만델라, 빌 게이츠, 카라얀, 이건희… 한 시대의 격변을 읽고 새로운 길을 연 리더들이다. 구자열이라는 이름이 이 목록에 포함됐다는 사실은 그가 세계가 바뀌는 흐름을 정확히 읽고 그에 맞춰 움직인 리더라는 의미다. AI가 산업지형을 다시 쓰는 지금, 그의 글로벌 기업가정신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해외가 아닌 ‘큰 흐름’을 본 기업가
구 의장의 글로벌 경영은 해외법인을 늘려가는 방식이 아니다. 그는 미국의 인프라 재정비, 중동의 에너지 전환, 동남아의 전력 수요 확대를 개별 시장의 반응으로 보지 않았다. 이 흐름을 세계 산업지형의 지각변동으로 읽었다. LS가 25개국으로 확장된 것은 “많이 갔다”가 아니라 “제대로 갔다”는 증거다. ‘2만1천 km 현장경영’도 해외 방문의 기록이 아니라, 세계 전력·소재·스마트그리드 시장을 직접 확인하고 LS의 전략적 좌표를 새로 그려낸 과정이었다.
필자는 박사논문 「기업가정신과 경제성장」에서 기업가정신의 핵심을 “기술보다 변화의 구조를 먼저 읽는 능력”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중국 《손자병법》에 “지형을 아는 자가 승리를 가져온다(知地者勝)”라는 말이 있다. 구 회장은 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산업지형을 먼저 읽어 방향을 선택한 기업가였다.
· 국가 전략과 연결된 경영 시야
구 회장의 시야를 국가 단위로 확장시킨 건 한국무역협회 회장 경험이다. 무역협회는 세계 공급망, 기술 패권, 통상규범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국가 전략의 관점에서 다루는 자리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업의 해외 진출을 “수출 확대”의 범주로 보지 않았다. 국가 산업의 구조적 방향을 재정의하는 선택, 즉 산업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국가 전략의 빈틈을 메우는 것으로 바라봤다.
이는 AI 시대에 더욱 중요한 시각이다. 산업과 기술이 동시다발적으로 재편될 때, 기업의 선택은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국가 전략은 기업의 성장 잠재력을 결정한다. 필자의 연구에서 밝힌 바 있듯 기업가정신은 “시장에 뛰어드는 용기”가 아니라 “산업 질서의 이동을 해석하는 지적 능력”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큰 변화 앞에서는 지도를 새로 그려야 한다”고 했다.
· 변화를 먼저 읽는 기업가정신
AI 시대의 승부는 기술의 성능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기술이 산업 구조와 국가 체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먼저 읽어낸 기업이 승자가 된다. 엔비디아는 GPU 제조기업에서 AI 인프라 기업으로, 테슬라는 자동차 회사를 넘어 에너지·데이터 기업으로 변신했다. 기술이 회사를 바꾼 것이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읽은 기업가정신이 회사를 다시 만들었다.
LS가 전력·전선·소재·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체계적으로 재정렬해 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산업구조가 전기화·데이터화·에너지 전환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일찍 감지했고, 그 변화 속에서 LS의 자리를 다시 배치한 것이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Seneca)는 “방향을 모르면 어떤 바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AI 시대 기업 경쟁은 속도가 아니라 흐름을 읽는 능력의 경쟁이다.
· 산업의 흐름을 아는 리더가 필요한 AI 시대
AI는 기술혁명이 아니라 세계 산업질서의 재편이다. 이 변화가 빨라질수록 리더는 기술자나 투자자가 아니라, 산업의 큰 흐름을 읽고 기업과 국가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구자열 의장은 단순히 해외를 넓힌 경영자가 아니다. 그는 세계 변화의 축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먼저 읽어내고, LS를 그 흐름 속에 정교하게 위치시킨 기업가다. 그래서 와세다가 그에게 명예박사를 수여했고, 지금 한국 산업이 그에게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술을 볼 것인가, 변화를 볼 것인가? 구 의장의 기업가정신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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