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HBM서 배터리까지 …'대체불가' 코리아' ON AIR

  • 미중 패권전쟁에서 한국이 살 길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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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세계의 이목은 대한민국에 쏠렸다.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의 정상회담이 성사됨에 따라 현재 전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는 미·중 간 무역, 기술 및 자원 전쟁의 추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것이다. 미·중 양국 정상은 부산에서 별도의 정상회담을 갖고 명목상으로는 최근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관세 및 자원 전쟁의 확산을 자제하는 데 합의하여 향후 세계 경제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양국은 서로 회담 결과에 대해 유리한 방향으로 자평했으나 무역, 기술, 희토류 등 단기적 갈등 관리와 외교적 휴전 성격이 강하며 대만 문제, 국방 및 안보 문제 등 근본적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정상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때인 2019년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이루어진 지 6년 4개월 만에 갖는 회담이고 이번에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그 이후 시 주석의 미국 답방에 합의하여 미·중 간의 전면전 위험이 완화되고 있다는 긍정적 시그널에 세계 경제 및 증시는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우리 증시는 물론 미국, 중국, 일본 증시가 동반 상승했다. 사상 최초로 우리 코스피 지수는 4천 고지, 일본 닛케이 지수도 5만 고지를 돌파하며 고공행진을 나타냈다. 부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세계 경제와 증시는 단기적 기대감에 급등했다가 실제적 합의의 한계와 구조적 갈등의 해소 미흡을 반영하여 혼조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조적으로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는 미·중 무역·기술·자원 전쟁을 위시한 글로벌 환경 변화에 민감하여 그 추이에 대한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향후 환율을 비롯한 금융 분야까지 미·중 패권전쟁이 확산되면 경제 상황 및 위기관리의 복잡도가 너무 커져 예측불허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일반적 예측 기반 대응 전략보다 다양한 상황을 가정한 우리 경제의 시나리오 경영이 시급하다. 특히, 최악의 상황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비책과 함께 최선의 상황에 대한 일대 도약의 전략도 준비해야 한다.
 
미·중 정상회담과 함께 열린 한미, 한중, 한일 정상회담의 성과로 우리의 향후 시나리오 경영의 복잡도가 경감된 것은 매우 반가운 사실이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그동안 지연되어 온 관세협상이 타결되고 우리나라의 핵추진 잠수함 도입 승인 등 한미동맹의 현대화 및 안보 협력 강화에 합의하면서 우리 증시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APEC 의장국으로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한·중 관계의 전면적 복원, 경제·금융·민생 분야의 실질적 협력 확대, 통화 스와프 연장, 자유무역협정(FTA) 2단계 협상 가속화 등에 합의하며 지지부진했던 양국 관계 개선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 이 외에도 일본, 캐나다, 호주,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APEC 회원국과 연이어 정상회담을 가지며 이재명 정부의 실용·균형 외교가 괄목할 성과를 거둔 것은 외적 요인에 의한 복잡도 및 리스크 관리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지난 1월 출범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상호관세 부과, 국방·안보 재편 등 다소 급진적 정책에 대한 현명한 대응이다. 민관 협력의 대미 총력전의 실질적 성과를 기대하며, 대미 정책과 동시에 그간 다소 우선순위가 밀려있던 대중 정책의 고도화에 나설 때다.
 
우리 정부의 대중 정책의 핵심은 미·중 패권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실용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강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첨단 기술, 공급망, 에너지 등 중요 분야에서 미국 및 중국이 모두 필요로 하는 차별화된 포지셔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전략적 첨단 기술에 대한 ‘선택과 집중’ 중심의 연구개발(R&D)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 첨단 기술의 전 분야에 대한 균형적 투자도 필요하나 미국과 중국이 가지고 있지 않거나 부족한 첨단 기술 분야에 집중적 투자로 우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초격차 기술력 및 제품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세계 최대의 시스템반도체 제조회사인 대만의 TSMC가 좋은 예다. TSMC는 글로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 최고의 공정 기술로 압도적 점유율을 차지하며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테슬라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만약 TSMC 생산이 중단되면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마비되고 미국은 물론 글로벌 IT·자동차·AI 산업까지 생산이 중단될 수 있으므로 국제적 중요성이 지대하다. 반도체 설계는 모두 미국이 맡고 있는 상황에서도 생산 역량만 가지고 대체불가의 기업이 된 것이다. 대만의 강력한 정책 및 인프라 지원과 함께 물·전기 등의 공급도 일반 가정보다 우선적 지원을 받는다. 미국까지 대만 방어에 나서는 등 대만의 경제와 국가 안보를 지키는 핵심적 존재로 ‘호국신산’이라 불리는 TSMC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례로는 현재 SK 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대표적이다. HBM은 GPU(그래픽처리장치)와 함께 현재 AI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엔비디아 AI 가속기의 핵심 부품이다. 미국의 마이크론, 중국의 CXMT(창신메모리), 화웨이 등이 경쟁사이나 HBM4 등 차세대 제품과 기술력에서 뒤처져 한국 제품의 독주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 공히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인 AI 기술 경쟁에서 앞서가려면 SK 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HBM 제품 및 기술 역량을 필요로 하여 TSMC와 같은 대체불가의 기업이 될 수 있다. HBM의 뒤를 이을 전략 제품이라 전망되는 CXL(Compute Express Link), PIM(Processor in Memory) 등 차세대 제품 및 기술 개발을 선점하는 R&D 투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다음으로, 중국 시장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2000년 이후만 봐도 대중국 수출액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우리 수출을 견인했다. 2000년 수출액 1724억 달러 중 대중 수출액은 185억 달러로 10.7%를 차지했다. 대중 수출액은 지속적으로 늘어 2018년 수출액 6055억 달러 중 1635억 달러, 26.8%로 역대 최고 비중을 기록했다. 사실상 대중 수출인 홍콩 수출을 포함하면 30%를 상회하는 비중이다. 중국의 기술자립도 제고, 경제 성장률 둔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 등으로 2019년 이후 하향하여 2024년에는 수출액 6838억 달러 중 1334억 달러, 19.5%로 후퇴했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무역 수지를 살펴보면 한국 경제 발전에의 큰 기여도를 가늠할 수 있다. 지속적 무역 흑자를 기록하며 2013년 628억 달러로 최대치를 기록하고 2023년 180억 달러 적자로 전환되기까지 이 기간 중 누적 무역 흑자는 약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기간 중 한국 경제는 주로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중국은 최종 제품을 만들어 내수 및 수출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으로 양국은 동반 성장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기술자립도 상승으로 중간재의 내재화가 이루어지고 제품 경쟁력이 향상되면서 우리 기존 상품의 대중 수출이 퇴조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지난주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관계의 전면적 복원에 합의한 만큼 수출 품목별 새로운 전략으로 대중 수출의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소재, 부품, 장비 등 중간재 수출은 중국 대비 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범용 대신 친환경 소재, 첨단 화학, 배터리 소재 등 고부가가치 분야 중심의 수출 확대가 필수적이다. 현재 경쟁력과 함께 미·중 갈등 등 지정학적 이슈가 많은 중간재 중심 구조에서 탈피하여 소비재 수출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국 소비자들에 통할 수 있는 K-팝(Pop) 등 한류 문화와 융합된 스토리텔링 등 브랜드 마케팅 혁신, 1~2선 대도시에서 3~4선 중소 도시 진출, 화장품, 식품, 의료·웰니스 등 유망 소비재 중심의 전문화 및 프리미엄화, 전자상거래 역직구 확대, 급증하는 관광객 대상 면세품 수출 확대 등 다양한 소비재 수출 확대 전략이 요구된다. 세계 시장의 30%에 육박하는 중국 시장에 대한 재조명과 수출 전략의 고도화가 시급하다.
 
현재의 위기 상황에서 경쟁력 강화와 함께 지정학적 전략을 잘 세우면 우리에 새로운 기회가 올 것이다. 위기가 기회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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