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관계 부처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후 5시 30분경 퇴근을 앞두고 있던 노동부 직원들에게 "장관 나오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직원들이 나가보니 50대 남성 A씨가 생수병에 미리 준비한 휘발유를 장관실 앞에 뿌리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죠. 인근 부서에서 일하던 직원들이 곧바로 제지에 나선 만큼 다행히 다친 사람들이나 재산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A씨는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노동부 내부로 들어오지는 않은 듯합니다. 정부세종청사는 청와대, 국회의사당, 대법원 등과 함께 최고 등급인 '가급' 국가 보안 시설로 지정돼 있습니다. 민원인 등 외부인이 청사 경내로 들어올 때 신분증 검사를 거쳐야 합니다.
사무실이 위치한 건물 내부도 마음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입주 기관 직원의 확인을 거치고 방문증을 발급받은 뒤 보안 검색도 통과해야 하죠. 공항과 같이 X선 촬영을 통한 소지품 검사를 거치고 금속탐지기를 넘어야 합니다.
사실 정부세종청사가 뚫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2020년 12월 31일, 20대 B씨는 보건복지부 1층 민원인 대기실을 찾아가 "코로나19에 필로폰이 효과가 있다. 복지부 장관을 만나게 해달라"며 장관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당시 B씨는 마약에 취해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이후 B씨는 청사 정문이 닫힌 늦은 밤 울타리를 넘어 경내로 진입했습니다. 지하 주차장을 통해 건물 내부로 들어간 그는 장관실 앞에 필로폰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걸어두고 복지부를 빠져나갔죠.
이튿날 경찰에 붙잡힌 그는 구속된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습니다. 1심 재판부는 보호 관찰과 마약 치료도 명령했는데, 검찰과 B씨 모두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습니다.
B씨의 복지부 침입 이후 5년여 만에 정부세종청사가 다시 뚫리게 된 셈입니다. 청사 관리를 담당하는 정부청사관리본부도 비상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그동안 최첨단 방호를 강조해왔지만 이러한 주장이 공허해졌기 때문입니다.

인력 충원에도 인사 적체·부족한 보상·과도한 민원 '삼중고'
노동부 내부 분위기도 그리 좋지만은 않습니다. 노동부는 A씨가 안전화를 유통하는 사업주로 2023년부터 관할 지청과 본부에 안전 인증과 관련한 민원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고 설명합니다.관가에서는 '기업을 멈출 수 있는' 대표 부처로 노동부가 꼽힙니다. 규제 부처인 그만큼 권한도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노동 존중 사회'를 강조하는 새 정부 들어 힘을 얻고 있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도 노동부를 지목하며 인력 증원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죠.
이에 인사혁신처는 올해 근로감독 및 산업안전 분야 7급 국가공무원을 500명 선발할 예정입니다. 원서 접수 마감 결과 총 1만2290명이 지원하면서 경쟁률은 24.6대 1에 달했죠. 문제는 이보다 더 아랫단에서 일할 사람들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올해 9급 공채에서 노동부에 배치된 합격자 249명 중 61명이 임용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급보다 더 많은 인원을 7급으로 선발하는 만큼 인사 적체에 따른 신규 공직자들의 탈출이 이어졌다는 주장이 나옵니다. 부족한 보상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이번 방화 미수 사건을 두고도 대민 업무에 대한 어려움도 부각되는 모습입니다. 노동부는 근로감독뿐만 아니라 산업안전과 관련한 업무도 담당합니다. 하지만 돈과 목숨이 걸린 만큼 민원인들의 거센 민원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동부기 위치한 정부세종청사 10동에서 흥분한 민원인을 달래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는 공무원들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그동안 '우리 노동부'를 강조해 왔습니다.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고 신뢰할 수 있는 부처를 만들기 위한 '우리 노동부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공직자들이 흔들린다면 프로젝트도 휘청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일하는 사람'을 위한 김 장관의 복안과 행보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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