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3년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공장 화재와 관련해, 자회사 성도건설의 공사과실로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성도이엔지가 중국 보험사들에 약 129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은 확정됐다. 다만 ‘지연손해금은 줄 수 없다’고 본 2심 판단은 대법원이 뒤집어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법인격 부인’에 따른 연대책임은 인정하되, 지연손해금 청구 여부는 다시 심리하라는 취지다.
“법인격 남용해 이익 귀속”… 책임 인정된 성도이엔지
SK하이닉스는 2013년 7월 성도이엔지의 중국 자회사 성도건설과 우시 공장 가스공급설비 설치 공사를 도급계약으로 체결했다. 그러나 두 달 뒤인 9월, 잘못 연결된 배관 밸브에 불이 붙으며 공장 내 약 2500㎡가 전소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화재로 인한 재물손해와 휴업손해를 보상한 중국 보험사들은 SK하이닉스에 총 8억6000만 달러(약 1조190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한 뒤, 성도건설과 성도이엔지를 상대로 구상금 소송을 제기했다.
중국 내 소송에서는 성도건설에 1억2000만 달러 상당의 배상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확정됐고, 한국 법원에는 모회사인 성도이엔지를 상대로 1000억원대의 연대 책임을 묻는 소송이 제기됐다.
1심은 성도건설 직원들이 사실상 성도이엔지의 지휘·감독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해, 중국 민법상 ‘용인단위책임’(사용자책임) 및 배당금 회수의 부당성을 근거로 성도이엔지에 1000억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은 사용자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성도건설이 독립 법인이며, 실질적 지휘·감독관계도 없었다는 것이다. 다만 성도건설이 화재 발생 4개월 뒤, 약 129억원의 배당금을 성도이엔지에 지급한 점은 문제로 삼았다. 재판부는 성도이엔지가 1인 주주로서 “자회사의 변제 능력을 형해화하고 그 이익을 편취했다”며 중국 회사법상 ‘법인격 부인’에 따른 연대책임을 인정했다.
“배로 계산한 이자”… 지연손해금 판단은 다시
이번 대법원 판결은 2심의 책임 제한 판단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지연손해금은 줄 수 없다’는 판단은 법리 오해가 있다고 보고 파기했다.
쟁점은 중국법상 ‘판결 이후의 이행 지체’에 대한 손해배상 방식이다. 대법원은 중국 민사소송법 253조를 근거로 들며 “판결 등에서 정한 기간에 금전 지급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체 기간 동안 배가(倍加)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는 중국 내 확정 판결에서도 적용된 기준이다.
대법원은 “이 사건 역시 성도건설과 성도이엔지가 연대책임을 지는 동일 채무라면, 지연손해금 청구도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심이 이를 판단하지 않은 점은 중국법 해석을 오해한 법리오해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국외 확정판결의 국내 적용과 ‘지연손해금의 준거법’
이번 사건은 △해외 법인의 책임을 국내 법인이 연대부담할 수 있는가 △중국 회사법상 ‘법인격 부인’ 요건과 국내 판례 적용 가능성 △외국 민법·민사소송법에 따라 산정된 지연손해금이 국내 소송에서 인정될 수 있는가를 핵심 쟁점으로 삼는다.
대법원은 △사건의 실질적 지배구조 △자금 흐름 △의도적 배당 여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성도이엔지의 ‘주주권 남용’을 법인격 부인 사유로 인정했다. 이는 국내 기업의 해외 자회사 운영에서도 법적 책임 회피 구조에 대한 경고적 의미를 지닌다.
또한 지연손해금 부분에서 중국 민사소송법의 구체적 조항과 해석을 존중하면서, 외국법 적용 사건에서도 준거법에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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