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이재명 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루어진 작지만 임팩트 있는 변화가 ‘민생’ 개념의 명예회복이다. 지금까지 민생을 챙기지 않은 정부가 없었고 민생의 이름으로 정부를 비판하지 않은 야당도 없었지만 이들 ‘민생(民生)’에서는 정작 사람으로서 ‘백성’은 들어있지 않았다. 살아 숨 쉬는 사람에게 그나마 가장 가까운 범주가 소상공인, 자영업자였다. 그동안 경기침체 국면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민생대책이 이들 생산자, 사업자를 위한 ‘지원’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과 함께 통과시킨 추경예산의 중심에 자리 잡은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명실상부한 민생지원금이다. 이로써 ‘민생’ 개념은 살아 숨 쉬는 사람과 일체가 됨으로써 수모의 역사에서 벗어났다. 정책이념적으로 이는 기업 중심의 신자유주의에서 가계 중심의 케인스주의로 한 걸음 이동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전소득보다 노동소득에 의해 ‘민생’의 지속가능한 안정이 도모될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이 경제정책의 한 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 정부 중반 이후 정책적 관심에서 멀어져 윤석열 정부는 물론 이재명 정부의 공약에서도 충분한 명시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청년층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극우, 파시즘 선동에 부화뇌동하든 57만명으로 추정되는 고립·은둔 청년이 사회에서 자발적으로 이탈하든 이들을 ‘자기 배제’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대책의 중심에는 일자리 창출이 있어야 한다. ‘이대남’의 차별의식의 배후에는 갈수록 극심해지는 취업경쟁에서 군복무로 인해 경험하는 상대적 피해의식이 자리한다. 근본대책은 군복무 가산점제도의 복원이 아니라 청년 취업기회의 확대, 일자리 창출이다.
최근 급물살을 타면서 이재명 대통령의 실행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도 지역 균형발전의 중심에 일자리 창출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균형발전을 일단 지역주민의 ‘대등한 경제적 생활수준’의 보장으로 이해한다면 시장경제에서 핵심적인 정책수단은 당연히 일자리의 전국적인 확산, 창출일 수밖에 없다. 인재가 있는 곳에 기업이 모여들기보다 좋은 기업이 있는 곳에 좋은 인재가 몰려든다. 해수부 부산 이전은 해수부 직원의 부산 이전에서 출발해서 주변지역의 인재도 끌어당기는 연쇄효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결국 지방소멸은 일자리 부족에 따른 인재(젊은이) 유출 현상이다. 이 점에서 본다면 ‘서울대 10개 육성’ 공약은 지역 산업발전 및 일자리 창출과 병행되었을 때 비로소 실효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지역산업과 연관된 연구개발이 활성화되고 대학은 ‘특성화 대학’으로 성장하면서 지역거점별 산학연의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일자리 창출 없는 지역대학 육성(지원)은 지역대학을 경유지로 하는 지역 인재의 유출을 막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 교육의 고질병으로 치부되는 ‘치열한 입시경쟁’의 치유책 역시 경쟁 자체를 완화하려는 헛된 노력이 아니라 청년들이 경쟁을 통해 얻으려는 최종 결과물(일자리)을 늘리는 노력이 실효성 있는 대책이 될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의대 집중’은 안정적인 고소득 일자리 부족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저출산 대응 역시 일자리 창출로 보강하여 ‘생애주기형 인구소멸 대응전략’으로 완성할 필요가 있다. 저출산 예산 200조원, 300조원으로 그동안의 정책실패를 변명하기보다 사람이 출산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필요한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남녀가 만남 이전에 만남을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적인 ‘만남의 조건’은 당연히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뒷받침 해주는 ‘직장’이다.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이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소 그 다음 조건의 충족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출산, 육아, 주거, 교육, 여가 활용 등등. ‘일자리가 첫 번째 인구소멸 대책이다’라는 명제는 국정비전의 논리사슬에 포함시킬 만하다.
‘탄소중립 2050’을 달성하는 데 최대 난관은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다.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일자리 전환’의 고비를 넘어야 한다. 지역균형 발전을 감안한다면 원전과의 에너지 믹스는 물론 분산에너지시스템과 에너지 고속도로의 조화도 필요하다. 대한상공회의소 추산에 따르면 RE100 목표로 인해 국내기업 수출의 약 60%에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되므로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 우선적으로 ‘RE100 전용산단’을 조성하려는 정부 계획은 만시지탄이다. 아울러 태양광, 해상풍력 소부장 R&D와 산업 육성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에너지 안보에 대비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일본과의 관세협상을 마무리했다고 보고하면서 “일본이 미국에 5500억 달러를 투자할 것이고 이는 수십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2022년 방한한 바이든 전 대통령도 삼성전자 평택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생중계로 시청하고 있는 노조 간부들에게 “이런 좋은 일자리가 수천 개 생길 것”이라고 자랑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 재편은 수출주도성장의 대외적 환경이 불리해짐을 의미한다. 이는 자유무역의 효율성 논리가 보호무역의 경제안보 논리에 밀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싸더라도 국내에서 생산하겠다’는 다소 무모한 듯한 이 논리는 국내 일자리 창출 요구로 직결된다. 이제는 수출진흥을 통한 일자리 창출보다 국내 재생산구조의 확충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주권정부의 나침반인 ‘주권자 중심성’이 요구하는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적 안정(민생경제)의 달성은 지속 가능한 민주주의의 물적 토대이다. 지역 균형발전 없는 지역분권은 지역간 권력배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자원배분의 불균형을 더욱 심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있다. 세계인의 찬탄과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는 K-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위해서도 일자리 창출에 기반하는 경제생활의 안정이 필수적이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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