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조순열 서울변호사회장 "'사물함 변호사'까지 등장, 수급 제한 시급해"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지난 22일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서초동엔 사물함을 임대해 개업하는 사물함 변호사가 늘 정도라며 수급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조순열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지난 22일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최근 서초동엔 사물함을 임대해 개업하는 '사물함 변호사'가 늘 정도"라며 수급 문제의 심각성을 얘기했다. [사진=유대길 기자]

“공유 오피스도 양반입니다. 지금 서초동에는 사무실 얻을 돈이 없어 사물함 한 칸을 임대해 사업자 등록을 하는 ‘사물함 변호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사물함에서 송달도 하고, 페이퍼 워크는 집에서, 고객은 카페에서 만나는 거죠.”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만난 조순열 회장은 변호사 수급 문제를 얘기하며 사물함 변호사를 예로 들었다. 변호사들이 수익이 줄면서 최소한의 영업을 하기 위해 개인 사무실도, 공유 오피스도 아닌 사물함 대여 서비스를 이용한다는 얘기다. 이 같은 사물함 대여에는 월 10만~15만원이 들어가며 최근 변호사를 시작한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조 회장은 “사법시험이든 로스쿨이든 결국 법조인이 된 이들이 생계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공익과 직업윤리를 기대하는 건 구조적 위선”이라며 “우리도 자체적으로 이들을 케어하기 위해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준비 중이지만, 변호사 수만명인 시대에 수급 제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06년 1만명 수준이던 등록변호사 수는 2014년 2만명, 2019년 3만명에 이어 올해 4만명을 돌파했다.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 이후 매년 1700명 안팎의 변호사가 유입되고 있으며,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수도 1744명이다. 변협 등 변호사 관련 단체들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법률 서비스 질 저하 등을 우려하며 일정 수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 회장은 “변호사 숫자는 늘었지만, 법률 서비스는 과도한 경쟁체제에 돌입함에 따라서 과잉 광고로 인해 오히려 비용이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수급 조절에 실패했다”며 “일본은 인구가 1억2000만인데 마찬가지로 변호사 수를 늘리다가 질 저하를 실감하고 지금은 배출 수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때 한국에서는 ‘이과 나오면 의사, 문과 나오면 변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의사 단체들이 정부와의 싸움을 각오하고 휴학을 불사할 정도로 투쟁해 희소성을 지키는 사이, 변호사는 중위소득이 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10대 자격사 가운데 처우가 가장 악화됐다.

조 회장은 “의사들은 조직적으로 수급을 통제하고 집단행동도 불사하지만, 변호사들은 그럴 힘도 없이 각자도생의 현실에 내몰려 있다”며 “로스쿨에서 3년 공부하고 자격증 딴 친구가,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한 친구보다 연봉이 낮아 생계가 막막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로스쿨 제도에 대해 “법조인 양성 루트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모든 길은 로스쿨밖에 없어야 하나”, “실력이 되면 로스쿨을 나오지 않아도 변호사 자격을 검증해 줄 수 있는 것” 등의 문제 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2022년 20대 대선 당시엔 사법고시 부활을 공약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 대통령 발언 이후 사법고시 부활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 회장은 “언론의 과잉 해석”이라며 선을 그었다. 조 회장은 “제가 어제(21일)도 국정기획위에 다녀왔는데 사법시험 부활 얘기는 전혀 없었다”며 “지금의 후배 변호사는 선배 세대처럼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선배들의 부정적 이미지만 남아 참담하다. 정책을 만드는 분들이 이러한 현실을 뼈저리게 직시했으면 좋겠다”고 단언했다.

사법시험 부활로는 ‘고시 낭인’만 다시 양산할 뿐 ‘개천에서 나는 용’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예전 사법시험의 전성기와 달리, 지금은 공부할 분량도 늘어났고 비용도 수억원 이상 늘어 자칫 한 마리의 개천 용을 살리려다가 9999명의 고시 낭인만 만들 우려가 있다. 로스쿨 제도 자체는 장학제도나 학비 지원 등을 갖춰 적은 비용으로도 졸업이 가능하며, 설사 로스쿨에 낙오하더라도 정상적인 취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조 회장은 단순히 로스쿨 존치가 아니라 로스쿨 통폐합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얘기했다. 조 회장은 “로스쿨 도입 14년이 지난 지금, 입학 수준은 서울이나 지방이나 큰 차이가 없지만 지방에선 교육 자체가 변시 합격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학생들이 3년을 마치고도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며 “지방분권을 위해 지역 로스쿨을 인가했지만, 실제 지방변회에 남는 인원도 없이 다들 서울로 올라가는 현실에서 제도 설계를 다시 할 필요는 있다”고 힘 주어 말했다.

변호사 단체들은 법무사·세무사·변리사 등 일명 유사 직역들과 변호사의 소송 대리권을 두고 일부 갈등이 있다.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해달라는 목소리이지만, 조 회장은 변호사법 개정을 통해 유사 직역에 빼앗긴 변호사의 소송대리권을 지키는 것은 물론 여기서 나아가 변호사를 중심으로 자격사 제도 정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회장은 “로스쿨 도입 당시 정부는 시장 수용 범위 내에서 변호사를 양성하고, 동시에 법조 유사 직역을 통폐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는데 그 약속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단순히 전문성이 있다고 의료소송을 의사가, 기업소송을 경영인이 하는 게 아니라 재판을 하는 판사와 같은 수준의 법을 공부한 법률전문가가 시장을 대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지난 1월 당선된 조 회장은 △형사절차상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변호사 비밀유지권(ACP) 입법화 △로펌 프로보노 지원 등을 주장하며, 실제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제도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서초동에서 유난히 잔뼈가 굵은 조 회장이 강조해온 것 중 하나가 형사성공보수 부활이다. 2015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형사사건에서 변호사에 대한 성공 보수에 대해 무효 판결했다. 조 회장은 이 판결 자체가 무리한 판결이었다고 평하며, 10년이 지난 지금 현실에 맞게 다시 판단받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실제 대법원 판결 이후 형사성공보수라는 단어는 금지됐지만, 착수금, 중도금, 잔금, 2차 착수금 등 변칙적인 성공 보수만 낳는 부작용도 상당하다.

조 회장은 “형사성공보수가 금지되니 착수금을 많이 받지 않으면 아예 사건을 맡지 말라는 분위기까지 생겨날 정도로 서민들·개인 변호사들에게만 불리한 구조”라며 “형사사건에서도 변호인이 조력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금처럼 전면 무효가 아니라 고액 제한 방식으로 현실화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조 회장은 최근 리걸테크로 대두되는 AI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AI는 결국 변호사가 아니라고 직격했다. 조 회장은 “AI를 변호사처럼 대하면 법률적 상황에서 오판으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될 수 있어 위험천만이다”라며 “의료기구가 의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리걸테크 또한 변호사들의 도구로 활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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