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약한 고리 파고드는 中 '조용한 침공'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필자가 주호주 대사로 재직할 때인 2019년 초에 필자는 당시 호주 언론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던 책 ‘조용한 침공’의 저자인 클라이브 해밀턴에게 만나고자 연락을 취했다. 대사관을 직접 방문한 그에게 집무실에서 책 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한참 책 설명을 하고 난 뒤 그는 헤어지기 전에 필자에게 “중국은 한국과 호주를 미국 동맹 중 약한 고리로 보고 있으며 호주에 이 정도 공작을 하면 한국에는 더 심한 공작을 할 것인데 한국은 이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라고 물었다. 나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중국이 벌이고 있는 공작에 대해 별로 들은 바가 없다”는 답변만 하였다. 그 이후로 그의 질문이 귓가에 맴돌아 나는 우리 사회 내에 스며들고 있는 중국의 힘과 영향력에 대해 귀국 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되었다.
 
클라이브 해밀턴에 의하면 중국은 손자병법에 적힌 것처럼 ‘전투를 벌이지 않고 이기는 것이 병법의 최선’이라는 원칙을 외교 상대국을 다룰 때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고 했다. 즉, 어떤 나라를 자국의 영향권 속으로 편입시키기 위해서는 중국은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다방면의 공작을 조용히 펼친다. 언젠가는 그 나라가 중국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사실상 외교전에서 승리한다고 보고 중국은 이를 실천하려 한다는 것이다. 즉 호주 사회 각 분야에 중국의 영향력을 증대시켜 부지불식간에 호주 사회를 친중국적으로 만드는 공작을 하고 있기에 이를 ‘조용한 침공’이라 보고 책 제목을 그렇게 정했다는 것이다.
 
호주 정치권은 우선 호주 내 중국계 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가장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시하였다. 호주의 자유·노동 양당이 총선을 통해 정권교체를 할 때 양당 간 표차가 40만~50만표에 불과하다. 그런데 중국계 유권자가 많아져 이들이 집단투표를 하게 되면 노동당에 몰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 그 결과 노동당이 계속 집권하게 되면 장기적으로 중국에 유리해지고 호주에는 불리해지는 구도가 된다. 그래서 중국계 인구가 100만명을 넘어서자 호주는 경고등을 켜고 중국계 유권자에 대한 심사를 강화하고 중국계의 정계 진출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지자체 선거에서 중국 국적 조선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였고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대해 국민 반감이 있음에도 아직 별다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중국인들이 호주의 주요 도시에 부동산, 특히 주택을 대량 구입하는 바람에 주택 가격이 상승하자 이를 사회 불안 요인으로 보고 호주 정부는 규제를 하기 시작했다. 즉, 주택가격 상승으로 사회 불만이 증대하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사회 안전이 위험해진다고 판단했다. 특히 사회 인프라 유지를 위한 기간요원인 경찰, 운전사, 소방수, 간호원들이 시 외곽으로 밀려 나가게 되면 긴급상황이 발생해도 이들을 속히 현장으로 투입하기가 쉽지 않아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현지 실거주 사실이 증명되지 않으면 주택을 구입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최근 몇 년 강남 3구의 집값이 급상승하는 원인 중 하나로 중국계 큰손들의 소유 비율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실거주 의무, 대출 한도액 등 규제를 받으나 중국인들은 이런 규제도 받지 않아 역차별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중국인들은 단기적으로 임대료 수입과 장기적으로는 가격 상승으로 큰 투자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 와중에 우리 청년들은 치솟는 집값으로 인해 비관적인 미래 전망에 찌드는 불행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중국계 유학생들이 호주 대학에 많아지면서 캠퍼스에서 중국과 관련된 사안에 대한 언론자유가 없어져 버린 현상이 나타났다. 이러자 호주 정부는 호주 대학 내 공자학원들을 철폐하고 중국 유학생 숫자를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중국 유학생에 대학 재정을 많이 의존하다 보니 호주 대학들은 친중국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 중 중국계 학생들의 항의로 인해 호주 교수가 중국에 대해 소신 있는 발언도 못하는 현상까지 발생하면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대학들은 학생 수 감소에 직면하여 중국 유학생을 더 받는 데 사활을 걸고 있으며 공자학원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못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 연구를 하는 호주 학자들도 중국에 비판적인 연구를 하면 중국에 재입국할 수 없도록 중국이 통제를 가한다. 그러면 학자들은 중국과 교류를 해야 연구를 계속할 수 있기에 개인적으로 친중적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학문의 자유는 침해되고 학계에는 친중적인 연구·발표들이 많아지게 된다. 우리 학계에도 비슷한 조짐이 보이는 것 같다.
 
호주는 자국의 중요한 인프라 시설에 중국 기업이나 제품이 진출하지 못하도록 빗장을 걸어버렸다. 호주의 철도, 통신, 공항, 항구와 같은 인프라 시설에 중국 기업이 공사를 아예 맡지도 못하고 중국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 예로 호주의 5G 통신망에는 화웨이 등 중국제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데 아직 우리 일부 통신사가 중국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작년에 우리 군에서 감시 장비로 사용하는 CCTV가 중국제인 것이 밝혀져 이것을 철거한 것이 처음으로 뉴스가 될 정도다.
 
게다가 중국의 유통 거인인 알리바바와 테무 등이 한국 직구 시장을 장악하면서 가뜩이나 구조적인 적자가 누적되고 있는 한·중 무역 거래에 적자를 더 가중시키고 있다. 대미 수출 길이 막히면서 넘쳐나는 재고를 소진하기 위하여 중국이 덤핑으로 밀어내는 제품들이 한국 직구 시장에 넘쳐나고 있다. 이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 중소기업들은 초토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이에 대해 관세·비관세 장벽을 세우기 시작했음에도 우리 당국은 한·중 FTA를 이유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를 범할 것 같다. 최근 한·중·일 학술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장은 기조연설에서 중국은 3국 간 FTA 체결 추진을 원하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자국이 먼저 한·일 양국에 시혜적인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는 발언을 하였다. 그만큼 중국은 이제 1차 산업은 물론 제조업 분야에도 한·일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을 표출한 셈이다. FTA가 우리에게 유리한 교역 틀이라는 점은 중국 굴기 앞에서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미국이 교역에 있어 최근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관세 부과로 인해 FTA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측면을 보이는 데 반해 중국은 오히려 FTA를 확대하려는 대조적 태도를 보인다. 이에 따라 자칫하면 중국이 자유무역 질서를 더 잘 지키는 국가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 이익에 따라 비관세적 조치를 사용하여 언제든 교역을 차단할 수 있는 나라다. 중국의 외면적 발언과 내면적 속내를 우리는 잘 판별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를 잘 알고 버티려 해도 우리는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의 중력권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쉬운 형국이다. 그런데 중국의 조용한 침공, 즉 발밑을 파고드는 영향력 확대 전략을 눈치채지 못하면 부지불식간에 서쪽으로 끌려 들어가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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