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매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두 사건에서 동일한 재판부가 전혀 다른 판단을 내렸다. 회계감사 ‘의견거절’ 공시를 앞두고 회삿돈으로 대출을 갚은 에스디생명공학 대표는 무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활동 중단 소식을 미리 알고 하이브 주식을 판 계열사 직원들은 유죄였다. 같은 법 조항(자본시장법 위반)을 적용한 사건임에도 판결이 엇갈린 이유는 ‘손실 회피 목적’에 대한 입증 판단 차이 때문이다.
‘손실 회피 목적’ 입증이 판결 갈랐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김상연)는 22일 에스디생명공학의 전 대표 박모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는 2023년 3월 감사의견 ‘거절’이 공시될 것을 미리 알고 보유 주식 350만주를 처분한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로 기소됐다. 상장폐지 사유가 될 수 있는 ‘의견 거절’은 통상 기업의 회계 불투명성이나 존속 가능성에 치명적 결함이 있을 때 내려지는 조치다.
검찰은 박 전 대표가 이 같은 악재를 미리 알고, 직접 주식을 매도하지 않고 보유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변제한 뒤 반대매매(담보주식 강제 매각)를 유도해 사실상 주식을 처분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실제로는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해 담보권 실행에 따라 주식이 처분된 것에 가깝고, 정보이용의 주도성이 없었다”고 봤다. 이어 “정말로 미공개 정보를 활용해 손실을 회피하려 했다면, 직접 시장에서 주식을 파는 편이 훨씬 유리했을 것”이라며 거래 구조의 ‘경제적 비합리성’을 지적했다.
이 판단은 미공개 정보의 인지 여부뿐 아니라 해당 정보를 ‘이용’했는지 여부, 다시 말해 손실 회피 의도가 구체적으로 실현됐는지에 방점을 둔 것이다.
BTS 활동 중단은 ‘민감한 정보’…직접 매도엔 유죄
같은 날 같은 재판부는 BTS 단체활동 중단 정보를 사전에 알고 하이브 주식을 판 계열사 직원 3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2022년 6월 BTS 멤버 진의 입대를 앞두고 단체 활동을 멈춘다는 사실을 유튜브 발표 전에 미리 알고 주식을 전량 매도해 약 2억3000만원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들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와 함께 상당액의 벌금을 선고했다. 특히 이익보다는 ‘회피한 손실’ 규모를 기준으로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가 성립된다고 봤다.
재판부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주력 아티스트의 활동 여부는 실적과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정보”라며 “이를 내부 직원들이 미리 알고 주식을 판 것은 자본시장 질서를 위협하는 중대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실제 발표 이튿날 하이브 주가는 24.78% 급락했다.
이 사건에서는 주식 매도 시점, 정보 접근 경로, 실제 주식 매도 여부 등 정보이용의 명백성이 입증되었고, 거래의 직접성도 분명해 유죄 판단에 무게가 실렸다.
정보 ‘보유’가 아닌 ‘이용’이 핵심…거래 방식 따라 달라진 유·무죄
두 사건의 쟁점은 단순히 미공개 정보를 ‘알고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정보를 ‘어떻게 활용했는가’에 있다. 전자는 정보 접근자라면 누구든 성립 가능한 사안이지만, 후자는 의도와 거래 경위를 종합해 법원이 판단해야 할 문제다.
에스디생명공학 대표 사건에서는 주식 처분 행위 자체가 간접적·수동적이었고, 경제적 이익 측면에서도 오히려 불리했다는 점이 인정됐다. 반면 BTS 사건에서는 정보 접근자가 직접적이고 명확한 방식으로 미공개 정보를 주식 매도에 활용한 정황이 포착됐다.
결국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서 핵심은 미공개 정보의 ‘이용’ 여부다. 같은 조항으로 기소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 목적과 거래 구조의 실질이 다르면 판결은 전혀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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