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회원국들에 고율의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첫 아시아 순방에 나선 마르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이 아세안 외교무대에서 관세 불만 달래기에 나설 전망이다.
10일(현지시간) AP·AFP·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루비오 장관은 이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아세안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11일 동아시아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도 잇따라 참석할 예정이다.
미 국무부는 이번 순방에서 루비오 장관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안전한’ 질서 구축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강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중국해 안보와 초국경 범죄 대응이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는 게 국무부의 입장이다.
로이터는 루비오 장관이 국무장관과 국가안보보좌관을 겸직하고 있는 만큼 이번 순방이 미국의 외교 무게중심을 중동·유럽에서 인도·태평양으로 재조정하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짚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아세안 회원국 대부분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루비오 장관은 관세 문제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14개국에 이어 9일에는 추가로 8개국에 서한을 보내 상호관세 부과를 공식 통보했다. 이에 따라 베트남과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세안 8개국이 최대 40%에 이르는 고율 관세를 부과받게 됐다.
미국의 일방적 조치에 아세안의 반발도 거세다.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외교장관회의 개막 연설에서 “관세와 수출 제한, 투자 장벽은 이제 지정학 경쟁의 날카로운 무기가 됐다”고 미국을 강하게 비판했다. 아세안 외교장관들 역시 공동성명 초안에서 “관세를 포함한 일방적 조치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대니 러셀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소장은 AP에 “루비오의 중국 위협에 대한 발언은 30∼40% 관세로 타격을 받는 (이 지역) 산업 관계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할 것”이라며 “지난주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가 아세안이 ‘단결된 블록’으로서 도전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중국의 강압이 아니라 미국 관세를 언급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루비오 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도 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 전쟁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우크라이나 지원 재개를 승인하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공개 비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푸틴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거짓말(bullshit)을 하고 있다"면서 "난 푸틴에 불만이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추가 무기 지원과 러시아 제재 법안 지지 등도 고려하고 있다.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도 이날부터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지만, 루비오 장관이 왕이 부장과 만날지는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편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전날 회의에서 미얀마 내전을 주요 의제로 다뤘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내전은 만 4년 반째 이어지고 있다.
미얀마 군사정권이 오는 12월부터 내년 1월 사이 총선 개최를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모하마드 하산 말레이시아 외교장관은 충돌 당사자 모두가 ‘선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동성명 초안에는 미얀마의 무력 충돌과 인도주의 위기에 대한 깊은 우려와 함께, 군사정권이 2021년 4월 아세안과 합의한 폭력 중단 등 ‘5개 합의사항’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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