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ECB포럼서 "비은행 스테이블코인 우려"…파월·라가르드 공감

  • Fed·ECB·BOE·BOJ 등 주요국 총재와 나란히

  • 포루투갈 신트라서 ECB 중앙은행 정책토론

  • "관세 26%·품목별 관세 유지시 GDP 1% 영향"

  • "잠재성장률 급락 부양책보다 구조개혁 시급한데…

  • 말하면 총재 임무 넘어선다고 해" 정치권 비판도

사진ECB 유튜브 화면 캡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현지시간) 포루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정책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 총재,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 [사진=ECB 유튜브 화면 캡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 무대에서 비은행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관련해 우려를 표하며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 부처와 논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1일(현지시간)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주최 중앙은행 정책포럼에서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류 베일리 영국은행(BOE) 총재,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와 패널 토론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책 토론은 ECB 포럼의 핵심 세션으로 국제 금융 이슈에 관한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 총재의 정책 견해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 총재는 "이번 주 한은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시범 사업에 제동을 걸었는데 현재의 핵심 과제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적절한 규제를 찾는 것이며 당장 CBDC를 개발하는 것보다 이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의에 "한국에서 매우 뜨거운 이슈"라고 답했다.

이 총재는 "우리는 이미 시중은행과 공동으로 토큰화 예금(Tokenite deposit) 시범 사업인 '한강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며 "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의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급증하고 있어 약간 신경이 쓰인다"고 밝혔다.

그는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미국에서 'Genius Act(지니어스 법안)'이 통과되면서 많은 핀테크 기업과 비은행 기관이 원화 표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은 입장에서는 만약 규제되지 않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면 이 코인들이 달러 표시 코인으로 빠르게 교환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우리의 자본관리 규제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짚었다.

이 총재는 "일각에선 블록체인 신기술이 비정상적인 거래를 식별하고, KYC(고객확인) 규제도 잘 수행할 수 있으며 이상 거래도 쉽게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 주장이 사실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고 또 '내로우 뱅킹' 등 여러 가지 다른 이슈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총재는 "이 문제는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는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 부처와 논의를 해야 한다"며 "규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정부·당국과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우려에 중앙은행 총재들은 공감을 표했다. 파월 의장은 "스테이블코인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규제 프레임워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 역시 "화폐는 공공재이며 중앙은행은 이 공공재를 지키고 보호할 책임이 있는 만큼 우리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매우 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ECB 유튜브 화면 캡처
[사진=ECB 유튜브 화면 캡처]

이날 포럼에서는 미국 관세정책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특성상 관세가 미치는 영향과 관련해 이 총재는 "현재 한국의 인플레이션은 2%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며 "우리에겐 관세가 (인플레이션이 아닌) 오히려 디플레이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디플레이션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이유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보복관세를 부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아울러 수입의 22%를 중국에서 들여오는데 중국의 수출 물가가 최근 연간 5% 하락했고 이같은 추이가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성장률이 0.8%로 잠재성장률보다 매우 낮아 총수요 압력이 아주 낮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한국은 수출 주도형 경제로 글로벌 파편화가 어떤 식으로든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를 통한 직접적 영향뿐 아니라 중국, 멕시코, 캐나다 등을 통한 간접적 영향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부의 상호 관세 유예 만료 시한(7월 8일)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며 "관세가 지난 4월 2일 발표된 26%로 돌아가고 지금 우리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알루미늄, 철강, 자동차등 품목별 관세가 지속된다면 국내총생산(GDP)에 1%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통화정책과 관련해선 완화 기조를 이어가겠지만 주택가격 급등으로 금융안정 리스크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해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1.00% 인하했다"며 "앞으로도 성장률을 감안해 완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금융안정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며 "추가 금리 인하의 속도와 시기를 결정할 때 이 점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패널 토론에서 유일한 비기축통화국 중앙은행 총재로서 원·달러 환율 흐름,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파편화 등과 관련해서도 발언했다. 

이 총재는 최근 원화 가치가 정상화 국면을 맞이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원화가 지난 두 달 사이 급격하게 절상됐지만 이는 우리가 겪은 매우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다"며 "지난해 연말 계엄사태 이후 정치적 리스크와 우리 경제의 둔화가 겹치면서 원화 가치가 펀더멘털에 비해 훨씬 절하됐다"고 했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파편화'에 대해선 "우리는 파편화에 대해 상당히 취약하지만 실제로 그 흐름을 바꾸긴 어렵기 때문에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한다는 점이 안타깝다"며 "한국 같은 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이슈는 경제적 분열이 안보와 연결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글로벌 달러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면 이전처럼 연준이 스와프 라인을 연장할 것이라 믿는다"며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 팬데믹 당시 달러 스와프 라인이 금융시스템 안정을 회복하는 데 매우 핵심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글로벌 달러 부족이 아닌 우리나라 자체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연준이 스와프라인을 연장해주지는 않을 것이므로 충분한 수준의 외환보유액을 갖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급격하게 낮아지는 잠재성장률을 우려하며 구조개혁 필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빠른 구조적 변화로 잠재성장률이 2%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며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통한 부양책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높아지는데 실제로 필요한 것은 구조개혁"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우리 경제에 중요한 것은 구조적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지 여부"라면서 "그러나 계속 구조개혁 이야기를 한다면 일부에서 총재의 임무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얘기하기 때문에 얼마나 깊이 있게 얘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에둘러 정치권을 비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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