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일용 기자 [사진=아주경제DB]
현재 해운 업계의 가장 큰 화제는 국내 최대 해운사인 HMM의 본사 부산 이전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와 함께 HMM을 부산으로 보내겠다는 공약을 꺼내 들면서 부산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대감을 담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내년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서 부산 지역 표심을 좌우할 '대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HMM을 언제 어떻게 부산으로 보낼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해수부 부산 이전에 속도를 내고 있는 국정기획위도 24일 HMM 본사 이전에 대해서는 "구체적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 부처인 해수부와 달리 HMM은 주주와 이사회가 중심인 민간 기업이다. 정부 지분이 77.71%에 달하는 만큼 임시주총을 소집해 정관만 변경하면 본사를 부산으로 이전할 수 있지만 해수부처럼 속도감 있게 이전을 추진하기에는 여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HMM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뜻을 품고 조용히 근무 중인 다수와 부산 이전을 피하기는 어려우니 정부·대주주(한국해양진흥공사, 산업은행)에서 받을 것은 받아 내야 한다는 목소리 큰 소수의 입장이 엇갈린다는 전언이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 HMM 채널에선 이를 두고 매일 격렬한 말싸움이 오가고 있다.
일단 서울에 근무하는 대다수 육상 직원은 부산 이전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서울에 터를 잡고 계동과 여의도로 출퇴근하던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부산 이전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일 수밖에 없다.
한 HMM 관계자는 "과거 현대그룹 시절 입사한 근속 연수가 오래된 직원들은 집을 팔고 부산에 터를 잡기보다는 원룸을 구해 평일에는 부산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는 서울·수도권에 올라오는 주말부부를 선택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세종시 초창기에 관가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모습이다.
젊은 직원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다른 HMM 관계자는 "35세 이하 젊은 직원들이 회사와 함께 부산으로 갈지는 미지수"라며 "다른 해운사나 물류 기업으로 이직할 가능성이 크다"고 의견을 냈다. 한창 일해야 할 경력 직원들이 이탈하면 회사 경쟁력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배를 타고 전 세계를 누비는 해상 직원들은 본사 이전에 크게 관심 없는 분위기다. 근무 여건과 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산 이전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오면 직원 반발이 터져 나올 것은 분명하다. 정부와 국정기획위의 일방적인 결정은 직원들의 분노를 부를 뿐이다. 2021년 임금에 대한 불만으로 노조를 중심으로 HMM 직원들이 뭉쳐 들고 일어났던 상황이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지분 100%를 쥐고 있는 산은도 결국 직원 반발로 부산 이전이 좌초됐다. 장기간의 채권단 관리 체제로 인해 임금·근로조건 등에 불이익을 입은 HMM 직원들의 분노가 산은 직원보다 크면 크지 작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해양수도·북극항로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 보일 뿐 당사자인 직원들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정부와 부산시가 HMM을 품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 핵심 관계자들이 HMM 직원들을 만나서 소통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직원들을 위로·설득하고 부산 이전으로 인해 직원들이 입을 직간접적인 손해를 상쇄할 수 있는 다양한 인센티브를 약속하는 게 도리다.
기업의 본사 이전은 으리으리한 건물을 임차하고 그곳에 사무용 집기를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기존 직원들이 따라와서 업무 연속성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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