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장이 있는 중국 내 자국 반도체 장비 공급 제한을 검토키로 하면서 업계가 고심하고 있다. 미국의 구상이 실제 실행되면 중국 내 공장의 피해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수출 통제' 부문 책임자인 제프리 케슬러 산업·안보 담당 차관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포함해 대만 TSMC에게도 이 같은 제한 방침을 통보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 상무부는 중국 현지 공장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공급할 때마다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조처를 취소하길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내 수요 대응과 생산 단가 절감 차원에서 중국에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 낸드플래시 생산 공정, 쑤저우에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을 두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 D램 공장, 충칭 패키징 공장,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방침이 실행될 경우를 염두해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 정부가 해당 방침을 실행할 경우 삼성전자는 중국 내 낸드플래시 공정 업그레이드 계획을 전면 재수정해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중국 시안 공장 일부를 286단(V9·9세대) 낸드 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평택 공장처럼 공정을 9세대로 업그레이드하지 못한다면 중국 내 수익성 감소를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국내 공장을 중심으로 300단(V10·10세대) 낸드플래시 공정 전환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우시 D램 공장이 미국 ASML, 어플라이즈 머티리얼즈(Applied Materials) 등의 장비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비상이 걸릴 수 있다. 특히 우시 공장이 글로벌 D램 생산량의 약 40~45%를 담당하는 주력 생산기지인 만큼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이 미국 인텔로부터 인수한 공장이고 기존 인텔 설비가 많다는 점을 활용해 미국 측에 반입 유예 조치를 이끄는 로비 활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을 필두로 미국 정부 및 정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밖에 첨단 공정을 한국으로 옮기고, 중국에선 성숙 공정인 DDR4 이하 범용 제품 생산으로 이원화하거나 D램 전공정은 중국에서, 최신 장비가 필요한 후공정은 한국에서 하는 맞춤형 전략도 거론된다.
앞서 미 정부는 2022년 10월 미국산 장비와 미국 기술이 포함된 반도체 제품의 중국 수출 통제를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공장에는 1년 유예를 적용한 바 있다. 또 다음 해에는 두 기업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로 지정해 방침을 사실상 무기한 유예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상무부 안이 트럼프 정부 방침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고, 추후 유예나 철회 가능성도 있지만 최악의 상황을 염두하고 대응 전략을 짜놓을 필요가 있다"며 "(방침이 실행될 경우) 한국·대만 기업뿐 아니라 미국 반도체 장비사들도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해 유예를 이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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