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제추행죄의 법리는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 대법원은 이미 42년 전 과거 판례부터 '기습적으로 신체를 만지는 행위' 자체도 폭행으로 인정해 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는 법리를 받아들였다. 일명 '기습추행'의 시작이었다.
다만 2013년까지는 강제추행죄가 친고죄였기 때문에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으면 수사기관은 개입할 수 없었다. 고소가 있어야만 사건이 성립하고, 처벌이 가능했던 구조였다.
그러나 2013년 형법 개정으로 강제추행죄가 비친고죄로 바뀌었다.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수사가 개시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이후 2018년 미투 운동을 거치며 법집행 실무에 실질적 변화를 불러왔다. 과거에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사건화 되지 않던 사례들이, 이제는 피해자의 불쾌감만으로도 수사 착수가 가능해진 것이다.
문제는 증거 구조다. 대부분의 강제추행 사건은 폐쇄회로(CC)TV나 목격자가 없고, 대화 내용은 남아있지 않으며, 상황의 흐름을 입증할 만한 객관 자료도 부족하다. 결국 피해자의 진술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피의자는 자신의 기억과 인식을 입증할 방법이 없고, 결과적으로 형사절차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떠올리면, 경찰 수사관 시절 수없이 많은 사건이 이런 구조 속에 있었다. 기지국 통화내역을 분석하고, 장소별 CCTV 동선을 추적하며,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검증하던 기억이 있다. 때로는 거짓말탐지기 검사까지 진행했지만, '판단 불가'라는 결과 앞에서 수사팀 역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변호사로서 피의자 입장에서 사건을 들여다본다. 불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피의자만 거짓말탐지기를 요구받고, 피해자는 보호를 이유로 진술 자체가 제한되는 장면도 적지 않다. 이미 결론이 정해진 수사를 경험할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현행 법 체계는 분명 피해자 보호를 위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는 타당한 방향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억울한 피의자'의 존재 가능성을 과도하게 배제해버리는 사회 분위기, 또는 수사기관의 구조적 한계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불균형을 만든다.
강제추행은 결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이 범죄의 법리와 실무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다시금 돌아봐야 한다. 실제로 무죄를 주장하는 피의자 상당수는 "억울하지만 기소유예라도 받아야 한다"며 합의와 인정을 선택한다. 이는 수사 절차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작용한 결과다.
"성범죄 사건은 돈은 되지만 쉬운 사건이다." 변호사들 사이에서 가끔 들리는 이 말이야말로 가장 씁쓸하다. 실제로는 가장 높은 실력과 가장 깊은 신중함이 필요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피해자도, 피의자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며, 부모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때처럼 기록을 들여다보고, 진술을 분석하며, 작지만 중요한 단서를 찾는다. 법은 사람을 지켜야 하며, 법률가는 그 균형을 잡는 최후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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