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실용주의 외교' 첫 시험대

김종훈(사진 왼쪽) 한미 FTA 한국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수석대표가 2007년 4월 3일 공동으로 가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최종 타결안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내며 악수하고 있다. 한미 FTA 체결에 대해 100점 만점에 몇점을 주고 싶냐는 기자들 질문에 커틀러 대표는
김종훈(사진 왼쪽) 한미 FTA 한국수석대표와 웬디 커틀러 미국수석대표가 2007년 4월 3일 공동으로 가진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최종 타결안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내며 악수하고 있다. 한미 FTA 체결에 대해 100점 만점에 몇점을 주고 싶냐는 기자들 질문에 커틀러 대표는 "'A+'를 주고 싶다"고 자평했고 김 대표는 "'수'를 받고 싶다"고 했다.
"대체 이 나라가 누구의 나라요. 부끄러운 줄 아시오. 그깟 사대(事大)의 명분이 뭐요. 도대체 뭐길래 2만명의 백성을 사지로 내몰라는 것이오. 임금이라면, 백성이 지아비라 부르는 왕이라면 빼앗고 훔치고 빌어먹을지언정 내 그들을 살려야겠소. 그대들이 죽고 못 사는 사대의 예(禮)보다 내 나라 내 백성이 열 갑절 백 갑절은 더 소중하오."

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 광대 하선(이병헌 분)이 한 말이다. 진짜 임금보다 더 임금 같은 가짜 왕 하선은 명-후금(청) 전쟁에 조선군을 파병하고 명 황제에게 수많은 공녀·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신하들의 득달에 이같이 비판한다.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를 감지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면 조선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조선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중립외교'를 택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강대국 사이에 낀 조선이 국가와 백성을 중심에 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광해군은 정치적 기반이 약했고 후금과 관계 개선은 명분을 중시하던 당시 '숭명반청'(崇明反淸) 세력과 충돌하면서 결국 폐위됐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당시 위정자들을 나무랐던 인물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국익 우선' 리더십을 보여준 대통령으로도 각인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자율적 외교 공간 확보에 힘을 쏟았다. 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실용적 협력도 병행했다.

한·미 FTA 추진은 노 전 대통령 지지층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통상 지형을 크게 넓혔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1월 신년연설에서 "(한·미FTA가) 우리 경제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며 이듬해 4월 협상이 타결되기 전까지 기회 있을 때마다 FTA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반대론자들을 설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2006년 7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한·미 FTA 추진은 대통령으로서 다음 세대를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다. '한·미 FTA의 손익계산서'에서 이익은 도외시한 채 손실만 애기하는 건 공정한 사실을 알리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가 생전에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제조업은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있지만 곧 중국에 추격당한다. 농업으로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할까. 바로 금융·법률·의료 등 서비스업이다. 그러려면 서비스업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세계에서 서비스업이 가장 강한 미국과 경쟁해 경쟁력을 갖춘다면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했다. 남다른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5년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 환경은 명말청초였던 16세기 조선이나 2006년 참여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러로 대표되는 대륙세력과 미·일 중심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다. 지금의 외교 상황도 마치 흔들리는 줄 위에서 줄타기하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이 16~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16일 출국했다. 대한민국 새 대통령이 어떤 외교 철학과 외교 노선을 갖고 첫 정상외교 무대 시험대를 통과할지 국제 사회는 물론 온 국민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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