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에서 광대 하선(이병헌 분)이 한 말이다. 진짜 임금보다 더 임금 같은 가짜 왕 하선은 명-후금(청) 전쟁에 조선군을 파병하고 명 황제에게 수많은 공녀·공물을 바쳐야 한다는 신하들의 득달에 이같이 비판한다.
광해군은 명청 교체기 동아시아 국제정세 변화를 감지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편들면 조선이 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조선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중립외교'를 택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는 강대국 사이에 낀 조선이 국가와 백성을 중심에 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광해군은 정치적 기반이 약했고 후금과 관계 개선은 명분을 중시하던 당시 '숭명반청'(崇明反淸) 세력과 충돌하면서 결국 폐위됐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당시 위정자들을 나무랐던 인물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국익 우선' 리더십을 보여준 대통령으로도 각인돼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의 자율적 외교 공간 확보에 힘을 쏟았다. 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추진 등 실용적 협력도 병행했다.
그가 생전에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기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그는 "제조업은 더 이상 잘할 수 없을 정도로 하고 있지만 곧 중국에 추격당한다. 농업으로 먹고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제 뭘 먹고살아야 할까. 바로 금융·법률·의료 등 서비스업이다. 그러려면 서비스업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세계에서 서비스업이 가장 강한 미국과 경쟁해 경쟁력을 갖춘다면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했다. 남다른 통찰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5년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 환경은 명말청초였던 16세기 조선이나 2006년 참여정부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중·러로 대표되는 대륙세력과 미·일 중심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다. 지금의 외교 상황도 마치 흔들리는 줄 위에서 줄타기하는 것에 비견될 만하다.
'국익 중심 실용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이재명 대통령이 16~17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16일 출국했다. 대한민국 새 대통령이 어떤 외교 철학과 외교 노선을 갖고 첫 정상외교 무대 시험대를 통과할지 국제 사회는 물론 온 국민이 그를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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