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핵협상 결렬 조짐에 중동 현지의 일부 자국 인력 대피를 전격 지시했다.
이란이 미국과 핵협상이 틀어지게 되면 중동 내 모든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가운데 이뤄진 조치다.
이처럼 중동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제유가는 하루 사이 4% 넘게 급등했다.
11일(현지시간)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중동에 대해 “위험한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대사관 인력)이 빠져나오고 있다”며 “우리는 어떻게 될지 지켜볼 것이며 그들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중동 긴장 완화 방안에 대해 “매우 단순하다. 그들(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며 기존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이날 일제히 나온 관련 언론 보도들을 사실상 확인한 것이다.
블룸버그통신 등은 이날 미 정부가 주(駐)이라크 미국 대사관 일부 직원에게 철수를 명령하고 중동에 주둔한 미군 가족들의 자발적 출국을 허용했다고 전했다.
미 국무부도 이날 언론에 발표한 이라크 여행 경보 관련 공지에서 “비상 인력이 아닌 미국 정부 인력의 철수 명령을 반영해 11일 이라크에 대한 여행 경보를 업데이트했다”고 밝히면서 이라크의 미 대사관에 대한 철수 명령을 공식 확인했다.
이라크에 대한 여행 경보 수준은 ‘여행금지’를 의미하는 최고등급인 4단계로 상향했다.
이라크 외무부 관료도 역내 긴장 가능성과 관련된 잠재적 안보 우려를 배경으로 이라크 주재 미 대사관 직원들의 부분 대피가 확인됐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통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중동 전역에 주둔 중인 미군 가족들의 대피를 승인했다고 밝혔다.
중동 지역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의 마이클 에릭 쿠릴라 사령관은 오는 12일 미 연방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었지만 이를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미국의 이런 일부 대피 조치는 가자지구 전쟁이 시작된 지 18개월 만에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이란을 공격하겠다고 반복적으로 위협해 왔다.
그는 이날 공개된 뉴욕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란이 미국의 핵심 요구사항인 우라늄 농축 중단에 동의할 것이라는 데 확신이 점차 줄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아지즈 나시르자데 이란 국방장관은 이날 취재진과 만나 “(미국과의 핵)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우리에게 분쟁이 강요된다면 상대방의 피해는 우리보다 훨씬 더 클 것이며, 미국은 이 지역을 떠나야 할 것”이라며 중동 내 모든 미군기지를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4월부터 오만의 중재로 이란과 다섯 차례 핵협상을 한 미국은 지난달 31일 이란에 처음으로 공식 협상안을 전달했다.
협상안의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란의 우라늄 농축 활동을 허용할지가 최대 쟁점이다. 미국과 이란의 6차 핵협상은 곧 열릴 예정이다.
미국은 6차 협상이 오는 12일 열린다고 했지만 이란은 15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유가는 크게 올랐다. 이날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 근월물 종가는 배럴당 69.77달러로, 전장보다 2.90달러(4.34%) 상승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근월물 종가는 배럴당 68.15달러로, 전장보다 3.17달러(4.88%) 올랐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69달러선 위로 올라선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한 지난 4월 초 이후 2개월 만이다.
한편 영국 해사무역기구(UKMTO)는 이날 중동에서 군사 활동이 확대될 수 있다면서 선박이 페르시아만과 오만만, 호르무즈 해협을 지날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UKMTO는 권고문에서 예상되는 긴장 고조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군사 활동이 확대되면 선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중동에서의 항해는 종종 위험하지만 해군과 상선 사이에 연락책 역할을 하는 UKMTO가 이런 경고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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