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놀이로 시작된 예술, 삼악산에서의 작은 순간
2005년 어느 날, 변남석은 삼악산을 찾았다. 자연을 느끼고 쉬고 싶었던 평범한 산행이었다. 그때 그는 커다란 돌 위에 조심스럽게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았다. 딱 그만큼. 그 짧은 행동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을 줄은, 정작 그 자신도 몰랐다. “사진 한 장 찍으려고 올려놨던 건데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는 ‘밸런싱 아트’를 그렇게 시작했다. 처음엔 단지 돌을 올리는 일이었다. 중력을 이용해 중심을 잡고 균형을 이루는 단순한 놀이. 그러나 그것이 세상과 이어지는 예술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아니, 그는 지금도 예술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냥 놀이예요. 목표도 없고요. 놀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밸런싱 아트란, 마음의 중심을 세우는 일입니다”
밸런싱 아트는 다양한 물체 위에 다른 사물을 올려 놓아 균형을 맞추는 작업이다. 돌과 돌, 흔들리는 프레임, 종이, 글씨까지—무엇이든 그에게는 ‘중심을 찾는 재료’가 된다. “중력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균형을 맞춰야 해요. 마치 삶과 똑같죠.”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한 누군가의 성공이, 다른 이들의 동기가 된 순간이었다.

삶의 궤도는 예술로, 예술은 곧 삶으로
그는 원래 체육을 전공했고, 분당에서 실내 스키장을 운영했다. 밸런싱 아트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본업은 따로 있었다. 블로그에는 건강 정보를 올렸다. 그러나 피드백은 냉담했다. “너무 뻔하다는 항의가 들어왔죠. 그래서 올렸던 걸 다 지우고, 나만의 것을 올리기로 했어요.”
그때부터 그는 밸런싱 아트의 사진과 영상을 블로그와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방송 출연 요청, 광고 섭외, 해외 초청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서울시 홍보영상에 출연했고, 두바이 왕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처음엔 스팸 메일인 줄 알고 무시했다. “일주일에 70개씩 스팸 메일이 오니까요. 근데 페이스북 메시지까지 오더라고요. 서울시 영상 보고 초대하고 싶다고.”
그는 결국 두바이로 향했고,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중 하나에서 돌을 쌓았다.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는데, 호텔 직원이 저를 붙잡더라고요. 방 키를 보여주니까 놀라더라고요. 하하.” 이후 미국 메리어트 호텔 CF 촬영까지 이어졌다.
“중심을 잡는다는 건, 삶의 태도입니다”
밸런싱 아트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도 드물다. 변 작가는 그 중 한 명이다. “강연도 하고, 퍼포먼스도 하고, 교구도 만들고 있어요. 출판 인세도 받고요.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면서 수익을 내고 있죠.”
놀라운 건, 여전히 그것을 ‘일’이 아닌 ‘놀이’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AI가 많은 걸 대체하잖아요? 근데 제가 하는 일은 그럴 수 없어요. 남들이 하는 걸 따라하려고 하면 경쟁해야 하니까, 행복하게 먹고 살기 어려워요. 나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놀면서 살고 있어요.”
그는 ‘달인’이나 ‘고수’가 아니라, ‘발견자’라는 표현을 쓴다. 그에게 밸런싱 아트는 완성된 기술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발견되는 세상의 균형이다. 상상했던 작품이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한 적도 있다. “카자흐스탄 공연에서 드럼통을 세우려 했는데, 아무리 해도 균형이 안 잡히더라고요. 결국 포기했어요. 근데 그걸 통해 또 배운 게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처음 올린 그 돌 하나”
그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역시 첫 번째로 쌓았던 돌이다. “그때 실패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예요.” 그 첫 돌이 없었다면, 중심잡기의 철학도 지금처럼 단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매일같이 중심을 잡으며 산다. “아침부터 밤까지 중심 잡는 삶을 살고 있어요. 하하.” 실패는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실패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제일 많이 실패한 사람이 저일 거예요. 근데 그만큼 많이 발견했어요.”
다음 스텝, 그리고 남기고 싶은 말
그의 다음 꿈은 단순히 성공이나 명성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는 삶을 꿈꾸지만, 저는 좋은 사람들과 나누는 삶을 살고 싶어요.” 그는 이제 밸런싱 아트를 넘어 새로운 예술적 프로젝트도 구상 중이다. 다만 방향성은 늘 같았다. 놀이처럼, 즐겁게, 나답게.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삶의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전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어요. 스트레스, 화, 미움, 짜증, 게으름—이런 걸 내려놔야 돼요. 내 안에 숨어 있는 잠재력을 믿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그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찾아옵니다.”
변남석의 밸런싱 아트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자세이며, 삶의 태도다.
돌 위에 돌을 올리며 시작된 그의 놀이가 지금은 세계로 뻗어가는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도 그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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