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덕업일치의 끝판왕!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이 말하는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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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이 객원기자
입력 2021-04-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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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KBS ‘TV유치원 하나 둘 셋’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쉽고 재밌는 설명으로 연령을 아우르며 종이접기 열풍을 선도했던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 ‘코딱지 친구들 안녕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TV를 한참 보다가 유치원에 갔던 아이들이 자라 어느덧 엄마 아빠가 돼서 그때 배웠던 종이접기를 자녀에게 알려주고 있다. TV 앞에서 그를 보던 아이들이 시간이 흘러 그때 그 시절 김영만 원장의 나이가 된 것이다. 김영만 원장과 어른이 된 코딱지 친구들과 함께한 종이접기의 추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김호이 기자/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


Q. 지금의 펭수 같은 존재였네요.

A. 그렇죠.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발달이 안됐으니까, TV로 정보를 알고, 문의 사항 있으면 방송국에 전화해서 문의하는 세대였었죠.

Q. 2000년대 초반 당시 시대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어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았던 걸까요?

A. 인기에 대해 크게 생각을 안했고 오직 내 할 일만 최선을 다했더니 인기가 붙어온 것 같아요. 종이접기를 연구하고, 우울증 걸려서 병원 다니고, 매주 녹화하는 게 상당히 스트레스거든요. 근데 오직 내가 하는 일을 많은 코딱지들이 보고 따라하는 걸 원했더니 뒤돌아보니까 인기가 쫓아 온 거예요.

Q. 정확하게 직업명은 뭔가요?

A. 종이접기 선생님이죠. 소속은 많이 되어 있어요.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마산대학교 아동놀이방송심리과 초빙교수, 내가 운영하는 아트오뜨 체험관 관장, 밖에 나가면 아저씨, 선생님. 직업명은 프리랜서 종이접기 아저씨가 되겠네요.

Q. 그때 당시 코딱지 친구들이 어른들이 됐어요. 길을 가면 많이 알아볼 것 같아요.

A. 많이 알아보기도 하고 팔짱 끼고 사진 찍자고 하기도 해요. 예전 코딱지 친구들이 이제는 엄마 아빠가 됐잖아요. 아이들한테 나에게 배웠던 걸 가르쳐주면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게 보기 좋아요.

Q. 펭수를 통해서 둘리와 뚝딱이가 소환됐습니다. 종이접기 아저씨가 다시 소환된다면 어른이들과 뭘 가장 하고 싶나요?

A. 같이 어울려서 종이접기를 가르쳐주고 가지고 놀면서 어울리는 걸 하고 싶어요.

Q. 뭘 할 때 가장 행복하세요?

A. 창의적으로 종이접기를 하고 연구해서 어떤 결과물이 나올 때 가장 행복해요. 그리고 나와 같이 종이접기를 하는 멤버들이 있는데 그들과 워크샵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공감대가 같이 형성이 되거든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종이접기를 업으로 삼게 된 계기가 뭔가요?

A. 어쩌다 보니까 30~40년을 이 일만 매진하게 됐는데, 저는 원래 그래픽 디자인 전공이에요. 그래픽 디자인으로 회사생활도 했는데, 내 사업한다고 뛰쳐나와서 다 말아먹고 완전히 빈털터리에 노숙자까지 갈뻔 하고 최악의 생각까지 할 정도로 비참했었어요. 외국에 갔는데 종이접기라는 걸 접하고 귀국해서 미술학원이나 유치원을 갔더니 종이접기를 안 하더라고요. 그림 그리는 것만 열심히 시키는 거예요. 형태가 입체적인 걸로 바뀌어야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창의성이 생기는데 그걸 안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한번 해보자는 생각과 함께 사명감이 생겼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손가락질 했죠. 근데 저는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이 일만 매진했어요. 안 되면 다른 일하면 되는 거니까. 근데 의외로 소문이 나서 방송국에서 스카우트도 되고 많은 기회가 생겼어요. 수많은 코딱지들이 나보고 잘한다고 해주는데 못하면 아이들의 꿈이 깨지잖아요. 그래서 계속했는데 뒤돌아보니까, 금손이 된 거예요.

Q. 그 선택을 후회하세요?

A. 절대요. 내가 죽고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할 거예요.

Q. 다른 일을 생각해본 적은 없나요?

A. 가끔 생각해요. 내가 하고 싶었던 게 광고에이전트 사무실을 하는 거였는데, 나이가 먹었어도 약간의 미련은 있어요.

Q. 오랫동안 종이접기를 하고 계신데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A. 아니요. 내가 이걸 하면서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나의 취미고 나만의 재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걸 나만 갖고 있기는 너무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놀이 중심교육을 통해서 인지발달과 창의성을 키우는 식으로 하거든요. 강의 의뢰가 오면 그건 일인데 나에게 의뢰를 해주는 사람에게 최선, 최대의 노력을 해야 돼요.

Q. 김영만에게 종이접기란 뭔가요?

A. 나의 인생이고, 수많은 기회예요. 살다보면 기회들이 오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잘 못 잡는데 나는 그 기회를 잡아서 내 걸로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종이접기는 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김영만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A. 남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두 번의 전성기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1모작은 ‘TV유치원 하나 셋’에서 코딱지 친구들과 10년 가까이 종이접기를 한 것, 2모작은 4~5년 전에 MBC 예능프로 ‘마이리틀 텔레비전’에서 다 큰 코딱지들 또 만난 것. 그게 2모작이에요.

Q. 어떻게 하면 존경 받으면서 멋있게 나이 먹을 수 있을까요?

A. 배려예요. 수많은 어른들이 요즘 젊은 친구들 보고 인사도 잘 안하고, 휴대폰만 보고, 하고 싶은 것만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근데 전국을 다니면서 젊은 친구들과 토크콘서트를 하면서 어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좋은 것들이 많은데 한 부분만 보고 판단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어르신들에게 항상 배려를 하라고 말해요. 젊은 친구들한테 배려를 해주면 존경 받을 수 있어요. 배려도 안해주고 말만 잘 들으라고 하는 건 이제 안 통해요. 그리고 코딱지 친구들은 인사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해요. 저는 눈만 마주치면 먼저 인사해요, 그게 배려거든요. 그러면 세대 간의 공감이 이뤄질 수 있어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매일매일이 기억에 남아요. 인스타그램에 김영만 검색하면 사진들이 많이 올라오는데 그러면 기분이 좋죠.

Q. 불어펜 광고는 어쩌다가 하게 됐나요?

A. 지구화학이라는 회사에서 TV 유치원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 신제품 만들었는데 광고 좀 해달라고 했었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어떻게 하면 숨겨진 재능을 찾고 발전 시켜나갈 수 있을까요?

A. 이것저것 많이 해봐야 돼요. 뭔가 하고 싶은데 ‘저게 될까?, 안될 거야’라고 포기하는 것보다 ‘못할게 뭐 있어? 한번 해볼까?’하면서 해보면 뭔가 걸리는 게 있어요. 그게 나만 갖고 있는 능력과 재능이에요. 뭐든 다 해보세요. 재밌어요.

Q. 김영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은 뭔가요?

A. 소통의 능력은 내 자신이 인정해요. 3살 아이부터 내 또래 연령대 어르신들과도 100% 원활하게 소통해요. 많은 젊은 친구들이 강의 의뢰를 해오고 안 간 곳이 없다 보니까 견문이 넓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통의 능력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이런 능력들이 생겨요.

Q. 종이접기를 하면서 좋았던 점과 안 좋았던 점은 뭐였나요?

A. 좋았던 점은 방송 30~40년 하면서 겹친 걸 안했어요. 그래서 내 아이템이 2~3만 개 돼요. 근데 어느 정도 가면 소재가 끊겨요. 그런 것 때문에 우울증 걸린 적도 있어요. 우리 집사람만 알고 아무도 몰라요. 약도 먹고 상담도 받으면서 어느 정도 극복했어요. 그래서 종이접기를 하면서 좋은 건 완성된 희열이고 나쁜 점은 연구해야 되는 머리싸움이고요.

Q. 종이접기의 레전드가 된다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A. 나 스스로 레전드라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나는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에요. 내 일만 열심히 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인정을 해줬어요. 그러니까 나는 더 열심히 해야 되는 거예요. 이 나이에 아직도 집에서 종이접기를 하고 있거든요. 근데 레전드라고 해서 나만 따라오라고 하는 건 잘못된 교육이에요. 제대로 된 교육은 스승이 뒤에 서고 제자를 앞에 서게 하는 거예요. 근데 잘못된 교육은 스승이 앞에 서고 제자들이 뒤쫓아가는 것이거든요. 스승은 뒤도 안돌아보고 가는데 그게 우리나라의 현실에요. 뒤에서 아이들을 한눈에 보고 뒤쳐진 애들까지 몰고 갈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Q. 어른이 된 어른이들은 종이접기 아저씨에게 뭘 많이 묻고 그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하세요?

A. 인생 상담 같은 걸 많이 해요. 그리고 “여친, 남친 만들어 주세요”, “직장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는데 마음 아파요. 젊은 코딱지 친구들 잘해나갈 거예요. 예전 코딱지 친구들이 자라서 지금은 방송국에 나를 불러주잖아요. 그럼 너무 좋죠. 바르게 바른길만 가면 후회 없어요.

Q. 어른과 꼰대의 차이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어른은 공감과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고 꼰대는 이기적인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젊은 친구들이 꼰대라고 하지, 존경하고 싶으면 꼰대라고 안 하죠.

Q. 노후준비와 자기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A. 살이 찐다 싶으면 밥 먹는 걸 줄이면서 관리해요. 그리고 강의를 가더라도 차를 가깝게 댄 적이 없어요. 멀리 주차해서 일부러 걸어요. 5층 이하를 갈 때는 비상계단을 이용하고요. 그리고 노후는 지금 이대로 인터뷰도 하고 젊은 친구들이 불러주고 강의하면서 쭉 이대로 가면 노후를 잘 관리한 거라고 생각해요.

Q. 삶에서 지키고 싶은 태도가 있나요?

A. 예절이에요. 나보다 어리더라도 예절을 갖추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요.

Q. 종이접기 아저씨와 함께 했던 시간이 어떤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세요?

A. 착한 어르신, 그리고 나를 보듬어 주는 멀리 있는 삼촌 같고 아저씨 같은 어르신으로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인터뷰 장면]

 


Q.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가 있나요?

A. 종이접기 아저씨. 종이접기로 30~40년을 매진했잖아요.

Q. 어떻게 하면 어린이가 아닌 어른이의 마음으로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참 어려워요.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게 쉽지 않아요. 동심이라는 건 금방 나오는 게 아니고 가끔씩 나오면서 힐링이 되는 거예요.

Q. 어떻게 하면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그거 참 어렵죠. 대다수가 초심을 잃고 살잖아요. 근데 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지금까지도 초심을 잃지 않고 살아왔어요. 초심을 지킨다는 건 본인이 노력해야 돼요, 처음 방송생활 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초심을 생각해요.

 

[사진= 김호이 기자/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이 어른이 된 코딱지 친구들에게 전하는 메세지]



Q. 직업병이 있나요?

A. 직업병 많아요. 종이만 보면 가만히 안 놔둬요. 그리고 손가락을 많이 쓰다 보니까, 손가락이 아플 때가 있는데 병원에서 손가락 쓰는 일 그만 하라고 하더라고요(웃음).

Q. 코딱지들이 그때 그 시절 종이접기 아저씨의 나이가 됐어요. 마지막으로 어른이 된 코딱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색종이로 지금까지 수난을 겪고 손가락질 받으면서 성공했잖아요. 여러분들은 기회가 많아요. 도전하다가 안 되면 뒤로 가고 옆으로 가고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어요. 도전해서 끝까지 해보겠다는 마음만 가지면 다 돼요. 고생스럽더라도 그 길을 도전해보면 성공한 코딱지들이 될 거예요.
 
 

[사진= 김호이 기자/김영만 원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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