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왕실의 구성과 왕위 계승 방식을 규정한 황실전범(皇室典範)이 1947년 시행 이후 처음으로 대폭 개정됐다. 여성 왕족은 일반인과 결혼한 뒤에도 왕실에 남을 수 있고, 2차 대전 후 왕실을 떠난 옛 왕족 가문의 남성도 왕족의 양자가 될 수 있다. 양자 본인에게는 왕위 계승권이 없지만,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에게는 왕위를 이을 자격이 주어진다. 왕족 수 확보를 명분으로 남성 혈통 중심의 계승 원칙을 강화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17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참의원(상원)은 이날 본회의에서 황실전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지난 10일 중의원(하원)을 통과한 데 이어 이날 참의원에서도 의결돼 국회 절차를 마쳤다. 여당과 국민민주당, 참정당 등이 찬성했고, 참의원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과 공산당은 반대표를 던졌다.
우선 여성 왕족의 결혼 후 왕실 이탈 조항이 삭제됐다. 기존 황실전범에서는 여성 왕족이 일반인 남성과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야 했다. 다만 현재 여성 왕족은 결혼할 때 본인의 뜻에 따라 왕실을 떠날 수 있다. 왕실에 남더라도 남편과 자녀는 왕족이 되지 않고 일반 국민 신분을 유지한다.
논란의 핵심은 양자가 된 남성의 아들이 왕위 계승 자격을 갖게 되는 점이다. 양자 본인은 왕위를 이을 수 없지만,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현행 규정에 따라 왕위를 이을 수 있다. 현재의 왕위 계승 순위에는 당장 영향이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옛 왕족 가문에서 새로운 일왕 후보가 나올 수 있게 됐다.
이번 논의는 여성 왕족이 일반인과 결혼하면 왕실을 떠나야 하는 규정 때문에 왕족 수가 계속 줄어드는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데서 시작됐다. 중·참의원 의장단은 각 당과 협의해 왕족 수를 확보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했지만, 왕위 계승 문제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안이 양자의 아들에게 계승 자격을 인정하면서, 당초 왕족 수 확보에 한정됐던 논의는 왕위 계승 문제로까지 확대됐다.
입헌민주당은 옛 왕족 후손의 양자를 허용하는 조항을 삭제하자는 수정안을 냈지만 부결됐다. 나가하마 히로유키 입헌민주당 의원은 참의원 심의에서 양자 제도가 왕통의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고 안정적인 왕위 계승에도 기여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일왕을 인정하는 데 찬성한다는 응답이 73%에 달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에서는 여성 일왕과 어머니 쪽 혈통을 통한 왕위 계승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 일왕 논의는 미룬 채 옛 왕족 가문의 남성 혈통을 통한 왕위 계승 가능성만 넓힌 셈이다.
중·참의원은 법안 통과와 함께 안정적인 왕위 계승 방안을 계속 논의하기로 했다. 79년 만에 황실전범을 고쳤지만, 장래 왕위를 누가 이을지를 둘러싼 핵심 쟁점은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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