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의 함께꿈] 포퓰리즘이 점령한 공약의 빈자리 …'동아시아 평화경제공동체' 구상으로 채우자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안상준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이 판결 주문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절망의 늪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이제 국민은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누가 될까? 누가 되어야 하나? 어떤 기준으로 뽑아야 하나? 내란세력이 내세운 후보가 설마 당선되진 않겠지만, 여론의 추이를 들여다보면 유권자의 마음은 복잡다단하고 착잡하게 읽힌다. 그래서 유권자로서 주요 후보의 10대 정책 공약을 읽고 평가해 보았다.
 
더불어민주당 10대 정책공약 국민의 힘 10대 정책공약
①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강국 건설 ①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자리 창출
② 내란극복과 K-민주주의 위상 회복으로 민주주의 강국 건설 ② AI·에너지 3대 강국
③ 가계·소상공인의 활력 증진, 공정경제 실현 ③ 청년이 크는 나라, 미래가 열리는 대한민국
④ 실용적인 외교안보 강국 건설 ④ GTX로 연결되는 나라, 함께 크는 대한민국 구현
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나라 건설 ⑤ 중산층 자산증식, 기회의 나라
⑥ 세종 행정수도와 ‘5극 3특’ 추진으로 국토 균형발전 완성 ⑥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 안심되는 평생복지
⑦ 모두의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 건설 ⑦ 소상공인, 민생이 살아나는 서민경제
⑧ 모두가 잘사는 나라 건설 ⑧ 재난에 강한 나라, 국민을 지키는 대한민국
⑨ 저출생·고령화 위기 극복,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함께 돌보는 국가 건설 ⑨ 특권을 끊는 정부, 신뢰를 세우는 나라
⑩ 미래세대를 위해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 ⑩ 북핵을 이기는 힘, 튼튼한 국가안보
 
두 후보는 공통적으로 경제 분야 공약에 집중하면서 제1공약으로 경제성장을 내세웠다. 더불어 소상공인과 민생을 챙기는 공약과 함께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이 민주적 거버넌스의 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경제공약의 절대적 우위는 여전히 경제적 포퓰리즘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위력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 물론 경제공약을 실현할 구체적인 로드맵의 제시나 예산 책정은 별개로 검증할 문제이다.
 
국민의힘의 공약은 요컨대 한편으로는 파렴치하고, 한편으로는 정체성과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 무엇보다 조기 대선 유발의 책임을 진 정당으로서 당연히 국민에게 비상계엄과 내란에 대하여 정중하게 사과하고, 향후 민주주의를 굳건하게 세우겠다는 의지를 결연하게 보여줘야 했다. 그러나 김문수 후보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았고, 공약 어디에도 민주주의 강화나 훼손 방지를 위한 내용을 제시하지 않았다. 정당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공당의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
나아가 국민의힘의 공약⑧과 공약⑨를 보면서 여전히 유권자를 존중하기보다는 임기응변으로 현혹하려는 태도가 강하게 느껴진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 이행 중 대민봉사에 동원됐다가 참변을 당한 해병대 채00 병사의 사망 원인을 밝히지 않았고, 대명천지에 축제를 즐기다가 이태원 거리에서 비명횡사한 159명의 젊은 영령을 위한 정치적 책무를 다하지도 않았고 책임자를 처벌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사회적 재난이 국민의 기억 속에 잊히기만 기다릴 뿐 공허한 공약으로 국민의 심기를 다시 거스르고 있다. 또한 우리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여준 기상천외한 선택적 공익 실천 앞에 혼돈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이재명 후보에게 적용된 신속하게 재판받을 국민의 권리가 수년에 걸쳐 지난한 법정 다툼으로 고통을 겪는 일제 강제노동 피해자나 해고 노동자에게도 적용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검찰의 이율배반적 행태야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선택적 공익 실천을 묵인하고 방조한 채 특권을 끊겠다는 공약은 지지자들 외의 유권자는 안중에 없는 공당의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따로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묻고 싶다.
 
공약 검토와 평가에서 참으로 의아하고 실망스러운 점은 한국 사회의 주요 의제들이 사라지고 거시적인 비전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지금까지 공표된 여론조사로 볼 때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공약에서 주요 의제를 삭제했다. 심지어 그의 분신 같은 기본사회 개념도 사라졌다. 공약 어디에도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대한민국을 한 단계 격상시킬 새로운 비전은 보이지 않는다. 부자 몸조심하는 중일 수도 있고 중도 외연 확장을 위한 전략일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필자에게는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심화하는 경제적 불평등을 바로잡고 자본시장 선진화를 도모할 필수적인 선결과제로서 재벌 개혁도, 민주주의의 굳건한 재정립을 위해 중요하고 결정적인 의제인 언론 개혁도 사라졌다. 나아가 미래세대 양성에 관한 교육 의제도 눈에 띄지 않는다. 여전히 다수의 학생을 짓누르고 선생님을 학교에서 떠나게 하고 대학은 속수무책으로 망가지는 교육 현장을 바로잡겠다는 교육 개혁 기치의 실종에 필자는 어안이 벙벙하다. 그나마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보듬어주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겠다는 공약이 목록에 들어 있지만, 강단의 철학적인 논제로 보일 정도로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선언에 그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이재명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민주당이 배출한 대통령으로서 그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가? 여기서 민주당 정부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민주당 정부는 오직 특별한 정치적 상황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다. IMF 외환위기에서 나온 김대중 ‘국민의 정부’, 예측 불가한 단일화의 바람 덕에 탄생한 노무현 ‘참여정부’ 그리고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국민의 촛불항쟁에 힘입은 문재인 정부. 그러나 그런 유리한 정치적 지형에서도 늘 아슬아슬한 표차로 버겁게 승리했다.
나아가 민주당 정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매번 무능력의 프레임에 시달렸고, 집요하고 거센 보수의 저항에 굳건하게 버티지 못했다. 물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위력을 발휘하는 국가보안법이 민주당 정부의 에너지를 분산시켜 민주주의 신장에 제동을 걸었다. 그런 와중에 민주당의 내분이 가시화되면 여지없이 보수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거대 여당의 유리한 정치적 조건 아래서도 보수세력이 내세운 꼭두각시 정치 신인 윤석열에게 권력을 넘겨주었다. 민주당 정부는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이 태생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임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이런 조건과 환경 속에서 민주당이 정권을 획득하고 성공적인 정부를 역사에 남기려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대한민국을 선진국에 맞는 기준과 가치로 이끌어가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국민의 행복을 지탱하는 두 개의 날개이다.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면서 경제적 안정을 취하려면 두 날개는 동시에 작동해야 한다. 분배 없는 성장은 양극화를 초래하고 중산층을 약화하여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성장 없는 분배는 사회의 하향 평준화를 이끌고 자본주의적 기반을 잠식한다. 일명 ‘황금의 30년’(1945~1975)은 서구 사회에서 분배와 균형 정책을 통해 성장의 과실이 국민에게 나누어지고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되어 복지국가 패러다임을 실현했던 시기였다. 다시 말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구호가 상징하듯이, 서구 선진국 국민은 역사상 가장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렸다.
그후 세계를 휩쓴 성장 위주의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규모는 키웠지만 분배의 왜곡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불황의 늪에 빠지자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경제불황과 세계적 불평등의 심화는 세계를 극단적 대립과 파국으로 이끌고, 민주주의의 토대는 극우 포퓰리즘의 지속적인 공격에 조금씩 잠식되는 중이다. 제2의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출현이 눈앞에 다가왔고, 대규모 전쟁의 그림자가 지구를 뒤덮고 있다. 우리의 분단이 극단적인 불평등의 산물이었음을 상기한다면, 지금 세계는 조만간 다시 거대한 분단의 시기를 맞을지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한반도 분단의 극복은 대한민국이 다른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절대적 과제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냉탕과 온탕을 널뛴 통일 정책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필자의 지정학적 판단에 따르면, 차기 정부는 남북대화와 북미대화 채널을 가동하여 한반도 전쟁 억지력을 극대화하고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수립하여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평화경제공동체’ 건설에 나서야 한다. 이는 새로운 차원에서 세계 평화를 달성하는 한국 정부의 역사적 과업일 뿐만 아니라 침체의 늪에 빠진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돌파구가 될 것이다.
한·중·일·러가 협력하는 거대한 ‘동아시아 평화경제공동체’는 결코 유럽연합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것이며, 이들 국가의 수준 높은 노동력은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 시장 질서를 동아시아로 이동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출발하여 중국과 러시아로 뻗어가는 경제적·문화적 활력의 서진은 세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다.
이런 거시적인 비전 없이 민생 해결에 몰두하고 사회적 갈등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한, 차기 정부의 정치적 성공의 한계는 자명하다. 역사의 진화는 현실에서 미래를 꿰뚫는 자들의 통찰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차기 정부는 경제성장과 국민통합을 넘어 거시적인 관점에서 민족사의 숙원을 풀어내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필자는 그것이 차기 정부 대통령이 놓아야 할 ‘신의 한 수’라고 감히 예단한다.


안상준 필자 이력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독일 보쿰 루르대학(Ruhr Univ. Bochum)에서 서양중세사로 박사학위 취득 △한국 서양사학회 회장 △컬럼비아대 해리먼 연구소 방문교수 △교수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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