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몇 번이라도 되살아나도록…한준희·유수민 감독 '약한영웅'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왼쪽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왼쪽)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명작은 엔딩 이후에 시작된다. 화면이 꺼진 뒤에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인물은 살아남아 팬들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약한 영웅' 시리즈는 그런 작품이다. 드라마를 반복해 곱씹고, 인물의 결을 따라가고, 마침내 각자의 해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시청자들은 이 세계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확장해 나가는' 경험을 공유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유수민 감독과 한준희 기획 총괄이 있었다.

"팬덤이 생긴다는 게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해요. '작품이 끝난 뒤 비로소 시작된다'는 게, 개인적으로 공감이 가는데요. 저도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본 뒤 '저 인물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하거든요. '약한 영웅'을 보는 분들이 그런 경험을 하신다면 엄청 기쁘겠죠."(유수민)

'약한 영웅' 시리즈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폭력에 맞서는 주인공 '연시은'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시즌1은 지난 2022년 웨이브에서 공개됐고 이후 넷플릭스로 플랫폼을 옮기게 됐다. 시즌2 오픈 후 시즌1까지 역주행하며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얻었다.

"저는 '약한영웅'이 16부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쭉 이어서 1과 2를 볼 수 있고 그 흐름에서 많은 팬이 생긴 것 같아서 기쁩니다."(한준희)

창작자는 인물을 만들지만, 그 인물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생명력을 얻는다. 머릿속에 그려낸 캐릭터는 대본을 쓰는 손끝에 의해 탄생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면 예상과는 다른 길을 걷기도 한다. 

"1도 그런데 2도 그랬어요. 대본을 제가 썼고, 세계관과 캐릭터 성격도 구성했잖아요. 그래서 촬영 전까지는 제가 이 인물들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리딩을 하고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점점 달라져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배우들이 그 인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해석도 점점 깊어지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이 막 튀어나와요. 그럴 때 '아, 이 캐릭터가 내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구나!' 싶죠. 그런 식으로 작업했던 것 같아요." (유수민)
약한 영웅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시즌1이 섬세하게 관계를 쌓고, 무너뜨리는 과정에 집중했다면 시즌2는 그 무너진 자리로부터 다시 쌓아 올리는 여정을 택한다. 

"클래스1이 끝나고 나서 연시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저를 안 만났으면, 그냥 조용히 잘 살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클래스1은 무감각하게 혼자만의 세계에 있던 사람이 감각을 느끼기 시작하고, 조금은 행복해지는 이야기였잖아요. 근데 그 끝이 너무 비극적이었죠. 그래서 클래스2를 쓸 땐, 이 친구를 일으켜 세우고 싶었어요. '웃게 하고 싶다,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시작했고, 연시은이 중심에 있으니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해서 구성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유수민)

"작법에서 기본적으로 기승전결을 생각하긴 해요. 근데 '약한 영웅'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감정을 훨씬 많이 줬죠. 연시은이라는 인물이 실제 인물은 아니지만, 만약 진짜 그런 아이가 있다면, 안타깝게 보고만 있진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얘를 일으켜 세워야겠다'는 감정이 컸고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상처를 극복해 나가고, 시은이라는 인물이 처음엔 자기중심적이었다면, 마지막엔 누군가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돼요. 친구를 위해 나서고, 남을 위해 뭔가를 하게 되는. 그걸 이타적인 인물의 변화라고 생각해요. 그런 변화가 '클래스2'의 방향이었고, 좋은 의미의 후속편이 될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한준희)

시즌1과 시즌2의 인물들은 거울을 마주 보듯 서로 닮아 있다. 같은 상황, 비슷한 조건 속에 놓여 있지만 각기 다른 선택을 하고, 결국 다른 결말에 다다른다. 

"복선이나 회수되는 구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클래스1'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거기서 많은 걸 가져오되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결국엔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더 강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고요. 예를 들어 준태라는 인물도 범석과 비슷한 출발선에 서 있지만,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하잖아요. 시즌1이 비극적으로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번엔 조금은 덜 우울하고, 슬프지만은 않은,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유수민)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클래스1'과 '클래스2'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정서는 실수와 부채감이다. 감독은 아이들의 실수와 그 책임을 어른이 아닌 아이들이 고스란히 짊어진다는 점에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복합적인 테마를 품고 있다고 강조한다. 

"저는 이 시리즈를 통틀어 실수하는 건 아이들이고, 잘못하는 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백진이나 범석 같은 인물들을 안타고니스트로만 접근하지 않았던 이유죠. 이들은 아직 덜 자란 상태인데,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이 이용하는 거예요. 백진의 뒤에는 금성제, 범석의 뒤에는 박후준이 있듯, 어른들이 시스템을 대변하면서 아이들을 밀어 넣는 거죠. 결국 대가는 아이들이 치르잖아요. 그래서 이 이야기가 단순한 장르물 같아 보여도, 들여다보면 훨씬 복합적인 감정과 테마가 느껴질 거로 생각했어요."(한준희)

같은 상황에 처해도 모든 이가 극복의 기회를 얻는 건 아니다. 시은은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지만, 바쿠는 백진의 죽음으로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바쿠에게 왜 그랬느냐"고 묻자, 유 감독은 "그게 인생"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상처가 언제나 의미 있게 수습되거나, 누군가에게 꼭 무언가를 남기는 건 아니니까요. 바쿠에게 뭔가를 주려고 했다기보단… 소중한 사람이 떠나는 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가 이 인물에게 충분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유수민)

"백진의 죽음은 결국 모든 인물에게 같은 종류의 부채감을 남길 거예요. 시은에게든, 그를 외면했던 금성제에게든, 심지어는 백동하나 도성묵에게조차.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우정을 쌓아왔어요. 저는 이게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엔 패싸움이나 폭력으로만 보이기엔 이 아이들 사이의 관계가 너무 복합적이었거든요. 시간이 흐른 뒤 서로를 향한 상처와 우정이 다 얽혀 있는 거죠."(한준희)
약한 영웅 금성제이준영 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금성제(이준영 분) 스틸컷 [사진=넷플릭스]

8부작이라는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도 금성제(이준영 분)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별출연에 가까운 분량이었지만, 드라마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물로 시청자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금성제는 원작에서는 더 많은 서사가 있는 인물이에요. 저희가 8부작 안에서 구조를 새로 짜면서 역할을 합치거나 수정해야 했는데, 사실 이준영이 금성제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캐릭터로 대체하자고 할 정도였어요. 그동안 이준영 배우가 보여줬던 날것의 매력, 액션이든 감정이든 '여기도 저기도 아닌 낭만 독고다이' 같은 그 무드가 금성제와 너무 잘 어울렸거든요. 제일 먼저 이준영 배우에게 제안했고, 다행히 잘 꼬셔서 모셔 올 수 있었어요."(한준희)

시청자들이 즐거워할 만한 금성제의 비하인드를 전해달라고 하자 유 감독은 금성제가 느꼈을 감정의 흐름에 관해 귀띔해 주었다.

"저는 한눈에 드러나는 서사보다 은밀하게 표현되는 것들을 좋아해요. 금성제도 사실 내면에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서사를 가진 인물이죠. 그는 또라이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지만, 은장고에서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뭔가 계속 느끼고 있는 거예요. '너희 왜 이렇게까지 해? 친구가 그렇게 소중한 거야?' 이런 식의 회의와 감탄이 동시에 오는 거죠. 옥상 신에서도, 백진과의 대화에서도 그런 서운함이나 의문이 겹쳐 보이고요. 드러내지 않지만 성제만의 감정 곡선이 분명히 있었어요."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왼쪽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약한 영웅' 한준희 감독(왼쪽) 유수민 감독 [사진=넷플릭스]

극 중 일본 애니메이션 '슬램덩크'는 단순한 장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즌1에서는 오마주 형식으로 화면 구성에 녹아들었고, 시즌2에서는 바쿠의 등장을 알리는 장면의 결정적 장치로 활용됐다. 원작에도 없는 '슬램덩크'의 등장에 관해 묻자, 한 감독은 "유수민 감독님이 정말 좋아한다"며 웃었다.

"슬램덩크 자체의 스토리를 좋아해요.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애니메이션 연구가와 나눈 대담집이 있는데, 거기서 평론가가 '슬램덩크는 마치 군기물 같다'고 하더라고요. 농구하는 데 마치 목숨을 걸고 싸우는 느낌이라고. 저는 그 말이 너무 와닿았어요. 그래서 더 큰 감동을 준다고 생각했고, 약한 영웅에도 그런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것 같아요. 우리 드라마 안의 아이들도 어떤 순간엔 정말 목숨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이잖아요."(유수민)

"그 나이대, 10대 후반의 아이들은요. 몸은 이미 다 컸지만 마음은 여전히 미성숙하잖아요. 그 시기에 '내 앞에 놓인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정말 전부를 다 쏟아붓죠.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는데, 그 순간에는 진심이고 절박한 거예요. 그 감정이 관통하는 게 저는 결국 청춘물이라고 생각해요."(한준희)

시즌1과 2의 연이은 흥행과 글로벌적인 인기로 시즌3에 대한 이야기도 일찍이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아직은 이르지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우리끼리 여러 이야기를 나눴어요. 최효만을 주인공으로 한 시트콤, '폭싹 속았수다'처럼 계절을 테마로 한 이야기 등 별별 재밌는 상상도 해봤죠. 창작자와 출연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이렇게 시즌3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죠."(한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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