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의 중동워치] 라마단에 쏠리는 세계의 눈 …20억 이슬람 같이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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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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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11일부터 전 세계 20억명의 이슬람교도(무슬림)들은 일제히 단식에 들어간다. 초승달이 뜨는 날부터 다음 초승달이 뜰 때까지 한 달간 빈부귀천과 권력의 유무를 떠나 모두가 똑같은 조건에서 함께 굶는다. 인류애를 나누고 진정한 나눔을 실천하려는 종교의례다. 코란에 의하면 이슬람력 9월인 라마단 한 달 동안 ‘흰 실과 검은 실이 구분되는 시점부터 단식을 시작하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사실상 해가 뜨기 훨씬 이전의 여명부터 일몰 시까지 기나긴 낮 시간 동안 음식을 일절 먹고 마시지 아니하는 고행의식인 셈이다. ‘사움’이라고 불리는 단식은 신앙고백, 예배, 순례, 희사 등과 함께 이슬람의 5대 종교의무의 하나일 만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함께 굶고 함께 나누는 과정을 공유하며 적당한 돈의 기부와 말 잔치가 아닌 직접 체험을 통해 억울한 자, 가난한 자, 빼앗긴 자의 고통과 소외, 배고픔과 억울함을 깨닫도록 한다. 진정한 공동체의 영적 나눔의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무슬림들은 보다 공평하고 공정한 사회를 꿈꾸고 실천해 나가려 한다.
 
특히 금년의 라마단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죽어나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들의 고통과 배고픔이 당연히 이슬람 세계의 중심 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과 카타르를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라마단 이전에 휴전과 평화를 위해 숨 가쁜 외교전을 벌였던 배경이다. 가장 열악한 상황에 내몰린 동료 무슬림들에게 긴급 구호 물품이 통제되고 도움의 손길조차 보내지 못하는 이번 라마단은 여러 측면에서 그 정신이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하마스-이스라엘 전쟁으로 퇴색된 라마단
 
라마단은 나라마다 시작일이 조금씩 차이 난다. 초승달이 뜨는 시각이나 육안으로 관찰되는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라마단이 임박하면 아라비아 사막의 시력 좋은 베두인 부족들은 사막으로 들어가 첫 달을 관찰하기 위해 눈을 서쪽 하늘에 고정시킨다. 일몰 직후 서쪽에서 가늘고 기다란 첫 초승달을 확인하고 이 사실을 신호로 전달하면 전 국민이 비로소 단식을 시작한다. 1400년 이상 지켜 온 전통이다. 천체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첨단 과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사실상 초승달이 몇 분 몇 초에 어느 위치에서 모습을 드러낼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럼에도 시력 3.0 이상을 자랑하는 선별된 베두인들이 직접 첫 초승달을 육안으로 확인하는 오랜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베두인 유목 대상들은 뜨거운 낮 시간에 사막을 횡단하는 무모함보다는 야간 이동을 통해 오아시스나 목적지를 찾아가는 삶의 방식에 익숙해 있다. 지형지물도 없는 더 넓은 사막에서 유일한 길잡이는 달과 별자리였고, 별의 움직임과 위치로 방향을 잡아가는 능력은 바로 생존과 직결되었다. 천문학인 Astronomy, 점성술인 Astrology, 잠을 쫓는 밤의 음료인 커피 Coffee라는 단어도 천체 망원경이 발견되기 전에 인간의 시력으로 관찰할 수 있는 수백 개의 별자리 이름도 대부분 이랍어에서 유래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식월 9월은 양력의 절기와는 많은 차이가 난다. 이슬람 종교 의례는 태음력인 이슬람력에 따라 정해지는데, 양력의 1년 길이가 365일인 데 비해 태음력인 이슬람력의 1년은 354일 정도다. 매년 11일 정도씩 짧아진다. 그래서 윤달이나 윤일을 끼워 넣지 않기 때문에 33년이 지나면 사계절을 돌아 1년을 한 바퀴 돌게 된다.
 
나눔과 용서의 대축제
 
이슬람 국가에서는 새벽이 되면 모스크에서 나온 북치기가 동네를 돌면서 북을 두드려 사람들을 깨운다. 라마단 기간에도 일상적인 일을 계속하기 때문에 자칫 늦잠을 자서 음식을 조금도 먹지 못하고 단식을 맞으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해가 지는 순간 일몰을 알리는 낭송(아잔)과 함께 단식이 깨어진다. 아잔이 울리면 물과 우유 같은 가벼운 음료로 입을 적시고 대추야자나 가벼운 죽을 먹고 저녁 예배를 마친 후 가족이나 이웃들과 정찬을 즐긴다. 정찬 후에는 ‘타라위’라 하여 단식 예배를 드리면서 용서와 정화의 시간을 갖는다.
 
육식과 기름진 식사를 하고 운동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생태 환경에서 단식은 체중 조절에도 탁월한 이점을 가져다준다. 라마단이 끝나면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체중 감량을 자랑하며 단식의 또 다른 열매를 맛본다. 이 시기는 문화적으로 일종의 국민 다이어트 기간이라 할 수 있는데, 혼자서는 잘 안 되는 식습관 조절을 사회 전체가 함께 하고, 알라께 좋은 점수를 딸 수도 있으니 무슬림들에게는 일거양득인 셈이다. 이 때문에 평소에는 예배도 잘 보지 않고 이슬람 계율을 지키지 않던 신자들도 라마단 기간 동안만은 철저하게 단식을 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일종의 공동체 참여 활동인 셈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아랍 사회에서는 경제적 풍요와 함께 단식이 지나치게 세속화되어 과도한 재정 지출이나 과소비, 폭식으로 인한 부작용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고통과 인내가 따르는 라마단 단식은 모든 무슬림들이 꼭 그 시간에 지켜야 하는 절대 의무는 아니다. 14세 이하 아이들과 의무를 충족하기 어려운 신체적·사회적 약자, 영양 공급이 필요한 환자, 장거리 여행자들, 임신부와 수유기의 산모, 생리 중인 여인들에게는 모든 조건이 정상화될 때까지 단식 수행이 연기된다. 또한 단식을 거행하다가 무심코 위반 행위를 했을 때 자기가 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임을 깨닫는 순간 행위를 멈추면 단식은 그대로 유효하다. 물론 고의적으로 먹거나 마시거나 흡연하거나 성적 접촉을 하면 그날의 단식은 무효가 된다. 여러 이유로 인해 단식이 깨지는 상황이 생기면 라마단 달이 끝난 후에 자신이 편리한 날을 잡아 부족한 날만큼 채우면 된다.
 
이슬람에서는 평등과 나눔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의 삶의 철학은 '한 마을에서 부자의 창고에 곡식이 남아 있는데 배고파 굶어 죽는 이웃이 생긴다면 공동체 전체가 천국에 들지 못하리라'는 가르침이 있을 정도로 나눔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사유재산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부자의 재산이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를 상대로 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현세에서 위임한 알라의 자산이라는 생각을 갖는다. 열심히 벌어 마음껏 재산을 늘려나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재산은 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면 나누어 줄 때 더 빛이 난다고 믿는다. 라마단 기간 중에는 부자들이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장만하여 이웃이나 공장 노동자들, 소외된 계층의 서민들을 초대하여 매일 밤 단식이 끝나는 시각 음식 대접을 한다. 광장이나 극장, 공공시설, 공원 등 어느 곳에서든 한 달 내내 보기 좋은 음식 나눔과 자선 행사가 펼쳐진다. 서로가 하나 되고 사회적 결속을 다지는 중요한 공동체 발현 의식이다.
 
종교적 의미로도 무슬림들은 이슬람의 코란이 라마단 달 초승달이 뜨는 날 첫 계시가 내려왔고, 아브라함이나 모세의 경전(토라), 다윗의 시편 등도 모두 라마단 달에 내려졌다고 믿는다. 이슬람의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가 624년 바드르 전투에서 승리하고, 메카에 무혈입성하여 이슬람의 터전을 마련한 사건도 라마단과 관련 짓는다. 무엇보다 라마단 마지막 열흘 홀수 일은 ‘라일라툴 카드르(권능의 밤)’라 하여 알라의 은총이 수천 배 집중되는 시기로 믿어 많은 무슬림들이 모스크로 몰려든다.
 
단식이 끝나면 ‘이들 피트르’라는 일주일간의 이슬람권 최대 축제를 즐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깨끗하게 목욕하고 전통 설빔으로 갈아입은 후 모스크로로 향한다. 함께 모여 축제예배를 드리고 종교 지도자의 설교와 덕담을 듣는다. 그런 다음 가족과 함께 축제 식사를 즐기고 나서는 가까운 어른에게 인사를 다니고 친지를 만나러 간다. 이때 고향으로 향하는 거대한 귀성 행렬이 시작된다. 도시나 시골 어디에서든 인사를 나누고 신을 찬미하면서 모처럼 잃어버렸던 안류애와 가족애를 나눈다. 어른들은 덕담을 하며 아이들에게 선물이나 세뱃돈을 준다. 물론 가족 간에는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는 훈훈한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이때 아이들은 자기 가족뿐만 아니라 이웃집을 돌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축제 인사를 드린다. 이웃 어른들은 세뱃돈이나 선물, 사탕을 주면서 그들의 앞날을 축원해준다. 마지막 순서로 가족들은 함께 공동묘지로 가서 돌아가신 부모나 먼저 떠나보낸 가족들을 기리며 그들의 영혼을 위한 기도를 드린다. 음식 대신 자그마한 꽃다발을 준비해 가서 코란 한두 구절을 낭송하며 신의 가호를 빈다. 우리의 명절과 너무나 닮았다. 이들 피트르 축제는 성스러운 종교적 의무의 완성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회 통합의 과정이다. 용서를 통해 적의감을 줄이고, 서먹서먹했던 인간관계가 해소되는 공동체 복원의 역할을 축제가 담당하는 셈이다. 나아가 이 기간 동안 ‘피트라’라고 하는 일종의 종교복지세를 낸다. 서민들의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재원이 정부 세금과는 별도로 자발적인 희사금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1년 동안의 희사가 단식 축제 기간 동안 가장 많이 걷힌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상부상조하는 정신을 어떻게 일깨우고 있는지 보여 주는 좋은 예이다.
 
21세기 초스피드의 첨단과학 시대로 접어들면서 단식 기간을 기아 체험 수준으로 며칠로 줄이거나 재해석하자는 논의가 이슬람 세계 일부에서 있을 법도 한데 아직은 그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과도한 물량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단식의 의미가 공동체의 나눔과 소득 재분배에 기여하고, 용서와 화해의 공동체 정신 함양은 물론 국민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 역할을 하는 순기능이 주는 가르침은 우리에게도 가볍지 않게 다가온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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