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지수 역대 최고치에도 무덤덤한 日…'잊을 수 없는 버블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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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 도쿄(일본) 통신원
입력 2024-02-2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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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블 붕괴 겪은 중・장년층 냉정히 관망

  • 체감 경기 여전한 둔화에 비판도

사진AP연합뉴스
[사진=AP·연합뉴스]

지난 22일은 일본 증시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치(3만 8915)를 34년 2개월 만에 경신한 3만 9098로 마감하면서 일본 경제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하루였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2일 닛케이지수가 역대 최고치를 돌파한 데 대해 "지금 일본 경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일본 경제는 1990년대 이후 저성장과 저물가가 이어지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라왔다. 현지 매체들은 거품 경제 붕괴 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경기 침체에서 드디어 벗어난 것이 아니냐는 기대 섞인 분석도 내놓았다. 다시 찾아온 ‘버블’이 디플레이션의 늪에 빠진 일본 경제를 되살릴 수도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고개를 들었다.

반면 이미 한 차례 ‘버블 붕괴’를 경험한 중・장년의 일본 국민들은 대다수가 담담한 표정이다. 도쿄에 거주하는 한 50대 후반 남성은 “일본은 버블을 겪어봤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얼마나 이어질 것인지 여부를 신중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다른 40대 직장인 남성은 “일본 경제가 겨우 80년대 수준을 되찾은 것”이라며 냉정하게 내다보기도 했다.

물론 일본 증시의 강력한 상승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이들도 있다. 도쿄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 은행 대출을 받고 있는 40대 남성은 “3년 전 은행의 투자 신탁에 넣어 둔 자금이 많이 불었다”면서 “다음 주 초에 팔고 남은 이익을 대출 자금으로 쓰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증시 최고가 경신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사히신문은 23일, 1980년 당시 개인 투자자들이 일본 주식의 약 28%를 갖고 있던 반면 2022년에는 그 비율이 약 18% 정도까지 내려갔다고 보도했다. 같은 기간에 5배가량 비율을 높인 해외 투자가와는 대조적인 양상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우 가계 금융 자산의 반 이상은 여전히 금리가 낮은 예금에 예치되어 있다. 1989년 말에 연 4%대였던 우편 예금(현 유초은행) 금리는 일본은행(BOJ)의 금리 완화 정책으로 현재 0.002%에 머물러 있다.
 
체감 경기와 증시 간 괴리

체감 경기도 주가 급등과는 괴리가 있다. 지난 15일에는 세계 3위 경제 대국 일본이 지난해 독일에 밀려 4위로 추락한 사실이 일본 정부를 통해 발표됐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일본의 명목 GDP(국내총생산)가 591조 4820억엔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달러로 환산하면 4조 2106억 달러로, 독일의 지난해 달러 환산 명목 GDP가 4조 4561억 달러인 것을 감안하면 독일보다 2455억 달러 적은 수치다.

2010년에 중국에게 세계 2위 경제국 자리를 내어 준 일본은 인구수에서 독일보다 1.5배 앞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3위 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물가 영향을 고려한 2023년 실질경제성장률은 전년 대비 1.9%로, 1990년의 4.8%를 크게 밑돌았다. 국가의 경제 실력을 나타내는 잠재성장률(2022년)도 0.5%로 낮은 수준이다.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 임금도 지난해 12월까지 21개월 연속 전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오기하라 히로코 경제 저널리스트는 아사히신문에 “많은 시민들은 힘겹게 생활하고 있다. 주가가 올라도 체감이 안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일본 은행이 실시한 생활의식조사에서는 생활 수준에 대해 “여유가 없어졌다”고 응답한 비율이 56.2%로 오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노구치 유키오 히토츠바시대학 명예교수는 “일본 정부는 구조 개혁을 진행하지 않고 엔저를 유도하는 정책을 펴왔다. 기업들은 엔저로 인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장부상 이익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노구치 교수는 이어서 “기술 혁신에 힘쓰지 않으면 일본 경제의 힘이 커질 수 없다”면서 근본적인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을 주가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 대표 자동차 기업인 도요타와 혼다는 각각 연초 대비 25%, 20% 오르며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는 시가 총액이 50조엔(약 440조원)을 넘어서면서 일본 기업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그러나 도요타 자회사 '다이하츠'의 품질 인증 조작으로 인한 공장 가동 중단 문제 등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편 일본 내 대체적인 평가는 34년간 일본 기업 및 경제가 크게 변화해 온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과거 일본 기업은 고용, 설비, 채무라고 하는 ‘3가지 과잉’이 문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은 자금면에서는 윤택한 반면 일손 부족과 뒤처진 디지털화라고 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실업률 저하로 고용 환경이 개선되고 있으며 임금 인상을 위한 노력들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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