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이의 브랜드이야기] 여성에게 최초로 남성 수트를 입힌 '이브생로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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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이 기자
입력 2023-11-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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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 로고 사진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 로고 [사진=이브 생 로랑]
‘최초의 여성용 정장 수트, 최초의 여성용 턱시도, 최초의 여성용 트렌치코트···.’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장 수트를 여성용으로 첫 탄생시킨 디자이너다. 그는 수많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남기며 여성복의 틀을 깼다.
 
21살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가 된 생 로랑은 젊은 나이에 프랑스 패션계에 입문했다. 창의력과 천부적인 재능으로 세계적인 패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개성 있는 디자인은 물론 최초의 기성복 패션쇼인 ‘프레타포르테(prêt-à-porter)’ 컬렉션을 선보이며 패션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 크리스찬 디올이 선택한 디자이너 
어린 시절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생 로랑은 연극 무대 의상을 만들었던 경험을 토대로 꿈을 키웠다. 17세가 되던 1953년에는 그동안 작업한 드레스와 수트 등 디자인 스케치를 국제양모사무국의 디자인 콘테스트에 제출했고, 생 로랑은 대회에서 3등을 차지하게 된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크리스찬 디올은 1955년 생 로랑의 스케치를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그를 어시스턴트 디자이너로 채용한다. 1957년 크리스찬 디올이 심장마비로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생 로랑은 21세 나이로 크리스찬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오른다.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온라인 캡쳐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온라인 캡처]
생 로랑은 1958년 디올에서의 첫 컬렉션 ‘트라페즈 라인’을 선보였고 이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는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못한다. 1960년에는 젊은 사람들의 길거리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비트 룩’을 선보였는데, 보수적인 크리스찬 디올 고객들이 이에 대한 혹평을 쏟아낸 탓이다. 결국 생 로랑은 3년 동안 여섯 번의 컬렉션을 끝으로 디올을 떠난다.
 
디올에서 나온 그는 1961년 피에르 베르주(Pierre Bergé)와 함께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론칭한다. 이것이 바로 이브 생 로랑의 시작이다.

생 로랑은 1962년 1월 첫 컬렉션으로 선원들이 즐겨 입는 ‘피 재킷’과 바지를 선보인다. 오트 쿠튀르 컬렉션에서 화려한 맞춤 드레스 유행하던 당시 캐주얼한 옷을 선보이는 파격적인 시도가 업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다.
 
생 로랑은 1967년 프레타포르테 ‘리브 고시(Rive Gauche)’ 라인을 열면서 오트 쿠튀르에서 기성복으로 초점을 옮겨간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의상을 더 많은 고객에게 적절한 가격에 제공하고 싶어 했고,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을 통해 이를 실현하게 된다.
 
◆ 성별 경계 허물다…논란 속 탄생한 ‘여성용 정장 수트’ 
1950년대 말, 전쟁이 끝난 유럽과 북미에 경제적 능력을 갖춘 여성들과 젊은이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젊은 층은 기성세대와 차별되는 그들만의 새로운 문화와 스타일을 창조해낸다. 
 
특히 생 로랑은 ‘나는 여성이 내 옷 안에서 좀 더 당당해지길 원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그는 고상한 귀부인도 자유로운 스트리트 패션을 즐길 수 있고 소녀도 멋진 수트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옷을 디자인한다.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수트 사진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수트 [사진=이브 생 로랑]
그렇게 탄생한 것이 1966년 ‘르 스모킹(Le Smocking)’이다. 당시 이브 생 로랑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정장 수트와 턱시도를 여성도 입을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 특징이다. 1960년대는 바지 정장을 여성이 입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기였으나 이러한 틀을 깬 시도를 한 셈이다.
 
또 당시 여성들은 행사에 화려한 드레스를 착용했는데 생 로랑은 여성을 위한 턱시도를 새로운 이브닝웨어로 제안한다. 여성의 몸에 딱 맞는 긴 재킷과 일자로 떨어지는 바지, 헐렁이는 넥타이, 실크 새틴 벨트로 구성된 르 스모킹은 ‘성의 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혁명적인 의상이었다. 르 스모킹 수트는 당시 여성 인권운동이 일던 사회적 분위기와 맞아떨어지면서 호평을 받는다. 
 
◆몬드리안 룩부터 사파리 룩·시스루 룩까지…새로운 패션 창조
생 로랑은 성별은 물론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기존에 없던 패션을 창조했다. 그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디자인은 패션을 예술로 격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영화와 그림, 글쓰기 등 예술에 관심이 많던 생 로랑은 예술을 패션에 접목하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피에트 몬드리안 작품을 의상에 도입한 ‘몬드리안 컬렉션’을 선보인다. 몬드리안 컬렉션은 패션 잡지 역사상 가장 많이 촬영된 옷으로 기록되고 있다. 몬드리안 드레스를 통해 생 로랑은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얻는다.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룩 사진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몬드리안 룩 [사진=이브 생 로랑]
1967년에는 실크 시폰 드레스를 발표했는데, 이는 오늘날 ‘시스루 룩’이라고 불리는 의상의 시초가 된다. 여성의 몸을 드러내는 시스루 패션은 여성의 해방을 나타내기도 했다.
 
1968년 생 로랑은 아프리카 수렵복을 일상복으로 재현시킨 ‘사파리 룩’을 선보인다. 어깨에 견장이 있고 4개의 플랩이 있는 패치 포켓이 달린 ‘사파리 재킷’은 여성복과 남성복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스타일로서 변화하는 사회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생 로랑은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에스닉 룩’ 유행의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비서구권 문화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패션쇼에 최초로 흑인과 동양인 모델을 기용했다.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수트 사진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수트 [사진=이브 생 로랑]
생 로랑의 의상들은 시대에 뒤떨어지는 성의 구분을 타파한다는 의미에서 샤넬과 뜻을 같이하기도 했다. 두 디자이너 모두 시대적 변화에 따른 여성복의 변화를 담아냈다. 샤넬에 블랙 리틀 드레스가 있다면 이브 생 로랑에는 ‘르 스모킹’이 있다.

이브 생 로랑은 1983년 생존해 있는 패션 디자이너 최초로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1985년에는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는 2002년 이브 생 로랑 디자인 하우스의 40주년을 기념하는 오트쿠튀르 패션쇼 무대를 마지막으로 은퇴했고, 2008년 6월 1일 7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문화강국 프랑스의 상징적인 인물로 기록되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는 30년 동안 이브 생 로랑이 디자인했던 장소에 ‘이브 생 로랑 박물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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