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 칼럼] 꺼져버린 엔저 공습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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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입력 2023-11-08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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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



엔화환율이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11월 1일 달러당 엔화 환율은 151엔으로 1990년 6월 152엔 이후 33년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금년 1월 130엔에 비하면 엔화환율은 16%나 올랐고 2021년 1월 103엔에 비하면 2년 10개월 사이에 45%나 상승했다. 지난 1990년 이후의 33년 동안을 놓고 보면 이번의 엔화환율 상승, 즉 엔저는 세 번째로 큰 엔화환율상승 파동이다. 엔화환율 상승 폭이 가장 컸던 것은 1995년 5월부터 1998년 7월까지 달러 당 83엔에서 144엔으로 3년 동안 약 74% 엔화환율이 올랐다. 이 기간 중에 엔화환율 상승 을 촉발시켰던 것은 4천여 명의 희생자를 낸 1995년 1월의 고베 대지진이다. 두 번째로 환율상승 폭이 컸던 기간은 2012년 12월부터 2015년 7월까지 엔화 환율이 78엔에서 122엔으로 약 56% 절하되었던 기간이다. 이 기간은 소위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기간이다. 그 다음으로 2021년 1월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약 45%의 포스트코로나 엔화환율 상승이다.
 


<표> 1990년 이후 엔화환율 상승(엔저) 기간
 
 


 
역대급 엔저가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것은 그것이 항상 우리경제에 엄청난 충격을 몰고 왔기 때문이다. 엔저의 가장 심각한 충격은 우리나라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는 점이다. 달러에 대한 엔화환율이 상승하면, 즉 엔저가 발생하면, 일본제품의 달러표시 가격이 떨어지면서 국제시장에서의 가격경쟁력이 크게 살아난다. 일본 수출업자는 환율변동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대부분 엔화로 판매가격을 표시(pricing)하는 전략을 쓰고 있으므로 달러 당 엔화환율이 오르는 즉시 자동적으로 달러표시 수출가격은 하락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살아난다. 따라서 경쟁관계에 있는 국가의 수출은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엔저로 인한 일본제품 가격하락의 충격을 가장 심하게 받는 나라는 일본과 수출품목이 상당히 겹치는 한국이다. 자동차는 물론 자동차부품, 화학제품, 기계, 조선 등 거의 모든 일본 공산품 가격이 국제시장에서 떨어지면서 한국의 수출가격경쟁력이 압도당하는 것이다.
 
엔화환율이 크게 상승하여 우리나라 수출에 심각한 타격을 미친 역사적 사례는 여러 번 있다. 가장 가까이는 2012년 말 79엔에서 2015년 7월 124엔까지 3년 사이 57% 엔화환율이 올랐던 소위 아베노믹스(Abenomics)때였다. 이 기간 중 우리나라 수출은 2013년 5600억 달러에서 2016년 4954억 달러로 3년 동안 12%나 감소했었다. 고베대지진 직후인 1995년 5월 달러당 83엔이던 달러 당 엔화환율은 1998년 7월 144엔으로 엔화가치가 74%나 추락하는 동안 우리나라 수출증가율은 1995년 30.3%에서 1996년 3%와 1997년 5.0%로 추락했다. 그리고 사상 최대의 무역적자 양 200억 달러가 발생하면서 IMF위기가 발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제공했었다. 1999년 1월 103엔에서 2002년 3월 133엔으로 엔화가치가 약 30% 떨어졌는데 이때에도 수출은 2000년 1723억 달러에서 2002년 1625억 달러로 2년 동안 6%나 뒷걸음 쳤었다. 우리나라 전체 경제의 약 1/3을 차지하는 수출이 엔화약세로 타격을 받게 되면 경기침체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아닐 수 없다.
 
엔화가치 하락의 두 번째 충격은 대일본 수입물량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 경기와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엔화환율이 떨어지면 일본제품의 수입가격이 하락하고 그로 인해 일본 물품들이 대량으로 한국으로 수입될 것이다. 자동차나 기계류는 물론이고 맥주, 담배, 의류, 과자류와 같은 일반 생활용품의 대일수입물량이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아베노믹스가 발생한 2012년과 2013년의 경우 달러표시 대일 수입이 각각 10.8%와 2.5% 늘었고 1995년 고베대지진 당시의 엔화약세 기간에도 대일본 수입은 14.8%나 증가했다. 2001년과 2002년의 16% 엔화약세기간 중에도 대일수입은 20% 이상 급증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달러로 표시된 대일수입 금액이지 대일 수입물량 통계는 아니다. 대일본 수입품은 대부분 엔화로 가격을 계약하기 때문에 달러당 엔화환율이 상승하면 자동적으로 달러표시 수입가격은 떨어지고 따라서 수입가격 하락효과 때문에 달러표시 수입금액도 자동적으로 하락하게. 예컨대 달러당 엔화환율이 10% 상승했다면 달러표시 수입가격도 자동적으로 10% 하락하게 되고 따라서 달러표시 수입금액도 10% 줄어든다. 그러나 수입가격이 하락하여 수입물량이 증가했다면 수입금액도 수입물량증가만큼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3년의 경우 엔화환율은 22% 상승했는데 그 해 달러표시 대일 수입금액은 3% 늘었다. 하지만 달러표시 수입가격이 22% 떨어졌다고 가정하면 수입물량은 25% 이상 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으로부터의 수입물량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 공급업자의 생산물량이 줄어드는 것이라서 국내생산과 고용이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는 큰 악영향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엔저 공습경보를 정책당국자나 경제전문가들이 전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그 이유는 일본의 수출통계를 ‘달러표시’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베노믹스가 작동했던 2013년에 엔화환율이 22%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달러표시 수출은 오히려 11% 줄어들었다. 고베 대지진 이후인 1996년 엔화환율이 16% 상승하는 동안 일본 수출은 7% 축소되었다. 2014년에도 엔화 환율은 9% 상승했지만 달러표시 일본수출은 3% 감소했다 이런 결과를 가지고 엔화약세가 일본 수출을 증가시키지 못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다. 엔화로 표시한 수출이 같은 기간 크게 늘어났다. 2013년에는 12% 늘어났고 1996년에도 9% 이상 늘어났으며 2014년에도 6% 늘어났다. 일본경제가 중시하는 점은 달러표시 수출통계가 아니라 수출물량의 바로미터인 엔화로 표시된 수출이다.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삼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포스트 코로나 엔화약세는 우리나라 수출과 국내 경제에 심대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일본 제품의 제3국 수출 및 국내수입 물량이 급증하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생산과 국내생산 물량에 큰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약 1,2년 정도의 시차가 있기 때문에 인식을 잘못할 가능성이 크다. 엔저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서는 원화환율도 동조적으로 상승해야 하지만 이 또한 물가와 자본거래와 금융시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녹록치가 않다. 그렇다하더라도 엔화환율의 상승이 수출과 국내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미리 점검하고 대비책을 세워두는 일은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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